4. 브런치와 포스트잇
비가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내리쬐는 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길에 서 있다. 어디로 갈까…….어디로 가야하나…….싼 호스텔이라도 가야 하나…….공항이나 기차역에서 하룻밤은 보낼 수 있지 않을까…….공항이나 역도 밤이 되면 문을 닫나…….호스텔은 어떻게 찾아야 하지………거리에 나 앉는 다는게 이런 거구나………..얼마나 그냥 그 길 위에 멍하니 서 있었는지 모른다. 한동안 지켜보던 친구가 건넨 말에 정신이 들었다. 괜찮냐고 물어본다. 갈데가 없으면 자기집에서 며칠 지내도 좋다고 한다. 부모님하고 같이 살고 있지만 부모님도 반대 하지 않으실 거라고 말해준다. 이자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친구라곤 하지만, 술자리에서 몇번 어울린 것이 전부였다. 오늘 같이 가 줄수 있냐는 물음에 흔쾌히 좋다고 해준것만으로 사실은 충분했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방까지 내준다고 하니………..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만 집에 가자고 한다.
친구의 집은 이사가려고 했던 집에서 가까워서 이민가방을 밀며 한 10분을 걸어갔다. 집에 도착하니 친구의 어머니가 맞아 주셨다. 친구의 말을 듣고 이자에게 오셔서 따뜻한 목소리로 편히 있으라고 하신다. 머뭇거리는 이자의 등을 떠밀며 친구는 먼저 욕실을 보여주었다. 따뜻하게 목욕이라도 하는게 좋겠다, 그리고 같이 집을 찾아보자고 했다. 목욕을 하고 나오니 어머니가 친절하게도 따뜻한 밥을 차려 주셨다. 말 그대로 따뜻한 밥이었다. 얼마만에 먹는 ‘밥’인지……어느새 밖에서 돌아온 동생도 앉아 있었다. 저녁에 돌아오신 친구의 아버지와 가족이 다 같이 거실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그 옛날에 독일에 오신 얘기, 독일에서 경험하신 얘기들을 아주 흥미롭게 들었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지만 지금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더 열심히 경청했다 (사실, 이자는 옛날얘기를 좋아한다, 아마 이자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경험들이 지금을 살아가는 이자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학자들이 해석을 곁들여 당시를 분석하고 종합해서 써 놓은 얘기들도 좋아 하지만, 좀 어수선 하고 정리가 안되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쩐지 이런 얘기는 책보다 신뢰감이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책에서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이자에게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이 늦어져 택시를 타는 날이면 연세 지긋하신 기사분들과 옛날얘기하며 집에 오는 시간을 즐긴다). 잠자리에 일찍 들었지만 당연히 잠은 오지 않았다. 어떻게 아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방에 들어 온 친구가 마침 주말이니까 친구들을 불러 브런치를 하자고 한다. 말은 안했지만 우울한 이자을 위로해주기 위해서라는 걸 알았다. 다른친구들한테도 상의해보자고 한다. 11시가 되자 언제 전화를 돌렸는지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조금씩 먹을것을 가져왔다. 거실에는 갖가지 빵이며, 여러종류의 햄과 치즈들, 오이 피망, 양상치등의 야채와 훈제연어, 다양한 잼과 버터가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친구들을 위해 여러재료로 속을 채운 삶은 달걀을 내오셨다 (그 땐 이게 뭔지 몰랐는데 스터프트 에그 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있을 때도 일요일에는 늦게 일어나 아점을 먹곤 했지만 이렇게 먹는 서양식 아점은 처음이었다. 한국에서도 빵은 먹었지만 빵이란 그냥 간식이지 ‘밥’이 아니었다. 그것도 식빵에 단순히 케찹이나 마요네즈, 땅콩버터를 발라 먹거나 보통은 수퍼에서 파는 비닐포장에 들어 있는 단팥빵이나 소보루빵, 가끔 빵집에서 파는 고로케나 샌드위치였지 이런 푸짐한 아침을 빵으로 시작한 적은 없었다). 이자의 얘기를 듵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집구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말이라도 정말 고마웠다. 머리의 한쪽은 무거운 돌로 누림을 당하는 것처럼 터질 것 같았지만 친구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며 모두와 즐겁게 아주 긴 아점을 먹었다. 