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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시소설 이자의 집 구하기 오디세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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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52Hz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2,720회 작성일 18-03-26 16:26

본문

1. 페기네 5층
공항에서 한참 전철을 타고 갔다. 그도 그럴것이 앞으로 살 집은 전철의 마지막 정거장에 있다고 했다. 처음으로 타 본 독일의 전철은 서울의 것보다 내부가 좁아보였고 늦은 시간인데도 승객이 많다. 이자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외국인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 때만 해도 외국인라고 해야 미군들, 그것도 특정한 동네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얘기고,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본 적은 독일을 오기전 우연히 시청에서 한번, 강남가는 버스에서 한번, 딱 두번 뿐이다. 눈 앞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얘기하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다. 외국에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주 어려서 운이 좋아 일본에 한번 가 보았지만, 그 땐 단체여행이었고, 또 외국이라해도 외모는 친숙한 외국인들이었으니까.
전철을 내려 한참을 걸어갔다. 그날따라 유난히 추워 도로가 다 얼어 여기저기 정체가 심했다고 했다. 캄캄하고 독일 특유의 뼈속까지 스며드는 바람을 맞으며 어딘지도 모를 길을 마냥 쫏아갔다. 하지만 그런 상쾌한 바람을 맞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나가도 그날 그시간에 걸었던 그 거리를, 마치 명화의 한 장면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마지막 날까지 그러하지 않을까…….

도착한 집은 벽돌인지 시멘트인지로 지어진 ,삼각지붕을 얹은 5층정도의 낡은 연립주택이었는데, 단층에는 빨간 불의 페기네가 살고 있었다 (실제 이름은 모르고 이자가 맘대로 붙인 이름이다, 해가 지면 조금 열린 커튼사이로 새어나오는 빨간 불빛이 홍등가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밤이라 어두웠지만 그럼에도 아주 낡은 집이라는 것은 한번에 알 수있었다. 외벽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는데 얼추 크기가 총알만해 보여, 무슨 전쟁의 유물로 느껴졌다 (이 도시는 전쟁때 거의 다 파괴되고 그래서 거의 모든 건물이 새로 지어졌으니까 사실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그 때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자가 살 집은 지붕층이었는데 낡은 나무 계단은 발이 얹어질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5층이 아닌 6층을 올라갔는데 (독일식 층개념을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엘레베이터는 당연히 없다.

이집은 독일행을 결정하고 나서 다행히 아는 사람을 통해 구한 집이었다. 하지만 집세가 너무 높아, 또 앞으로 어느 도시에 정착하게 될지 알 수가 없으니 3개월만 살기로 계약을 하였다. 당시엔 인터넷도 없고, 핸디도 아직 상용화가 되지 않은 시절이라 정보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주변에 이민이나 유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딱히 물어 볼 사람도 없이 그냥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3개월안에는 결정이 나지 않을까. 사실, 이도시로 오게 된 것은 순전히 그나마 아는 사람이 집을 여기에 구해주었다는 이유 뿐이었다. 그 때 조금만 용기가 있고 돈이 있었다면 호스텔이라도 머물면서 혼자 집을 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일단 언어적인 문제와 재정, 사실은 그만큼 야물치지도 못했다. 그냥 두려움이 앞서 조금 부담이 되더라고 좀 편하게 가는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이자는 여전히 그 도시에 살고 있다. 얼마전 면접을 갔을때 면접관이 고향이 어디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는데 이자는 망설임없이 여기라고 대답했다. 직장상사가 언젠가 얘기했던, 유명한 교수가 고향이 어디라고 물으니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이 고향이라고 대답한 것처럼, 이자에게도 태어나고 자란 곳보다는 삶이 이루어 지고 있는 곳이 고향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높은 천장의 널찍한 원룸이 나왔다. 원룸이라도 현관에서 이어지는 작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거실겸 침실, 왼쪽에는 따로 부엌이 분리되어 있었다. 당연히 전자제품이며 가구도 전부 구비되어 있었다. 사실, 유학생의 집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만큼 잘 꾸며져 있었다 (유학생의 집이라고 잘 꾸며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도 사람마다 다를테니. 없는게 없을 만큼 잘 꾸며져서라기 보다 지나가는 뜨내기가 사는 집이 아닌, 어딘가 집에서 풍기는 안정적인 느낌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낮과 밤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게다가 겨울이라 해 볼일도 없어 더했다. 추적추적 비가 끊임없이 쏟아졌는데 지붕에 부딫히며 내는 퉁통퉁통 소리가 늘 함께했다. 그렇게 꿈인지 현실인지 알수 없는 며칠이 지나갔다. 깨어있을 때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티비가 켜져있었고 티비의 화면을 쳐다보다가 그냥 잠이 들곤 했다. 유학오기 전에 말로만 듣던 시차적응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열흘남짓 지나니 새로운 달이 시작되어 드디어 어학원을 가기 시작했다. 어학원은 이자의 집과는 달리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전통있는 어학원이라고 집을 구해준 지인이 소개시켜 주었다. 무엇보다 학원비가 저렴했다. 집에서 한 50 분 정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닿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자는 중학교때 부터 왕복 4시간씩 버스를 타고 통학했기 때문에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길이 많이 막히는 서울의 출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고 한시간을 가는 것과 정체라는 것이 거의 없는 전철을 타고 50분 가는 것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건 버스 정류장에 있는 시간표였는데 거의 어김없이 계획된 시간에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다. 서울에도 그 당시에 시간표가 정류장에 있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어차피 있었다 하더라도 정체로 인해 제시간에 맞추지 못하였으니 의미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물론 여기라고 모든 버스가 제시간에 와 주는 것은 아니다. 이자의 직장으로 가는 버스는 사실 제때에 온 적이 거의 없다. 그 버스를 지금 거의 18년 동안 타고 있는데 말이다). 고로 50분의 전철소비는 그만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했고 지금이라면 당연히 ‘멀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때는 ‘가까운’ 거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외국인들과 함께 외국인 선생님에게 독일어를 배우게 되니 설레는 맘으로 학원을 갔다. 이자는 서울에서 독일어를 좀 배웠는데 외국인 선생님은 대사관에 근무하는 독일 남편을 따라온 헝가리 여선생님 뿐이었다. 독일어를 배웠다고는 하나 막상 비행기를 타자마자 ‘꿀먹은 벙어리’ 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고 입을 떼는 것조차 두렵게 되었다. 그래서 독일선생님에게 말하는 것을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자네 반 선생님은 빨간머리의 마리아 였는데 첫날부터 문제가 잔뜩있는 프린트물을 나누어 주며 문제풀기를 하라고 한다. 문법과 문제풀기로 이루어진 시험준비위주의 수업방식은 말로만 듣던 서울의 유명한 ‘입시의 명문 00학원’을 절로 생각나게 했다. 당연히 문제의 답을 말할때 말고는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고, 학원이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학원생들이 같이 어울리는 것 같았지만, 같은 반에 있다고 해도 실제 어학능력이 현저히 차이가 나서 끼어들 수가 없었다 (물론, 말을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고 사실은 소극적인 성격 탓이 더 크다). 이자는 학교지원에 필요한 어학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서 굳이 레벨 시험을 볼 필요가 없었으므로 수업은 점차 지루해지고, 배우고 싶은 말하는 걸 배울 수도 없으니 갈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결국 한달을 끝으로 학원은 가지 않게 되었다. 사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머나먼 학원에 가기 싫은 게으름도 결정에 한 몫을 했지만.

