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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시소설 독일시인의 선시(禪詩) 2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9건 조회 3,381회 작성일 12-05-21 19:07

본문

Nicht genug          넉넉하지 않습니다
                                                                            Hans Kruppa(독일 현역시인)


Intelligenz ist nicht genug,                  슬기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wenn Weisheit fehlt.                          지식은 충족한 것이 아닙니다.

Optimismus ist nicht genug,                역량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wenn Kraft fehlt.                                낙천주의는 넉넉하지 않습니다.

Leben ist nicht genug,                        마법이 없다면,
wenn Zauber fehlt.                            인생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Freundschaft ist nicht genug,              믿음이 없다면,
wenn Vertrauen fehlt.                        우정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Liebe ist nicht genug,                        용기가 없다면,
wenn Mut fehlt.                                사랑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Ich bin nicht genug,                           만일 그대가 없다면,
wenn du fehlst.                                나는 채워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한글번역이 제대로 되엇는지요 ?  고수님들의 바로잡음을 고대합니다>
추천0

댓글목록

길벗님의 댓글

길벗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선과는 그리 관계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긴 합니다.

대조 대비의 관계가 희미해서 감히 해석만 해보기로 했습니다.



채워짐


지혜가 자리한 곳에 지성이 꽃피고

힘이 오르는 곳에 희망이 싹튼다


찰나의 오묘함은 생을 넉넉하게 하며

믿음의 향기는 서로를 가깝게 한다


불의를 물리치는 용기는 사랑을 북돋아 주고

그대가 있음으로 내가 있음을 깨닫는다

  • 추천 2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 !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군요.  제 생각으로는 님의 해석은 의미는 통합니다만,
시인이 여섯 련에 걸쳐서 의도적으로 사용한  wenn의 의미가 실종되어버려서야 되겠습니까 ?  번역이 제2 의 창작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원작자가 강조하고자 했던 이미지는 살려야 하지 않을런지요 ?

  • 추천 1

길벗님의 댓글의 댓글

길벗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그저 Logik 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위의 문장 구조는

ㄱA, wenn ㄱB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B ---- > A                    입니다.

엄밀하게는 wenn 의 의미가 사라진게 아니라 內在되어 있습니다.


ㄱ : Negation symbol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Logik 이라 !  서구학문을 접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그게 뭔지 모르지만, 여하튼 詩에 접근하는 방법이 제가 모르는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알게 되어 고맙습니다.
저는 이 시를 우리 세대의 한국사람에게 친근한 화엄불교의 연기론(緣起論)으로 풀이하였기에,  감히 선시(禪詩)라고 한 겁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제가 받는 느낌은, 법륜스님께서 공사상(空思想) 강좌에서 말씀하신,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라는 만법인연의 법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무릇 시란, 이성(理性)으로 재단(裁斷)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感性)으로 느끼고 노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독일어와 두분의 번역, 실은 동일한 내용인데
다른 형식과 언어로 표현된 세 가지의 시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갑자기 불현듯 저는 한국 가곡 "그대 있음에" 가 떠오르는군요.
그대가 있음에 내게는 그리움도 외로움도 있으니..

길벗님과 한겨레님 두분의 글을 대하면서
물가 정자에 앉아 하얀 술잔을 기울이는
한국의 선비를 잠시 떠올립니다.

길벗님의 댓글의 댓글

길벗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떠오르는 것은 비슷한가 봅니다.
김남조님의  그대있음에 였죠.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자주 놀랍니다~  ^^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노엘리님 ! 길벗님 ! 심금을 떨리게 만드는 <그대 있음에> 를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남조 님의 시라면, 오래 전 읽은  "겨울하늘에 연 하나 올리세요" 라는 귀절만 기억하고 있는데,  그 분의 시집을 읽을 기회가 없어서, 이토록 아름다운 시가 있는 줄을 몰랐었네요.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아 ~~ 얼마나 절절한 그리움이고 사랑이면 이런 표현이 나올까요 ?  가슴이 먹먹합니다.
우리 베리 벗님 가운데 이토록 시 애호가들이 많은지는 미처 몰랐네요. 반갑고 소중한 벗님들이군요.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길벗님도  떠올리셨나 보군요.

시 전문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오늘 밤은 이시를 가슴으로 읽으며 자러갑니다.

리드엘님의 댓글

리드엘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Man kann nicht nicht interpretieren.

