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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시소설 연재 장편소설 <나지라기> 제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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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포신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7,400회 작성일 02-10-18 15:55

본문

위병의 전갈을 받고 서둘러 위병소로 내려간 성주 앞에 영주는 벌떼들이 윙윙거리는 아카시아 꽃 사잇길에 연두 빛 양산을 받쳐들고 성숙한 여인으로 눈부시게 서 있었다.
세 해 전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던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만 가슴속에 묻고 있었던 성주였기에 눈앞에 서 있는 눈부신 여인이 영주라고 알아보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아아니 ? 영주야, 어떻게 여기를…"
허둥대는 성주를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며 영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눈길에 애절한 그리움과 다시 만났다는 반가움이 서려 있었다.
"한 선생님 ! 영주 양, 내가 모시고 왔어요. 자 우리 한 선생님 외출증 받아왔으니 우리 집으로 갑시다."
인사계 박상사 부인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위병소에서 나와 넋 잃은 듯 말문 막힌 채 서 있는 성주를 재촉했다.
일과 후 저녁시간에 두 시간씩 부대 밖 중대장 집에서 국민학교 6학년인 중대장의 딸과 5학년인 인사계 아들의 서울 학교 진학을 위한 가정교사 역을 맡고 있는 성주를 부대 장교부인들과 하사관 부인들은 '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서울 신당동이 친정인 박 상사 부인은 특히 성주에게 피붙이 같이 살뜰한 정을 주면서 가끔 서울 가는 길에 명륜동에 살고 있는 성주어머니를 찾아가 언니야 동생이야 하며 지내는 처지여서 성주도 스스럼없이 '이모'라고 불렀다.
월남 파병 차출 특명이 떨어지면 탈영하는 사병이 나오던 무렵에 월남 파병 지원서를 낸 성주를 말리다 못해 서울에 연락, 어머니를 오게 해 끝내 파월 지원을 취소시킬 정도로 성주를 친조카처럼 여기고 있던 박상사 내외이기에 성주 대신 박상사 부인이 중대본부에 들어가 외출증을 끊어와도 부대원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모가 영주를 어떻게 알아서 부대까지 데리구 왔어요 ?"
꿈에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엉뚱한 상황에 기가 막힌 성주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묻자 박 상사 부인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성주와 영주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대답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영주 양이 우리 한 선생님을 지성으로 찾아다니다 보니 나를 만나 소원을 이루게 된 거지 뭘. 그런데 왜들 그러지 ? 몇 년만에 그리던 사람들이 만났으면 남들 눈 때문에 포옹은 못할 망정 손이라도 잡아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
그제서야 성주는 나갔던 정신이 돌아온 듯 영주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영주야, 정말 몰라 볼 뻔했어. 떠날 때는 단발머리 소녀였는데, 어느새 어른이 됐네. 아주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다니…"
"오빠 …"
비로소 성주가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자 영주는 양산을 내팽개치고 와락 성주를 끌어안으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울기는, 영주야, 자 그만 그쳐, 남들이 보잖아 "
등을 또닥거리며 달래는 성주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더욱 자극을 받은 듯 영주는 더욱 서럽게 흐느꼈다.
"오빠 잠깐만, 잠깐만 이대로…"
영주의 흐느낌이 진정되자 어깨를 감싸안았던 손을 풀려고 하자 영주는 화들짝 놀라며 성주의 손을 잡았다.
"우리 오빠 얼굴 좀 보자, 자나깨나 보고싶던 우리 성주 오빠 얼굴 얼마나 어른스러워졌는지 한번 자세히 보자"
영주는 눈물자국 있는 얼굴 그대로 성주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두 손으로 성주의 두 뺨을 감쌌다가 귀도 만져보고 코도 만져보고 입술도 더듬어 보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자, 자, 여기서는 그만 하구 어서 집으로 가자니까 그러네. 집에 가서 실컷 회포를 풀라구 "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영주에게서 둘의 관계를 대강 들어 아는 듯한 박상사 부인이 재촉을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무엇엔가 떠밀리듯 벌떼가 웅웅거리는 눈부신 아카시아 꽃길을 따라 박상사 집으로 향했다.
"영주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 말 한마디 없이 어느 날 훌쩍 사라지더니,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이 산골까지 이렇게 갑자기 찾아 왔어 ? "
"오빠, 나 지금 인제군청 옆에 있는 인제의원에 있어. 거기서 오늘 아침 진찰 받으러 온 저 부인이 데리고 온 아들과 주고받는 말 가운데 오빠의 이름이 들리기에 허심 삼아 물었더니, 글쎄 서울 명륜동에 집이 있는 '한성주 상병'이 여기 이 산골짜기 부대에 있다는 거지 뭐야. 내가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저 부인이 자기 아들 가정교사하는 선생님이라고 반색을 하면서 부대까지 안내해 준다고 해서 따라왔어."
"그럼 날 찾으려고 인제의원에 취직을 했다는 거야 ?"
"그 때는 어머니께서 다시는 눈앞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시는 바람에 오빠를 잊겠다고 결심하고 말없이 떠났지만, 하루도 못 가서 오빠를 잊을 수가 없다는 걸 알았어. 오빠는 나 같은 건 염두에 두지도 않고 없어졌어도 찾지도 않았지만 나는 늘 오빠네 집 근처를 서성거리면서 먼발치에서나마 오빠 소식을 들어야 마음이 놓이고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었어. 그러다가 오빠가 사병으로 입대했다는 소식을 들었지. 오빠는 모르겠지만 나 논산훈련소에도 갔었어. 훈련병은 면회가 안 된다고 해서 오빠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울면서도 오빠가 군대에 있는 동안은 어머니 눈치 보지 않고 오빠를 자주 찾아가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꿈이 부풀어오르기도 했어.
오빠가 김해 공병학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사정사정해 이틀 말미를 받아서 달려갔는데 오빠는 바로 하루 전에 춘천 3보충대로 떠났더라구, 헛걸음하고 돌아오면서 어찌나 야속하던지 하늘을 원망하면서 펑펑 울었지. 남의 병원에서 일하는 처지니 마음대로 짬을 낼 수도 없는데, 겨우 겨우 짬을 내어 또 춘천 3보충대라는 델 찾아가 물으니 말도 못 부치게 하면서 아예 이상한 여자 취급을 당했어. 하긴 지금 내가 생각해도 누이동생이라구 하면서 그렇게 군번도 소속도 주소도 없이 이름만 내세우면서 찾는다는 게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는데, 그 때는 그냥 모르쇠로 고개를 가로젓는 그 군인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어….