오후가 되어 산책을 좀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집을 빠져 나왔다. 집을 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아는 동네가 아니여서 가끔 길을 잃지 않으려고 거리 이름이 적혀있는 표지판들을 눈에 담아 두었다. 혼자가 되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봐도 뾰쪽한 수는 없었다. 편히 있으라고 했지만, 갈 데가 없으면 집을 구할 때까지 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무슨 소설 속 주인공도 아닌데 식객으로 남의 집에 오래 눌러 앉을 수는 없었다. 돈이 들더라도 호스텔로 가야겠다………..공중 전화를 찾았다. 친구한테 전화를 해 봐야겠다. 혹시 싼 호스텔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친구는 이자가 유학을 와서 알게 된 친구인데 천성이 착하고 맑은 마음의 소유자로 이자에게 의지해 주었고 이자에게도 많은 의지가 되었다. 이미 학교도 다니고 있었고 이자 보다 먼저 유학을 와서 경험도 더 많았다. 독일사람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는데 전화를 해서 어제얘기를 하니 재워줄 수 없는 것을 정말 미안해 했다. 학교에서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봐 주겠다며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다시 친구집에 돌아와 친구와 함께 신문을 살펴 보았다. 집세가 비싼것은 둘째치고, 당연히 지금 당장 들어 갈 수 있는 집은 없었다. 보통 월초부터 들어 올 사람을 구하기 때문이다. 다음날도 신문들을 여러부 샀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역시 호스텔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내일 아침이 되면 중앙역에 가서 물어 보기로 생각을 굳혔다. 오후가 되자 친구가 와서 이자한테 전화가 왔다고 했다. 받아보니 어제 전화했던 친구인데, 아는 학교선배가 한달 정도 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자기 기숙사에 와 있었도 좋다고 했다며 거기로 가겠냐고 물어 본다. 사정이 그러하니 그냥 있었도 된다고 했다 한다. 이런 사람들이 또 있으랴…………한달………그럼 다음달에 들어 갈 수 있는 방을 어떻게든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 염치가 없지만 호스텔로 가는것보다 낫지 않을까…………내일 비행기를 타니 오늘 여벌의 열쇠를 주겠다고 한다.
약속한 카페에 가 보니 친구가 선배와 함께 와 있었다. 이자의 얘기를 듣고 위로해 준다. 이자가 고맙다고 몇번이나 말하자 (사실 몇번을 얘기해도 충분하지 않다) 겸언쩍어 하며 어려울 때는 다 서로 도와주는 거라고 한다. 벌써 2-3년 먼저 유학을 온 선배여서 어러가지 유학생활의 재미 있는 얘기들을 해 주었다.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친구와 친구부모님께 감사인사를 한다음 이민가방을 들고 기숙사를 찾아갔다. 기숙사는 친구네 집에서 좀 멀었지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기숙사 건물은 여러채가 있었지만 사이사이에 제법 넓은 풀밭들이 있고 간격도 널찍해서 전체적으로 쾌적한 느낌을 주었다. 방 역시 25 m2 정도의 원룸으로 혼자살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방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고 한국 갈 준비만으로도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해 주신 노력이 역력했다. 방을 한번 삥 둘러 보았다. 이런 기숙사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얼른 방을 구하고 생활을 정리하고 학교에 들어가서 학생이 되어야 할 텐데….지금은 열심히 방을 구하는 수 밖에 없겠구나………..이민 가방을 구석에 세워 놓고 티비가 놓여 있는 장식장 앞에 앉았다. 티비의 왼쪽에는 오디오가 놓여 있고 오디오 왼쪽에 스피커 하나, 다른 하나는 티비의 오른쪽에 놓여 있다. 그 옆에는 전화기가 놓여 있었는데 검은 전화기위에 뭔가 노란색이 보인다. 무릎으로 기어 가까이 가서 보니 노란 포스트 잇이 수화기 위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포스트 잇에는 마지막 문장에 스마일이 그려져 있는, 집을 빌려 주신 분의 전언이 남겨져 있었다.
‘이자씨, 집에 있는 거 맘대로 다 써도 돼요, 국제전화만 삼가해 주세요’
두눈이…두뺨이…… 따뜻하게 적셔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