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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시소설 연재 장편소설 <나지라기>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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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포신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댓글 1건 조회 7,141회 작성일 02-10-02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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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 광산지대에서 건살포 노릇을 해 온 백한식이 들은 풍월만 가지고도 사뭇 한심스럽다는 듯 궁상을 떨었지만, 한국 광산지대에서도 악명 높은 금천항에서 그나마 가장 위험하다는 털어먹기 막장 선산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오상석은 여유만만했다.
"무슨 사내 새끼가 귓구멍이 나팔통 같노. 딱 부닥쳐 보도 않고 남의 말만 듣고 걱정이 무슨 걱정이고. 지가 가파르면 얼매나 가파르겠노, 한국에는 아예 곧추 서 있는 탄통도 있는 기라. 뭐시라 ? 싸까쓰 ? 싸까쓰가 무서우면 우째 광부로 왔노 ? 광부는 싸까스가 아니라 막장 동발에 목숨 걸어 놓고 일하는 직업인기라. 그래서 막장 인생이라 안카나. 그라고 느그들, 교육받을 때는 내 보고 꼬부랑 글씨 모른다고 피식 피식 웃었지만 두고 보래이, 서독에서도 땅 속 돈은 꼬부랑 글씨가 벌어 주는 기 아닐끼다. 두고 보래이 내 본때를 보여 줄끼구마…."
오상석은 말씨가 심한 경상도 억양인데다가 서양말에는 영 익숙하지 못한 탓으로 독일어 교육시간 내내 주눅 들었던 일이 나름대로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 있었던 듯 누가 일을 잘 하고 돈을 많이 버는지 두고보자고 거듭 거듭 다짐을 두었다.

광산 아침작업반의 입갱은 6시부터였지만 아직 독일식 아침식사가 싫은 햇내기 광부들은 그 이른 아침에 서투른 솜씨로 밥을 하고 찌개까지 끓여 아침밥 먹고 출근하노라고 새벽 4시에 눈 비비고 하품하면서 부엌으로 들어서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독일광부생활에 익숙해진 선진들은 5시쯤 일어나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 우물우물 씹어 삼키고 나서, 도시락 대신에 간밤에 버터 바르고 두툼한 햄 조각 하나 넣어서 냉장고에 넣어 둔 보리빵 봉지 하나 들고 여유 만만하게 기숙사를 나서지만, 20년 넘게 따끈한 국물에 밥을 먹어온 습관이 단 세 주일만에 고쳐질 수 없었던 5진 동기 대부분은 출근시간에 맞추어 아침밥 해먹는 일이 큰 일과 중의 하나였다.
12호실의 영학과 대성, 그리고 성주는 한 방에 기거하게 된 날부터 한 달 생활비로 각자 백오십 마르크를 내놓기로 하고 살림은 성주가 맡기로 했다. 세 사람 다 한국에 가족들이 있는 기혼자들이어서 생활비를 최소 한도로 줄이고 송금액을 최대한으로 계산한 결정이요 합의였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한국의 가족이 세 식구, 성주와 영학은 아들만 둘이 있었고 대성은 아들과 딸을 두었다. 나이도 동년배인데다가 가정 형편도 비슷해서 셋은 서로가 뜻이 잘 통했고 그만큼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주말이면 성주와 영학이 시장에 가서 배추와 무를 사다가 소금에 절여 김치 담그고, 가장 값이 헐한 돼지발을 사다가 푸욱 고아서 하얀 쌀밥 말아 먹으면 배부르고 속 든든하고 기운이 절로 났다. 그러다가 김치가 시어지면 돼지 삼겹살 2백 그람 사다가 김치찌개라도 하면 세 사람에게는 그게 진수성찬이었다.