도저히 안 되겠기에 마음을 다잡으면서 명륜동 어머니를 찾아가 물었지. 다시는 오빠 앞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감히 또 찾아와서 오빠 있는 곳을 묻는 내가 못마땅하셔서 건성으로 '강원도 인제에 있다더라' 하는 말 한 마디 듣고 버스로 여덟 시간 걸리는 인제 땅을 석 달 걸러 한 번씩 네 번이나 다녀갔어. 골짜기 골짜기 부대 위병소마다, 버스나 길에서 만나는 군인들마다, '한성주'라는 이름 석자 물으며 한 해가 넘게 인제 땅을 뒤지고 돌아다니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버스정류장 거리에서 올려다 보이는 군청 옆 인제의원에 들어가 떼를 썼지. 사연이 있어서 그러니 한 일년만 간호보조원으로 써 달라구. 그랬더니 신원을 증명할 수 있게 먼저 있던 병원 원장의 추천서를 갖고 올 수 있느냐고 물어. 그 길로 되짚어 서울 올라가서 원장 선생님한테 사정을 말씀드렸어.
내가 오빠 찾으려고 짬만 나면 강원도행 버스를 타는 속내를 알고 있던 원장선생님이 추천서를 써 주면서 손수 인제의원 원장에게 전화까지 해 주셨어. 오빠 찾으면 다시 돌아오라구 하시면서."
"이 바보야, 날 찾아서 어쩔라구 그렇게 애를 쓰고 다녔어"
자초지종을 듣고 있던 성주가 기가 막혀 꾸짖듯이 말을 끊어도 영주는 말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성주의 팔에 애틋하게 매달려 왔다. 그 애틋한 몸짓에서 주위를 감싸고 있는 아카시아꽃 향기와는 또 다른 성숙한 여인의 야릇한 체취가 풍겨와 성주를 당황하게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귀밑에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열 다섯 살 배기 소녀가 어느 사이 열 아홉 살 성숙한 여인이 되어 '나 당신이 그리워 이렇게 힘들고 먼길을 헤매 돌아 찾아왔노라'고 하소연하는 영주의 절절한 그리움이 가슴을 두드려 성주는 처음으로 영주를 여인으로 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하늘이 도우셨는지 마침 인제의원에서도 간호보조원이 필요하던 참이라 경험도 있고 또 서울 병원에서 원장이 추천하고 부탁도 하는 나를 하루라도 빨리 내려오라고 해서 옷 가방 하나 들고 기약 없는 먼 길을 왔는데, 글쎄 온지 한 달만에 오빠를 만나게 됐지 뭐야. 이런 걸 두고 천우신조라구 하는 건가 봐, 천우신조 ? 아니 아니지 이런 건 숙명이라구 할 꺼야, 그렇지 ? 오빠 ! "
"얘길 듣자니까 정말 예삿 사연이 아니네, 영주양, 그럼 우리 한 선생님 찾으려고 꼬박 두 해를 논산으로, 김해로, 춘천으로, 인제로 헤매고 다녔단 말이잖아…"
앞장 서 가고 있던 박 상사 부인이 영주의 하소연을 다 귀담아 들은 듯 돌아서서 말참견을 하고 나서자 영주는 더 신이 나서 이른 봄 들녘 끝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종달새 마냥 끝없이 재잘댔다.
"왜 아니에요, 그래도 이렇게 오빠를 만나니까 찾아 헤맸던 일들이 모두 까맣게 사라지네요. 두 해가 이 틀쯤 지난 것 같기도 하고, 어때요 ? 마치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아요 ? 수 천리 길을 찾아온 여인이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카시아 꽃잎이 흰 눈처럼 휘날리는 눈부신 꽃길을 팔짱을 끼고 걷고 있는 이 광경, 아! 기뻐라! 아! 행복해라!"
영주는 성주의 팔을 놓고 떨어져 내리는 아카시아 꽃잎을 두 손 벌려 받으며 초여름 산기슭에 엄마 따라 첫나들이 나온 아기노루처럼 이리저리 깡충거렸다.
"세상에…,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꼭 갓 태어나 처음 들판에 나온 새끼 노루 같네, 그런데 한 선생님, 두 분 어떤 사이에요 ? 어머니 반대로 헤어진 연인 ? 아니면 영주 양이 돌부처 같은 한 선생을 짝사랑하면서 좇아 다니는 일방통행 사랑 ?"
영주가 동화 속에 나오는 숲 속의 요정처럼 흩날리는 아카시아꽃잎을 희롱하며 깡충거리고 있는 사이 박 상사 부인이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성주를 추궁했다.
"둘 다 아니에요. 나중에 천천히 말씀드릴 께요, 사연이 좀 길어요."
"어쨌거나 영주 양이 가엽네요, 얼마나 절실한 그리움이면 그렇게 터무니없는 길을 찾아 나설까. 열 여섯 살부터 한 선생님을 해바라기 했다니까 영주 양이 좀 조숙한 건가 ?"
"태어날 때부터 부모 없이 남의 손에 컸으니까 조숙할 수밖에 없지요."
"저런 !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없었다니 ? 그게 무슨 소리에요 ?"
"영주는 6.25때 월북한 남로당 고위 간부인 아버지와 6.25 당시 전남 보성군 여맹부위원장이었던 '소화'라고 하는 무당 사이에 태어난 유복녀에요. 어머니가 감옥에서 영주를 낳고 산욕으로 숨을 거두었지요."
"아니 그럼 나이가 안 맞잖아. 6.25 이듬해에 태어났으면 지금 열 다섯 살밖에 안되잖아 ?"
"저도 그게 참 이상해요. 실제 나이는 열 다섯 살밖에 안돼도 열 아홉 살 행세를 하면서 살면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도록 몸도 성숙해지는 건지….
감옥에서 영주를 낳으면서 심한 산고(産苦)로 숨을 거둔 여인의 검시를 한 의사가 연고자 없는 영주를 데려다 키우면서 따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한 해 전에 죽었지만 전쟁통에 미처 사망신고를 하지 못한 딸의 호적을 그대로 영주의 호적으로 삼은 거래요. 이름도 그대로구요. 그래서 국민학교도 남보다 한 살 더 일찍 만 다섯 살에 들어갔고, 어릴 적부터 제 나이보다 네 살이 더 많게 살아왔으니 조숙할 수밖에 없지요."
"세상에 어쩌면 그런 일이…. 그야말로 남의 인생을 사는 셈인가 ?"
박 상사 부인은 저만치 떨어져서 아카시아 꽃잎을 두 손에 받고 서 있는 영주를 애처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영주가 남의 인생을 사는 건 아니에요. 중학생이 되던 해 양아버지가 노환으로 죽으면서 영주에게 친부모의 이야기를 해 주고 의대 후배이면서 영주 친아버지의 고등학교 동기동창이 서울 삼청동에서 열고 있는 자애병원에 영주를 부탁했지요.