한겨례님과 길벗님, 두분 모두 시를 해석하시고 번역하셔야 했기에,
한글로 번역된 시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분의 시가
알맞게 번역이 되었고, 사실 위의 시를 완벽히 한글로 번역하기란
불가능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두분의 번역된 시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물이 반쯤 담겨져 있는 유리잔을 상상해봐요.
반이 비워져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반대로, 반이 채워져 있는 것일까요?
같은 의미이지만 다른 느낌이 나지 않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 있음에 란 시 너무 감사합니다!
남은 한주도 활기차게 보내세요!

fatamorgana님의 댓글

fatamorgana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족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지성은 부족합니다

애쓰지 않으면
낙천주의는 부족합니다

마술 같은 일들이 없으면
삶은 부족합니다

믿어주지 않으면
우정은 부족합니다

용기내지 않으면
사랑은 부족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그냥 이렇게 옮겨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 '당신이 없으면 나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용기'가 '사랑'을 채워 주고, '신뢰'가 '우정'을 두텁게 하듯 '나'를 충분하게 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너' 라는 '신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나를 채워 주는 너를 무시하고 밀어내듯, 정말로 값진 가치들을 채워 주는 알멩이들을 잊은 채 살아 갑니다.

  • 추천 2

한겨레님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fatamorgana 님 ! 반갑습니다.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네요.
저는 글을 쓸 때에 가능하다면 우리에게 일상어가 되어버린 한문용어를 쓰지 않고 순우리말을 찾아서 바꾸어 쓰려고 노력합니다. 아마도 제가 베리에 올려온 글들 가운데 그런 제 노력이 언뜻언뜻 보이리라 믿습니다.  특히 제가 어제 자투에 올린 "대행 큰스님 떠나신 새벽에"를 읽으시면 그런 의도가 잘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번역하면서 "부족(不足)""지혜(智慧)" 등을 피해서 "채워지지 않다, 넉넉하지 않다" 와 "슬기"로 바꾸어 써 본 겁니다. 그런데 둘째 련에서 "역량으로 채워주지 않는다면"의 뜻으로 읽은 걸 순 우리말로 옮겨쓰려고 끙끙거리다가 포기했었는데,  와아 !  님께서 "애쓰지 않으면"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옮겨 주셨네요. 이렇게 쉬운 걸 몇날 몇일을 고심하고도 몰랐다니..... 이젠 나이 탓으로 두뇌 회전이 느려졌는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아아 ~ 베리에서 이토록 마음과 뜻이 통하는 벗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삭막할 수도 있는 노후의 삶이 참 풍성하고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 

우리가 한문투의 용어들을 일상적으로 쓰다보니 본디 아름다운 순 우리말이 점점 잊혀져 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좋은 시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fatamorgana님의 댓글

fatamorgana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갑습니다 한겨레님. 좋은 글들 늘 고맙습니다.

한자말에서 비롯된 어려운 낱말들을 마구 쓰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구석이 없지 않지만, 끊임없이 사라지고 밀어내고 받아들이며 변해가는 말의 자연스러운 속내는 분명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애쓰다'의 '애'도 실은 한자말입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변해가는', '자연', '분명', '실은' 이런 말들도 한자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자말들이었으나, 긴 세월 숱한 사람들이 우리말 만큼이나 많이 써 온 말들이 정말 많습니다. '시'라는 말은 어떻습니까. '시'를 대체할 순수한 우리말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에게도 순수('순수'도 한자말입니다)한 우리말들을 찾아 쓰려는 노력(아 '노력'도 한자말이군요.)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Jivan님의 댓글

Jiva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랜 만입니다. 모든 분들, 안녕하시지요?
한겨레님, 좋은 글들에서 많이 배웁니다. 
위의 시는 어딘지 모르게 성경과 같은 분위기도 느껴진다라고 감히 말해 봅니다, 제게만 그런가요 ?? 근데 전 성경에 대해서 아는 바 없습니다...
여기저기 영어나 불어 등등의 단어를 갈수록 더 생각없이 너무나 쉽게 사용하는 모습이 전 너무 안타깝습니다. 창피스럽기도 하구요. - 외국인 친구들이 한글 적힌 거 읽어 달라하면, 어, 영어 단어들이네, 하면서 이렇게 많은 영어 단어들을 한국에서 사용해야만 하는지 의아해하는 게 역력하더군요. 한국인들은 한글을 그냥 영어 발음기호로 전락시킨다 설명할 수도 없고..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Jivan 님 ! 오랜만입니다. 성경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시는 것 무리가 아닙니다.
이 시인은 유독히 동어반복과 운율의 반복 형식을 통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기에,  동어반복의 틀을 통해서 복음 전달을 명료하게 하려는 성경의 분위기와 다름이 없습니다.

영어조기교육 열풍이 유치원생부터 부는 사회분위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러는 걸 어찌하겠습니까 ?  교육정책의 근본이 바뀌지 않는 한, 바로 잡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외국어를 절반 이상 섞어서 말해야 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 그런 국적 없는 교육정책을 만들어내는 지성인들의 오도된 역사관을 안타까워 해야 합니다.