한 두 번은 독일 보리 빵 먹는 습관 들여야 한다고 '밀쉬 브로트' 라고 하는 베개 같이 생긴 보리 빵을 사다가 버터 바르고 소금에 절인 돼지 넓적다리 고기 얄팍하게 썰어 놓은 '부어스트(Wurst)'를 속마음으로 "비싸다 되게 비싸다. 이렇게 먹다간 우리 내놓는 돈이 반 달치 생활비 밖에 안되겠다." 하면서도 독일생활 방식에 적용한다는 명분으로 한 사람 몫 두 장씩 여섯 장 사다가 빵 사이에 넣어 커피나 우유를 국 삼아 끼니로 해 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마다 목이 메이고 뭔지 모르게 못 먹을 것을 먹는 듯한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어 당분간은 빵 먹는 습관들이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성주는 아내가 아이들에게 가끔씩 만들어 주던 야채 샐러드를 떠 올려, 삶은 감자와 썰은 사과, 껍질 깐 오렌지, 그리고 오이와 당근 조각을 마요네즈에 버무린 야채 샐러드를 만들어 빵 사이에 넣어 먹는 신종 '샐러드 빵'을 고안했는데 다행히 이것이 셋의 입맛에 맞아 지상교육 세 주일 내내 점심도시락을 대신 했다. 그러나 이 '샐러드 빵'은 수분이 많은 데다가 신선도가 맛을 좌우하는 것이어서 지하작업장에 가지고 들어가게 되면 석탄 먼지와 지열 때문에 맛이 변해 먹기가 어려울 거라는 것이 셋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한형, 월요일부터는 지하교육인데,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지 ?"
영학이 막막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게 오늘 저녁부터라도 다시 독일 보리빵 먹는 연습을 합시다. 옆방 인남이 빵 먹는 거 봤지요?"
" 그 친구 식욕 따라갈 사람 아무도 없을 걸, 베개 만한 빵 반개를 버터만 발라서 한 자리에서 해 치우는 식욕을 누가 따라 가겠어…, 그 보리빵이 그렇게 든든하다는데, 그게 영 넘어가야 말이지, 아참, 한형, 11호실 인남이가 어제 뭘 사다 먹었는지 알아 ?"
영학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얼 사다 먹었는데요?"
"그 친구 엊저녁부터 통조림 개밥을 먹고 있잖아."
"무슨 소리요 도대체 ?"
"인남이 말로는 시장에서 개 그림이 그려져 있는 통조림을 보고 종업원에게 손짓 발짓으로 개고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래. 값도 거저나 다름없이 싸고 해서 열 개나 사왔다는 거야. 한 방에 있는 기선이가 개밥이라고 알려주었는데도 돈 아깝다고 하나 따서 맛을 보더니 먹을 만 하다면서 한 끼니에 한 깡통씩 따서 먹는다는 거야."
"미련스럽기는, 가서 다른 물건으로 바꾸어 오면 되지, 돈 아깝다구 그걸 그냥 먹어? 인남이두 어지간 하군."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인남이는 맛도 좋고 간편해서 계속 끼니로 먹겠다는 거야."
"맙소사."