거기서 가정부 겸 간호보조원 겸 병원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야간 중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천애고아가 겪어야 할 제 몫의 인생을 잘 감당해 오고 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그 병원 집 두 아들 딸을 돌보는 입주 가정교사로 들어가 있었는데, 때로는 야간 중학교에 다니는 영주가 어려운 숙제의 도움을 청하는 일도 있어서 가까워지게 됐지요. 늘 다소곳하면서도 부지런해서 병원 원장과 그 부인으로부터 "무엇 하나 탓할 것이 없는 아이"라는 칭찬을 들어도 기뻐하는 빛을 얼굴에 나타낼 줄 모르는 늘 어두운 얼굴이 마음에 걸려 더욱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 관심 때문에 원장 부인으로부터 영주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누이처럼 대하게 됐지요. 모르겠어요. 그런 관심과 감정을 연민이라고 해야할 지 동정이라고 해야할 지, 영주도 그런 제 마음을 알고 차츰 마음 문을 열기 시작했지요.
여자 형제 하나 없이 남동생 둘과 함께 삼형제로 홀어머니 슬하에서 살아온 제게는 살뜰한 정을 주기 시작한 영주가 친누이나 다름없었지요. 그래서 쉬는 날이면 우리 집에도 데려가고 병원 근처 삼청공원 약수터 산책도 함께 가곤 했는데, 붙임성이 좋은 영주는 얼마 안가 우리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틈만 나면 제 집처럼 찾아와 집안 청소니 빨래니 하는 일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도맡아 해서 우리 어머니는 '늦게 딸자식 하나 생겼다'고 즐거워 하셨지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헤어졌기에 영주 양이 그렇게 오빠 찾아 온 천지를 헤매게 만들었어요 ?"
"어머니에게는 딸처럼, 동생들에게는 오누이처럼 굴면서도, 내게 대하는 태도는 심상치 않다고 보신 어머니께서 냉정하게 우리 집 출입을 못하게 하시는 바람에 절망한 영주가 자애병원도 그만 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찾을 수가 없었어요."
"세상에 그 때 나이 겨우 열 둘 아니면 열 세 살이었을 텐데…"
"실제 나이는 그랬어도 영주의 정신연령은 그때 이미 열 일곱 살이었지요. 어릴 적부터 네 살을 더 먹은 나이배기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아무튼 어머니는 한 밤중 잠자는 제 옆에서 애틋한 눈길로 저를 지켜보고 있는 영주의 모습에 당황하기 시작했고, 또 제 밥상을 차리거나 옷을 챙기는 일에도 늘 어머니를 앞지르는 데에 기분이 상하기도 하셨대요.
결정적인 일은 어머니 친구 분들이 집에 놀러 오셨다가 그 중 한 분이 영주를 보고 '이 집 민며느리'라고 뼈 있는 농담을 했는데, 영주가 아니라고 하지 않고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일로 말미암아 벌어졌지요.
친구 분들이 돌아간 다음 영주를 불러 앉힌 어머니께서 제게 대한 영주의 감정을 추궁했는데, 영주는 조금도 서슴치 않고 '오빠를 남자로 사랑하고 있으니 장차 어머님의 며느리로 받아 달라'고 대답했다는 거예요. 기겁을 한 어머니께서 '나는 너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으니, 그런 마음이라면 다시는 내 집에 드나들지 말고 성주 앞에 얼씬거리지도 말아라' 고 엄포를 놓으셨답니다. 그 후에도 영주가 몇 번 더 찾아 왔지만 그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이 집안에 못 들어온다' 고 고함 치시면서 집안에 들이시지를 않으셨답니다. 그 때 저는 자애병원 집 큰 딸의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 막바지 공부를 돌보느라고 두문불출할 때여서 집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까마득하게 몰랐지요.
영주가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춘 뒤에야 비로소 어머니로부터 전후 사정을 들어 알게 됐지요. 말 한 마디 편지 한 통 남기지 않고 삶의 둥지인 자애병원을 떠날 만큼 영주의 절망이 클 거라고 짐작하고 여기저기 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군에 입대하게 됐고요."
"이제 저렇게 찾아왔으니, 한 선생님, 어떻게 할래요 ? 아니 그보다는 영주 양에 대한 한 선생님의 감정은 도대체 어떤 거에요 ? 사랑 ? 동정 ?"
"글세 그걸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우선은 그냥 누이처럼 편하게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영주가 너무 앞지르는 바람에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어요. 이런 게 사랑인지는 몰라도 전 영주가 참 편하고 좋아요. 영주가 내 일거수 일투족을 챙겨주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영주와 함께 길을 나서면 온 세상이 다 낙원인 것 같은 느낌이 와요. 그러면서도 영주가 여자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영주는 언제부터 저를 이성으로 대하기 시작했는지…. 우선 얘길 들어 봐야죠.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
"내가 보기에는 물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네요. 어머니께서 그렇게 완강하게 물리치셨다는 데도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한 선생님 없으면 이 세상 못 산다는 거 아니겠어요. 제대할 때까지 이 산골짜기에서 한 선생님 여자가 돼버려 아이라도 하나 낳으면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시겠지 하는 마음 아니겠어요 ?"
"저 그런 욕심 없어요. 이모님. 오빠가 이모님이라고 하니 저두 그냥 이모님이라구 부를 께요. 괜찮죠 ? 이모님 말씀대로 저 오빠의 여자가 되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어머니 허락까지는 바라지 못해요. 어머니가 어떤 며느리를 기대하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저 여기서 제대할 때까지 만이라도 오빠 옆에 있고 싶어서, 어머니 눈치 안보고 오빠 빨래도 해 주고 입는 옷도 챙겨주고 밥상도 차려 주고 싶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끊고 끼어 든 영주는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하고 울먹였다.
"정말 큰 걱정이네, 그냥 보고싶은 정도면 일년이 넘게 대한민국 천지 다 헤매면서 찾아다니질 않았을 테지만, 사병이 부대밖에 살림 차릴 수도 없는 것이구, 또 설사 영외거주를 할 수 있다 하더래도 우리 한 선생님은 한 달 후면 월남으로 떠나야 하는 파월특명을 받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박 상사 부인이 정말 안타까운 듯 영주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하는 말을 듣고 영주는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넋 잃은 사람이 혼자 말하듯 중얼거렸다.
"월남엘 간다구요 ? 오빠가…? 안돼. 그건 안돼.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찾아왔는데 만나자마자 헤어지라구…? "
"영주양, 정신 차리구 일어나요. 차차 얘기해두 되는 걸 내가 공연히 방정을 떨어서 이 야단이 나네, 에이 입도 방정이지. 자 자 집에 다 왔네요. 내 얼른 점심상 차려 들어갈 테니까 두 사람은 방에 들어가 밀린 얘기 나눠요."