길벗님의 댓글

길벗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위에서 하신 한겨레님의 말씀에 덧 붙입니다.
 
간단하게 Logik 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아시리라 믿지만, 생각을 전개하는데 Formalismus 로서 귀납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연역법(Deduktion)의 근간이 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어떤 새로운 사실을 탐구하는 한 방법으로서 쓰이는데, 옛 철학자들의 꿈이자 최종목적으로서, 그들은 전제가 되는 공리가 참이라면 우리가 처해있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을 도출해낼 수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현대 인공지능의 기초가 되어 기계적으로 연산을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무척 다의적이고 공리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이런 Formalismus 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한겨례님께서는 서양의 물질문명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가릴 것 없이 제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삶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감히 권해드리자면 "Doppelspaltexperiment" 에 대해 찾아보시면 재미있는 글과 동영상을 비롯해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화두를 찾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시라면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구체적인 어구를 사용하면 갇혀버릴 수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시에 "싸움", "통일", "조화", "해방", "인내", ... 등의 말이 등장한다면 거기서 독자의 연상이 멈추어 버리게 됩니다.

작품활동의 본목적 중의 하나는 아마도 Animation, 생기,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 아닐런지요. 불교에서도 '벗어난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같은 의미가 아닐까요. 생명력을 불어넣고 삶의 껍데기를 벗어놓는 방향, 그것이 선시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교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지만 때에 맞춰 천천히 풀어놓기로 하겠습니다. 연기론을 중심으로 놓고 봐도 '인과법칙'은 불교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것이겠죠. 위에서 제가 말씀드린 Doppelspaltexperiment 를 화두로 놓고 보면 시간의 방향성과 인과가 무너지게 됩니다.

.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길벗님 ! 친절하신 안내의 말씀 고맙습니다. 서양의 물질문명이라기 보다는 서구인들의 학문 추구 방법에 대하여 회의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호의를 베풀어주신 데 대한 답으로 우리나라 가곡으로도 불리는 나옹선사의 선시 한 수 올립니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날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날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惜兮    요무애이무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우리나라 고승대덕들의 선시를 더 읽으시려면 아래의 블로그를 방문하시면, 신라 시대 최치원의 선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선시들을 찾아 읽을 수가 있습니다.
http://blog.daum.net/kyopohsb/11859111

길벗님의 댓글

길벗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좋은 답시 하나 올리겠습니다. 1957 자유문학 에 수록한 시인 | 서양  공 중인 | 의 '나무' 라는 시입니다.


나  무



들릴 듯이, 들리지 않는

저렇게 조초로운 자세 속의 선율이

나직하게 바람을 일어 승화한다.



화염처럼 치솟는 수심(樹心)은 뿌리 깊이 뻗어

만엽(萬葉)에 스미는 스스로의 화려한 체념!

나무들은 그 언제나

저마다의 고독을 대하면서

말없이 자신을 믿으며 살고 있다

나무여, 나의 노래에

너와 같은 인내와 믿음과 기도를 주라



바람의 애무에 적시우면서

하늘 지향하는 새들의 휴식을

노을빛 속에 초대하여 저무는

이 우람한 협주(協奏)의 여울!



소나무, 잣나무, 느티나무라 외롭게

부르지 말라 분별지 지나지 않는 이름을!

그들은 이곳에 정주(定住)하는

차별 없는 동포들이다



무수한 빛발이 지나는

밀어(密語)의 강을 이루우며 그들은

서로 동경으로 접촉하고 있다

나무에 대한 나의 죽음에의 향수!

저 꿈속같은 공간에서, 나의 노래는

세월의 고적한 여운에 지나지 않는다



풍매(風媒)의 기쁨으로 해마다 우거지는

나무들의 아늑하고 줄기찬 영위(營爲),

그들은 이 지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존재'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랑하는 시보다 아름다운

그들의 그윽한 오후의 대화들이

오늘, 여름을 불러 가지마다 더욱 푸르다



우리들이 제멋대로 이름한 나무와 나무,

하늘의 침묵처럼 슬기로운 그의 계시(啓示)!

나무는 정녕 신의 이름인지도 모른다.






....

비르투포르투나네체시타님의 댓글

비르투포르투나네체시타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길벗님과 한겨례님의 번역..그리고  fatamorgana 님의 각기 개성있는번역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글을 읽으면 너무 행복해집니다. 혼자서 끙끙거리며 다른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번역이 될지궁금해하고있었거든요.그외에 곁들여진 시 들도 감사하게 잘읽었습니다.
 
[http://berlinreport.com/skin/board/mw.basic/mw.emoticon/em6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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