사실은 그렇다고 집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 건 아니었다. 독일어책을 조금 보고, 티비도 보고, 학교지원에 대해 알아보고 뭐 이런 일들을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하며 나날이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갈 수록 불안이 커지기 시작했다. 집의 기한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딱히 방법이 없어 신문을 사서 임대 광고들을 훓어 보았지만, 생소한 줄임말들이 이해를 한층 더 어렵게 했다. 방 사진을 신문에 올릴 일이 없으니 광고 몇줄 읽고 어떤 방인지 알수도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곤란한것은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방을 보러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아……전화. 이자는 전화하는 걸 싫어한다. 모국어나 외국어나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하는 것이 어쩐지 굉장히 이상하다. 똑같이 얼굴이 안 보여도 차라리 이메일이나 문자를 쓰는게 낫다. 아마도 내 말을 듣고 있는 상대방의 반응을 알 수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국어로도 그런데 이건 말도 되지 않는 외국어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려야 하다니………이건 무슨 고통, 아니 고문이다……….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정말 용기를 내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어쩔떈 용기가 나지 않아 어느 동네에 있는 집인가 공항에서 산 지도를 펼쳐 놓고 몇시간이나 지도를 공부하기도 했다 (사실 지도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중에 또 몇 개는 보러가기도 했다. 매번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전철을 탔다. 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건에 맞는 방은 없었다. 저렴한 방들은 당연히 외곽에 있었고 (이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보통 석탄난방을 하고 있어 겨울에 석탄을 사다 날라야 한다는 함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엄두는 나지 않고, 이자가 감당할 수 있는 싼방은 없다. 이자는 대학을 졸업한 후 소소한 일을 하며 유학비를 마련하였다. 그래봤자 생활비를 빼고 남은 돈을 모으는 거라 많이 모을 수도 없었다.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매달 생활비와 나머지를 빼고 나면 모을 수 있을 만큼 남지는 않았다. 그렇게 어찌 모은 적은 자본을 반으로 나누어 올 때 반만 가지고 오고 나머지 반은 나중에 보내달라고 부탁해 놓았지만, 그 나머지 반을 다 쓰고 나면 더이상 조달할 때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으므로 최대한 절약해서 써야하는 돈이었다 (만약 지금처럼 얼마이상의 통장잔액을 증명해야 했다면, 아마도 유학은 올 수 없지 않았을까). 불안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일 신문을 들춰보며 전화기와 눈싸움을 하였고, ‘못 구하면 호스텔로 가는 수 밖에 없나……’ 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에 달력은 어느덧 3월 중순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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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Johanneslee님의 댓글

Johannesle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좀처럼 로그인을 잘 안하고 눈팅만 하는 편인데 답글을 달기 위해 로그인을 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저도 신문을 통해서 집을 구할때 독일로 유학하러 온 사람인지라 많은 부분이 공감이 갑니다.
다음편이 너무나 기대가 되네요~

52Hz님의 댓글의 댓글

52Hz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기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래된 얘기도 아닌데 그때와 비교해 보면 달라진 것이 많아서 시간이 지나긴 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아요, 마음은 항상 그때와 똑같은데 말이죠 ^^
그럼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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