박 상사 부인이 등을 떠밀며 권하는 대로 방에 들어서자마자 영주는 기다렸다는 듯 와락 성주의 품에 안겨오며 오랫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나이 어린 처녀가 혼자서 논산으로 김해로 춘천으로 인제로, 마음속에 간직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헤매 다니면서 겪었을 갖은 고초와 외로움을 헤아려 보면서 성주는 품에 안겨 흐느끼는 영주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문득 삼청동 자애병원 박 원장 부인이 영주의 신상에 대해 궁금해하는 성주에게 조심스럽게 해 주던 말들이 떠올랐다.
영주는 천애고아였다. 아니 낳자마자 부모들로부터 버려져 자신의 출생 사연을 영영 모르는 고아가 됐다면 차라리 일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무거운 짐은 없었을 것이라고 박 원장 부인은 안타까워했다.
감옥에서 피투성이로 받아낸 갓난 영주를 길러준 양아버지 벌교의원 정 원장은 노환으로 인한 임종을 앞두고 중학생인 영주를 불러 앉혀 놓고 영주에게는 청천벽력과 다름없는 출생에 얽힌 사연들을 낱낱이 들려주고, 꿋꿋하게 살아가도록 키워 달라는 당부와 함께 자애병원 박 원장에게 영주를 보냈다고 했다.
철이 들면서부터 이웃 아주머니들이 어쩌다 말 한 마디 이상하게 뱉어 놓다가 당황하며 말막음을 한다든 가 또는 어머니를 비롯한 오빠 언니들이 간혹 자기만 모르는 가족의 비밀이 있는 것 같은 어색한 상황을 보여 준다든 가 하는 일 들 때문에 전혀 짐작이 없었던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그런 짐작과 상상이 사실로 확인됐을 때 열 두 살배기 여중 2학년생이 받은 충격과 절망감의 무게를 성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 한 집안처럼 지내왔던 벌교의원 정 원장의 유언장을 들고 찾아온 여중생 영주를 받아들인 박 원장 내외 역시 영주의 친아버지와 함께 동경유학을 했던 가까운 사이였는데다가 마침 병원에 일손도 딸리던 참이라 병원 일 경험이 있는 영주가 대견스러워 곧바로 야간중학교에 입학을 시켜주었는데, 대학시절 천재소리를 들었던 친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학업성적은 늘 뛰어나다고 박 원장 부인은 혀에 침 마를 새가 없이 칭찬을 했었다.

해방 직후 삼팔선 이남에서 박헌영과 몽양 여운형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나 마침내는 박헌영을 도와 남로당을 결성한 동경제국대학 출신의 공산주의 이론가 정하섭이 미 군정청의 좌익탄압을 피해 지하로 숨어들어 투쟁을 하면서 동거했던 무당 소화에게 남긴 일점 혈육이 바로 영주였다. 그러나 국제연합군의 인천 상륙으로 퇴로가 차단된 수많은 인민군들과 함께 포로가 된 정하섭에게 있어서 무당 소화의 존재는 혁명투쟁의 거점 정도였는지, 패색 짙은 전쟁의 와중에서 소화의 뱃속에서 자신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던 그는 아무 기약도 남기거나 전하지 않은 채 휴전 협상조건으로 이루어진 송환 포로 대열에 끼어 임진강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갔다.
한편 신분의 엄청난 차이로 함께 있기만 해도 황감하기만 했던 정인(情人) 정하섭의 영향으로 6.25 사변을 남조선 인민해방전쟁으로 받아들여 인민군 진주와 함께 여맹위원장으로 변신했던 무당 소화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어릴 적부터 꿈속에서나 그리던 정하섭과 보낸 꿈만 같은 두 달 동안의 신접살림이 인민군의 후퇴와 함께 풍지박산이 나면서 '골수 공산주의자'의 죄명이 붙어 체포 투옥되었고, 옥중에서 영주를 낳고 출산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했다.
"핏줄은 속일 수가 없는 가 봐요, 친부모로 알고 살아 온 정 원장 내외가 양부모였다는 것과 또 친부모의 비극적인 사연들을 들어 알고도 영주는 여중생답지 않게 너무 의연했어요. 고향 마을의 소꼽친구 시절부터 동경 유학시절에 이르기까지 영주의 친아버지가 모든 일에 늘 그렇게 의연해서 우리들의 맏형 노릇을 했던 일들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만들어요, 영주는….
비록 야간학교지만 여고를 졸업하면 메디칼 센터 부속으로 있는 '간호고등기술학교'에 들어가 나이팅게일과 같은 간호원이 되겠다고 중학생 때부터 구체적인 인생 설계까지 갖고 있는 것도 제 친아버지와 조금도 틀리지 않아서 우리들 마음을 더 아프게 해요."
성주가 보기에도 영주는 그런 아픔과 슬픔을 가슴속에 지닌 처녀애 같지 않게 의젓하고 품위가 있는 데다가 병원 환자나 손님을 대하는 자태가 한결같이 상냥스럽고 깔끔해서 더욱 애틋한 정이 들었었다. 그런 영주가 전방에서 사병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성주를 터무니없이 갑자기 찾아와 '빨래도 해주고 싶고, 입을 옷도 챙겨주고 싶고, 밥상도 차려주고 싶다."고 접었던 마음을 펼쳐 보이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영주는 한번 잘못으로 잃어버렸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찾아낸 보물을 반갑고 소중해서 어루만지듯 성주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울고 웃었다.
"내가 어리석어서 한 번은 놓쳤지만, 이젠 다시 안 놓칠 거야. 근데 오빠, 월남 간다는 게 정말이야 ? "
" 응, 파월특명을 받았으니까 "
" 안 가면 안 되는 거야 ? "
" 그냥 특명을 받은 게 아니고 내가 자원서를 내서 받은 특명이야 "
" 아니 오빠, 지금 제 정신이야 ? 남들은 전쟁터 안 가려고 별별 수단 다 쓰고 심지어 탈영까지 한다는데, 자원이라니 ? 어머니가 오빠 월남 가는 걸 그냥 두고만 보실 것 같아 ?"
" 안 그래도 석 달 전에 내려온 특명을 여기 이모가 엄마에게 연락해서 엄마 극성으로 취소시켰다. 하지만 이젠 엄마도 포기하셨어. 아니 포기가 아니라 아들에게 설득 당했다고 할까, 하여튼 이젠 못 가게는 안 하셔 "
" 월남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기를 쓰고 가려고 해 ?, 응 ? 월남 가서 뭘 하려고 ?"
"무얼 하긴, 영주야, 좀 주제넘고 거창할는지는 몰라도 월남에 전쟁이 있기에 가려고 하는 거야. 영주의 부모님과 내 아버님을 앗아간 전쟁의 참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가려는 거야. 또 월남은 이 시대 이 세계의 희생양이야. 거기에 어떤 해결책이, 아니 이 시대의 물음에 대한 해답이 있을 꺼야. 그 해답이 내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을 꺼야 "
"난 오빠 말이 무슨 말인지 도통 못 알아 듣겠어. 문학가가 되겠다는 오빠의 꿈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은 데, 운이 나빠 전쟁터에서 개죽음하면 꿈도 야망도 허사가 되는 거 아냐."
"걱정하지 마, 영주야. 우리 엄마가 꾼 내 태몽에 의하면 아직 내 고생이 많이 남아서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을 꺼야. 그 얘긴 그만하고 이제 네 이야기 좀 들어보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전방까지 날 찾아온 거야,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때는 언제고 "
" 오빠, 나 오빠를 사랑해. 그냥 해 보는 소리가 아니고, 오빠가 없으면 이 세상 살아갈 의미가 없을 만큼 절실하게 사랑해. 어머니가 그걸 눈치 채시고 오빠 앞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하도 무섭게 대하시는 바람에 '그 까짓 것 잊어버리자'하고 도망쳤지만, 아니야 잊을 수가 없는 거였어, 오빠를 만나고 나서야 내가 여자라는 걸 처음 스스로 깨달았고, 오빠를 통해서 나를 낳아준 부모님의 아픔과 슬픔을 알 수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오빠를 잊을 수가 있겠어. 오빠한테는 이 영주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겠지만, 영주한테는 오빠가 하늘이고 아버지고 그런 특별한 존재야.
아침해가 오빠의 얼굴 위에서 떠오르고 저녘해가 오빠의 등뒤로 지는 하루하루를 보낼 만큼 오빠를 사랑해. 하지만 오빠, 나 오빠하고 결혼하겠다는 욕심은 없어. 어머니 말씀이 맞아. 골수 빨갱이의 딸년, 무당의 딸년, 게다가 천애고아 주제에 넘볼 것이 따로 있지, 감히 오빠하고 평생 부부로 살 꿈을 어떻게 꾸겠어. 그래도 오빠를 미친 듯이 찾아다닌 건, 단 한 가지 바램이 있기 때문이야."
영주는 문득 말을 끊고 서러움이 금방이라도 흘러 넘칠 듯 그렁그렁 잠긴 눈으로 성주를 바라보았다.
영주의 마음을 진작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성주였지만 막상 이토록 애절한 사랑의 고백을 들으니, 당황스럽고 쑥스러운 가운데 영주의 존재가 더욱 애틋하게 마음속에 자리잡아 오는 것 같아 안겨오는 영주를 끌어안고 말았다.
" 그 한 가지 바램이 뭐길래 겁도 없이 사내들만 우글거리는 전방을 휘젓고 찾아 다녔어 ?"
끌어안은 채 영주의 등을 토닥이며 성주가 궁금한 듯 묻자, 영주는 주인의 귀여움을 받는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며 물기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나중에 말해 줄게, 오빠. 지금은 나 너무 행복해서 말 못 해."

이모가 차려주는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성주는 더 깊은 이야기를 둘이서만 나누기 위해 영주를 데리고 인제 서남쪽을 흐르는 인제천 가로 나갔다. 사람들은 흔히 소양강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하게는 인제천(麟蹄川)이다. 설악산 북쪽 소청봉·마등령·늘목령·황철봉·미실령·신선봉·진부령 등등의 골짜기 물을 모아 흘러내리는 북천과 대청봉 남쪽 청봉에서 오색 약수터에 이르는 독주골 깊은 계곡의 물과 대승폭포·12선녀탕·옥녀탕 등 수많은 폭포와 담(潭)의 물을 모아 급하게 흐르는 한계천 물이 인제군 합강리에서 만나면 비로소 '인제천'이 되고, 이 물이 흘러 군축령 계곡을 빠져나가 남전리 들판을 가로질러 3군단 사령부를 싸고 돌아 구만리를 지나 양구군으로 들어서면, 여기서부터 비로소 '열 여덟 딸기 같은 순정을 지닌 처녀가 뻐꾸기 우는 갈대밭에서 돌아온다고 약속하고 떠난 님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소양강'이다.
인제군청 정문에서 마주 보이는 내리막길로 약 1킬로미터 내려가면 자갈밭 너머로 화강암 계곡을 소리치며 흐르는 인제강 강변에 이르게 된다. 많은 시인들이 강물이 속삭인다고 노래하지만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들은 군축령 계곡을 지나기 전까지는 속삭이며 출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소리치며 달려간다. 특히 달 밝은 밤 인제강변 자갈밭에 앉아 있노라면 강물이 달려가는 소리가 마치 천군만마가 들판을 가로질러 진군하는 듯하다.
"저 물도 내 안 같아 울면서 밤길 달려 가누나"
소리치며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물끄러미 앉아 있던 영주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왕방연의 탄식 시조인가 ?"
" 왜 아녜요. 금부도사 왕방연이 임금자리에서 죄인 노산군으로 끌어 내려진 단종을 영월까지 호송하고 돌아가는 길에 냇가에 앉아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 울어 밤길 예놋다'라고 탄식했던 강물도 이 강물처럼 소리치며 흘렀던 게야. 이 강물 소리를 들으니 정말 그 심정을 알겠네.
'천만리 머나먼 길 돌아 고운 님 찾았더니 님은 날 버리고 천만리 먼 길을 떠난다네 저 물도 내 안 같아 소리쳐 울며 달려 가누나' 어때요 ? 시조가 됐나요 ? "
영주는 울고 있었다. 애써 성주를 외면하고 강물만을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영주가 너무 안쓰러워 등뒤에서 끌어안자 영주는 와락 돌아 앉으며 눈물 젖은 얼굴을 성주의 얼굴에 부벼 댔다. 눈물에 젖은 첫 입맞춤이었다.
목말라 헤매던 사슴이 시냇물을 만난 듯 갈급하게 성주의 입술을 탐하던 영주는 깊고 오랜 입맞춤에 마음과 몸을 놓아 버린 듯 성주의 무릎을 베개 삼아 강 가 자갈밭에 누워 새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5월의 하늘을 배경으로 클로즈업되는 성주의 얼굴을 오래 오래 올려다보았다.
"아, 눈부셔라 ! 오빠, 오빠 얼굴을 쳐다보면 왜 난 항상 눈이 부실까."
영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수줍고 달콤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종알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또 바보 같은 소리…, 누워서 하늘의 해를 올려다보니까 눈이 부신 거지 그게 어디 내 얼굴을 봐서 눈부신 거니 ?"
"아이구 목석 같은 우리 오빠. 하여튼 분위기 깨는 덴 일등이라니까. 저렇게 사람 마음도 몰라주는 목석인데, 내가 뭣에 홀려서 이러고 찾아다니는지 몰라. 그런데 오빠, 아무리 목석이라도 꼭 들어주어야 할 소원이 하나 있어. 다른 건 다 그만두고 이것 하나만은 꼭 들어주어야 해 ? 응 ?"
" 뭔데 ? 들어 봐야 들어주고 안 들어주고 하지…, 말해 봐."
" 먼저 꼭 들어준다고 약속하고…"
영주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성주의 새끼손가락에 걸며 약속을 하라고 졸라댔다.
" 그런 게 어디 있어 ?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덜컥 약속해 놓고 지키지 못할 일이면 어떡하라구 ?,
" 오빠, 나 아까 말했지 ? 오빠는 나한테 특별한 존재라구. 내게는 오빠가 하늘이고 아버지라는 말, 그거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서울 올라와서 들어간 학교 역사시간에, 아득한 옛날 곰네(熊女)가 한웅천황으로 인해 여자가 되고 한웅천황으로 인해 단군이신 한검을 낳았다는 단군설화를 배우면서 나는 그 옛날 한웅천황이 곰네에게 하늘이고 아버지고 남편이었듯이 내게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냥 생각만 한 게 아니고 그 후부터 아침에 일어날 때,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꼬박꼬박 기도하기 시작했어. '내게 하늘이 되어주고 아버지가 되어 주고 짝이 되어 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그런데 기도 시작한지 꼭 백 일되는 날에 오빠가 우리 병원 집에 가정교사로 왔어. 그날 오빠가 처음 병원에 온 날, 오빠를 처음 보는 순간에도 나는 지금처럼 눈이 부셨어. 그리고 나는 들었어. 마음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저 이가 네 하늘이다. 네 아버지다. 네 짝이다.'하고 속삭이는 소리를….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는 건지 모르지만, 오빠와 내가 만난 건 그냥 우연히 만난 게 아니란 말야. 하느님이 의지할 데 없는 불쌍한 영주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빠를 보내 주셨단 말야 . 근데 오빠는 그걸 모르고 있어. 나는 알고 있는데 오빠는 모르고 있단 말야.
오빠, 나 오빠에게 달리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다만 오빠로 인해서 여자가 되고 싶고, 오빠로 인해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을 뿐이야. 그래서 어머니가 무서워 집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면서도 이렇게 오빠를 찾아온 거야.
금방이라도 품안으로 달려들 듯한 기세로 쏟아내는 영주의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성주는 말문이 막혔다. 언제부터인가 영주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과히 싫지 않아 내심으로는 그 달콤함을 즐겨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영주와 결혼해서 부부가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도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니 대상이 누구라 하더라도 아직은 결혼 같은 문제는 염두에도 두지 못할 만큼 혼자 힘으로 공부하며 살아가기에만도 벅찬 삶의 여정을 성주는 걷고 있었다.
이런 걸 두고 남자의 이기심 아니 남자의 이중성이라고 하는 걸까? 성주의 남성은 이미 영주를 여성으로 받아들여 욕망으로 꿈틀거리고 있는데, 성주의 지성은 '한 여자의 일생을 책임 질 능력을 갖추기 전에 일을 저질러서는 안돼!'라고 차갑게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영주야, 네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니 ? 나도 너를 좋아하는 게 사실이고. 그게 비록 너를 여자로서 좋아하는 건지 새로 생긴 누이로서 좋아하는 건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허지만 이렇게 규율에 얽매인 군대생활을 하고 있는 날 찾아와서 무얼 어떻게 하자구 ? "
"오빠를 찾아 나설 때는 오빠네 부대 근처에 방 한 칸 얻어서 오빠가 제대할 때까지 만이라도 오빠의 여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오빠를 만나면 그렇게 떼를 쓸 참이었어. 그런데 이게 뭐야 ? 겨우 겨우 찾아냈더니 이젠 아예 좇아갈 수조차 없는 월남으로 떠난다구 ? 그래서 아까부터 생각해 봤는데, 오빠 월남으로 떠날 때까지 만이라도 이 영주를 여자로 받아들여주고 영주의 하늘이 돼 주어야 해. 그게 지금 내가 오빠한테 바라는 딱 한 가지 소원이야. 오빠,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 응 ? 응 ? "
성주의 오른 손 새끼손가락을 제 새끼손가락에 걸고 흔들어대며 영주는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졸라댔다.
"이 철없는 아가씨야, 그래서, 그렇게 하다가 내가 월남으로 떠나고 난 다음에 넌 어떻게 할 건데 ? 무슨 유행가 가사처럼 추억만 간직하고 살아갈 거야 ? 또 네 말대로 나로 인해 네가 엄마가 되면 그 아기는 어떻게 키울려고 ? 내가 옆에 있다면 모르겠지만 월남에 가서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처녀가 결혼도 안 하고 애비 없는 아이를 낳아서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살아가려고 ? 그런 걸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니 ? 이 철부지 아가씨야. 그러지 말고 이제 날 만나 봤으니까 서울로 돌아가, 돌아가서 네가 그렇게 원했던 메디칼센터 부속 간호학교에 들어가 공부해라. 공부해서 정식 간호원이 되면 네 소원이 성취되는 것이잖아. 이게 도대체 뭐야 ?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갖고 학교도 중단하고 이렇게 돌아다니다니 난들 마음이 안 아프겠어 ? 네가 간호학교 졸업하고 정식 간호원 될 때까지 나 도망가지 않고 널 기다릴 테니까 걱정 말고 서울로 돌아가. 내 한 가지는 약속하마. 월남에서 무사히 돌아오고 내가 한 가정을 책임질 만한 능력을 갖추게 되면, 그때 우리 다시 네 소원이라는 걸 얘기하기로 약속하마. 그 이전에는 그냥 오래비와 누이로 머물렀으면 한다."
"싫어. 벌써 내 마음 다 밝혀버렸는데 어떻게 그냥 누이처럼 지내 ? 오빠 속마음을 내가 모를 줄 알고. 난 다 알어. 오빠가 뭐라 해도 지금 내게는 오빠가 내 하늘이 되 주어야 해. 그래야 내가 살 수가 있어. 도대체 하늘이 없는 데 장래가 어디 있구,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어 ? "
다소곳했던 예전의 영주가 아니었다.
"영주야 우리 약속하자, 나 월남 갖다 오고, 그 동안 너는 간호학교 졸업해서 정식 간호사 되고, 그렇게 돼서 우리 다시 만나기로…,이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킬 테니까 지금은 자애병원으로 다시 돌아가 간호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다시 시작해, 알았니 ?"
"자애병원 아버지한테는 말도 없이 나왔는데 염치없이 어떻게 또 들어가. 나 여기 인제 오기 전에 있던 서울병원에서도 간호학교는 보내 준다고 했어. 그러니 오빠, 나 오빠가 시키는 대로 서울 돌아가서 간호학교 다닐 테니까, 단 한 주일이라도 좋으니까, 오빠 월남 가기 전까지만 나 저녁에는 오빠 팔 베고 잠들고 아침에는 오빠 품에서 눈뜨고 일어나게 해 줄 순 없어 ? 응 ? 그러면 오빠, 나 오빠한테 더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부담도 지우지 않고, 그냥 멀리서, 아주 멀리서 오빠 그림자만 보고 살께." "
"영주야, 그건 안 되는 거야. 장교도 하사관도 아닌 사병의 영외 거주를 허락할 군대도 아니고, 또 부대에서 특별히 허락한다 하더라도 내가 나를 허락할 수가 없는 일이야. 자 그만 일어나거라, 병원에 들어가 봐야 할 시간이야. 내가 바래다 줄 테니까 어서 일어나. 그리고 나 매일 저녁 아홉 시까지는 박 상사 댁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그리로 연락하구…"
영주는 그날로 시외버스 정류장 아랫골목에 정갈한 방을 하나 얻어 놓고 매일 밤 박 상사네 집 골목에 서서 성주를 기다렸다. 영주의 타는 듯한 목마름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성주는 모른 체라 하면서 늘 영주를 방문 앞까지 바래다주고 어김없이 부대로 돌아갔다.
영주는 낮 시간에도 틈틈이 부대를 찾아와 드러 내놓고 '한성주 상병의 애인'이라고 밝히면서 사 갖고 온 간식거리로 부대원 들의 환심을 사는 한편 중대장과 인사계에게도 선물공세를 펴는 바람에, 중대장까지도 "한 상병, 보자 하니 월남 가는 거 포기하구 제대 말년에 여기서 살림 차려야 되는 거 아냐 ? 어머니는 알고 계시는 일이야 ?" 하고 걱정을 했다.
"아무래두 어머니에게 알려야 하는 거 아네요. 그냥 내버려두면 무슨 일 나겠네. 영주 양 불쌍한 거 생각하면 한 선생이 그냥 안아주면 될 테지만…, 그것두 아닌 것 같구. 하여튼 결혼할 작정 아니면 조심해요, 한 선생."
영주가 매일 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이모가 걱정 반 안타까움 반으로 갈팡질팡 하듯 성주 역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영주를 하숙집 방문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면서 '함께 방안으로 들어가 끌어안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면서도 '안돼 ! 안돼 !'하고 도리질을 하며 부대로 달려가곤 하는 날이 반복되고 있었다.
마침내 화천 오음리 파월장병 훈련소 입소 명령이 입소 일자 사흘을 앞두고 떨어졌다. 성주는 영주가 알면 부대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모르니 성주가 떠난 후에 영주가 알도록 해 달라고 부대원 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지옥 훈련이라고 부르는 한 달 동안의 지독한 파월 훈련을 마치고 월남 맹호부대 공병참모부에 전입을 한 성주는 박 상사 내외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 성주가 부대를 떠난 이튿날에야 박 상사가 전해 주는 성주의 편지를 뜯어본 영주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몸부림치며 대성통곡을 하다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입 초의 어수선한 현지 적응 훈련기간을 거쳐 공병참모부 정보과에 자리를 잡은 성주가 비로소 안정을 찾고 인제의원 정영주 앞으로 서너 번 편지를 보냈지만 무슨 영문인지 답장이 없었다. 그렇게 소식이 끊긴 것이었다.
그 후 성주는 3개월 과정의 맹호부대 월남어 교육대를 수료하고 군사정보대 파견 실습을 거친 다음에 월남군 당국이 실시하는 월남어통역자격시험에 합격, 월남에 도착한지 6개월만에 월남정부가 지급하는 통역수당을 군 봉급 외에 더 받는 공병참모부의 월남어 통역하사관으로 정식 발령한다는 특명을 받았다.
군 복무 의무기간을 일 년 더 연장하면서까지 24개월을 주월맹호사단 공병참모부 월남어 통역하사관으로 복무한 성주가 맨 처음 맡은 일은, 맹호부대와 백마부대가 중부 월남의 1번 국도와 6번 국도 개통을 위해 실시한 <오작교 작전>으로 피해를 입은 호아다 마을 주민들을 위로하고 주민들이 원하는 피해 복구작업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또 복구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 군 부대에서 조달할 수 없는 기와·특수 목재·수동식 펌프 등의 민간용 건축자재들을 구입하기 위해 19번 국도 주변의 기와 가마들을 찾아다니는 한편 사이공까지 출장을 다녀야 했다.
퀴논 꽁데고등학교 강당 신축공사와 퀴논 공설 운동장 실내 체육관 신축 공사에서는 정일권 국무총리의 월남 방문 시기에 맞추어 공사를 완공하기 위해 밤샘작업을 계속하는 바람에 속내를 모르는 월남 고위 공무원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수도 없이 듣다가 나중에는 그 일로 월남정부 보건사회부 장관이 수여하는 공로훈장까지 받았다.
퀴논 시 중심가 로타리 팔각정 신축 공사 때는 공병참모가 사람을 시켜 서울 남산 팔각정의 단청을 칼라 사진기로 촬영해 오도록 해 월남인 화공들을 독려해 그 무늬와 단청을 그대로 재현하는 한편, 멀리 19번 도로의 끝 풀레이쿠와 콘뚬 등지 삼림지대의 제재소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팔각정의 기둥감이 될 아름드리 원목을 찾아내기도 했다. 맹호부대 사단 사령부 인근 깐안 마을에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성당을 신축해 줄 때에는 월남인 목수들과 미장공들의 작업을 지휘하면서 목수의 딸인 구웬 티 낌리엔(元氏 金燕)이라는 관능적인 월남처녀로부터 애틋한 고임을 받는 로맨스도 있었다.
맹호 9호 작전 때에는 중부월남 깊숙이 잠입한 월맹정규군 1개 중대가 울창한 대밭 속에 숨어 있는 것을 포착하고 이를 포위하고 포격으로 섬멸하는 과정에서 폐허가 된 답다 강변 풍전 마을의 가옥 60여 채를 다시 지어주면서 민간용 발전기 한 대와 수동식 펌프 60개를 구입하기 위해 사이공 초론 상가를 두 번씩이나 왕복하면서 동칸다이로(東慶大路)의 동칸(東慶)호텔 레스토랑에서 월남인 바이얼리니스트가 성주를 위해 특별 연주하는 한국민요 '도라지'에 감격해 한 달 통역수당을 팁으로 건네주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성주의 월남복무 24개월은 그렇게 분주하게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쏜살같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나 다른 생각할 여지가 없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문득 문득 몸부림쳐 우는 영주의 모습이 떠올라 성주를 괴롭혔다.

그렇게 헤어져 소식이 끊긴 지 열 한 해만에 독일 땅에서 다시 만났으니, 영주가 "하느님이 무심하지 않다."고 하면서 "전생에 인연이 있는 운명"이라고 마음 들 떠 좋아라 하는 심정이야 짐작이 가는 일이지만 이렇게 긴 헤어짐이 있기 전 강원도 인제강변 자갈밭에서 성주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했던 말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강조하는 영주의 눈빛이 성주에게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영주야, 이젠 네 얘기 좀 해 봐. 왜 간호학교를 안 가구 독일로 왔어 ? 오더라도 학교 졸업하구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 그리고 결혼은 물론 했겠지 ?"
"졸업 ? 결혼 ? 이게 다 무슨 소리래 ? 이것 봐요, 성주씨. 이 정영주의 하늘은 오직 한성주 한 사람 뿐이라는 말, 벌써 잊어버렸지. 하기는 그 자리에서 귀담아 듣지도 안 했을 테니까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겠지만. 성주씨,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밖에 없는 마음 주고 의지하는 사람을 일년 반이나 헤매 돌며 천신만고 끝에 첩첩산중까지 찾아갔는데, 그 사람은 나를 못 본 체 그 자리에 팽개치고 더는 좇아갈 수도 없는 월남으로 도망쳐 버렸는데, 그렇게 버림 받은 여자가 무슨 정신으로 학교를 다니고 결혼을 했을라구…"
"무슨 ? 버림받은 여자라니 ?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때는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 정말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파월을 자원하기 전에 네가 찾아왔더라면 무언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아니, 달라질 것도 없지 뭐, 월남 가는 일이 없었다면 또 이렇게 말했겠지. '난 책임 못질 일은 못해, 내가 널 책임질 능력을 갖출 때까지 기다려 줄래.' 하면서 나를 밀어냈겠지 뭐."
성주는 영주가 제 속을 읽은 듯한 말을 하자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내가 월남 가서 바로 인제의원으로 편지했는데 왜 답장이 없었지 ? 또 귀국해서 제대하고 인제의원을 찾아가서 물어도 삼청동 자애병원 찾아가서 물어도 모두들 네 소식을 모르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 독일에 오는 일 알리지 않았어 ? "
"그럴 일이 있었어. 인제의원에서는 성주씨 월남으로 떠나고 한 달만에 부랴부랴 떠나야 할 일이 있었고, 말없이 집 나온 주제에 자애병원으로 다시 들어갈 염치는 없었구, 춘천 개인병원에 잠시 있다가 독일로 왔는데…, 할 말이 너무 많아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네. 잠깐만, 지금 몇 시지? 나도 그렇지만 내일 아침 병원 근무 들어갈 사람들이 있어서 타고 온 전세버스가 여섯 시에 출발하기로 했거든. 한 시간 남았네, 한 시간 동안 나 성주씨 살고 있는 기숙사 보고 갈래, 여기서 얼마 멀지 않다면서…"
영주가 서두르는 바람에 성주는 늦가을의 저물어 가는 햇빛이 인도 위에 떨어져 나뒹구는 칠엽수 잎사귀 사이에서 부서지는 듯한 스산한 호클라마르크 거리를 나란히 걸어 레크링하우젠 남역 옆에 2차대전의 유령처럼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90번지 기숙사로 갔다.

아직 아무도 피로연에서 돌아오지 않은 듯 기숙사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래서 더욱 유난스럽게 삐걱거리는 나무 층계와 마루 복도를 걸어 3층 12호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영주는 애써 오래 참은 듯 와락 성주의 품에 뛰어 들어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조금은 당황했지만 이역만리 독일 땅에서 나이 어린 처녀가 겪어야 했을 가지가지 고달픔과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피붙이 같은 정을 주었다가 어처구니없이 헤어진 남자에 대한 그리움을 짐작할 수 있었던 성주는 말을 잃고 눈물을 흘리며 영주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오랜 서러움에서 나오는 영주의 흐느낌은 격렬한 입맞춤으로 이어졌다.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영주의 따듯한 혀가 더듬어오자, 품에 안긴 영주의 존재는 간 곳 없고 입 속에서 꿈틀거리는 혀가 영주인 듯 성주는 입 속의 영주가 이끄는 대로 어딘가 알 수 없는 묘한 운명의 섬으로 끌려 갔다.
"이 여자는 전생에 나와 무슨 인연이 있기에 이토록 나를 원하는가 ? 또 우리는 무슨 몹쓸 운명을 타고 태어났기에 서로 아끼고 원하면서도 남들처럼 편안하고 즐겁게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눈물 속에서만 만나야 하는가 ? "
성주는 마음속으로 한탄하면서 문득 어느 서양시인의 시 한 귀절을 떠올렸다.

"알 수 없는 눈물, 눈물이여 !
어느 거룩한 절망의 심연에서 솟아 흘러 넘쳐
가슴을 채우고 눈으로 쏟아짐을
나는 몰라라."

겨우 진정이 된 듯 영주는 양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으며 부끄러운 듯 방그레 웃었다.
" 인제 강변의 첫 번 키스도 , 오늘 두 번 째 키스도, 우리 키스는 왜 늘 맛이 짭짜름할까 ?"
그랬다. 두 사람 다 아프고 시린 가슴을 안고 헤어져야만 했던 이별이 있은 지 열 한 해만에 수륙만리 머나 먼 이국 땅에서 숙명처럼 다시 만나 애절한 반가움에 못 이겨 서로를 끌어안고 나눈 깊숙한 입맞춤은, 두 사람 다 눈물 범벅이어서 인제강 변에서의 첫 입맞춤과 같이 뒷맛이 짭짜름했다.
영주는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한 인제에서 헤어진 이후의 살아 온 얘기를 끝내 뒤로 미루고, 집 전화번호와 근무하는 병원의 전화번호를 주면서 다음 주말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함부르크로 돌아갔다.
같이 온 동료들과 함께 전세버스를 타고 떠나는 영주를 배웅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초저녁 호클라마르크 거리에는 늦가을의 차가운 가랑비가 뿌리고 있었다.
성주는 싸늘한 바람에 날리는 가랑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는지도 모르고 바닥 모를 깊은 상념 속에 잠겨 터벅터벅 걸었다.
" 영주, 너는 나에게 있어 무엇인가 ? 전생에 우리는 어느 세상에서 무엇으로 헤어졌기에 이승에서 이토록 서럽게 태어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야 하는가 ? 정영주 ! 따뜻하고 귀여운 여자. 나는 너를 평생토록 착한 누이로 옆에 두고 싶었는데, 너는 다른 것을 바라는구나. 엇갈려 열 한 해라는 긴 세월이 흘렀어도 너는 여전히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구나."
바람에 흩날리는 빗줄기 가운데 문득 아내 오복의 원망하는 듯한 자태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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