마침내 지하 채탄작업장으로 처음 들어가는 아침이 밝았다. 광산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흰색 면작업복에 노란 안전모를 쓰고, 안전등 밧테리와 만약의 경우를 위한 일산화탄소 필터 마스크를 양쪽 허리에 차고 발가락 부분에 쇠가 들어 있어서 묵직한 안전구두를 신은 데다가 물통과 빵 봉지를 상의 양쪽 주머니에 불룩하게 챙겨 넣고 나선 모습들은 흡사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옴직한 외계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일주일 후에는 파독간호사와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광산근무를 끝내고 신부의 직장이 있는 함부르크로 떠난다는 엄화섭 통역이 광산 안전과장과 함께 교육실로 들어와 일산화탄소 필터마스크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아차 하는 순간에 개죽음을 하지 않기 위해 무겁더라도 절대 필터마스크통을 허리에서 떼어놓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성주는 한국 광산에서 갱내 폭발이 있거나 불이 났을 경우 발생하는 일산화탄소 가스로 인해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어도, 개인 휴대용 일산화탄소가스 필터마스크가 있다는 것은 독일에 와서 광산 장비를 지급 받으면서 처음으로 알고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만 있었어도 수많은 사람이 억울한 개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하는 안타까움과 땡초스님 염불하듯 입만 열면 '광산 보안'과 '안전 작업'을 뇌까리는 상공부 광산보안 감독관들과 광산경영주들에 대한 미움이 새삼스럽게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다. 필터 마스크는커녕 제대로 된 안전구두 하나 없이 고무 장화 신고 군복 검정 물들인 작업복을 땀과 석탄먼지로 찌들어 송장 썩은 냄새가 나도록 입으며 지치도록 일했던 검정돼지 시절과 장비를 지급 받으면서 짐작할 수 있는 독일 광산의 노동환경을 비교하면서 성주는 독일의 노동자들이 비교적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광산에서 '탄복(炭服)'이라고 하는 광산작업복만 해도 그렇다. 광산마크가 붙어있는 잿빛 작업복은 행사용이거나 가뭄에 콩 나듯 광산을 둘러보는 높고 귀하신 어른들을 위한 의전용일 뿐 실제 일하는 광부들에게 지급되는 일은 없다.
광부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군복을 물들인 검정 작업복을 두 벌 사서 일주일에 한번씩 갈아 입는 데, 물론 빨래는 안사람의 몫이고 총각과 독신자들은 스스로 빨아 입거나 삯을 받는 빨래 아줌마에게 맡기기도 했다.
국영광산이고 개인광산이고 간에 광부를 위한 개인장비 지급이란 아무 것도 없이 탄복·장화·장갑은 시장에서 개인이 사야 했고, 삽·곡괭이·톱·천공장대(발파공을 뚫을 때 쓰는 2미터 길이의 철창·흔히 '혼노미'라는 일본말로 불리운다) 등 작업도구는 우선 지급하고 개인 봉급에서 공제했다.
그런데 독일광산에서는 작업복에서부터 작업화·방진 마스크·방진 안경·까스 필터·장갑, 심지어 팬티·런닝샤쓰·양말·수건에다가 비누까지 철마다 무상으로 지급하니 비교를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성격이 깔끔한 영학이 목욕비누를 3개월에 10장씩 주면 부족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엄 통역은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 한국광부들은 지급 받은 비누가 남아돈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한 해 쯤 지난 뒤에야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는데, 체질이 약한 한국광부들은 병가(病暇)를 받는 횟수가 잦아서 비누가 남아돌았던 것이었다.
가스 필터 교육이 끝나고 5진 동료들은 배정 받은 갱도별로 헤어지고, 거기서 또 다시 2명씩 짝을 지어 빨간 안전모를 쓴 교육 조교(Ausbilder)가 한 명씩 따라 붙었다. 성주는 영학과 한 조가 되어 서른 살 중반쯤 돼 보이는 에리크라는 이름의 조교의 인솔하에 마치 한국의 닭장수들이 자전거 짐칸에 층층이 닭을 싣고 팔러 다니는 닭장처럼 생긴 수직갱도 곤도라를 타고 수직 630미터의 5편 갱도로 들어갔다. 편반갱도는 비교적 넓고 높다는 한국 광산의 운반갱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고 높고 견고했다.
한국의 광산은 복선 운반 갱도일지라도 여섯 자 동발에 아홉 자 갱목을 얹는 것이 고작이지만 에발트 광산의 5편 운반갱도는 반지름 2미터의 원형 철근 콩크리트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지진이 일어나도 무너질 염려가 없을 듯 싶었다.
" 한 ! 여기가 너희들이 일할 23갱 입구다. 23갱은 여기 5편 갱도에서 840미터의 6편 갱도까지 30도 경사로 뻗어 있는 높이 1미터 80, 길이 약 260미터의 탄층에서 탄벽을 허물어 아래로 내려보내고 탄을 캐낸 자리에 동발을 세우는 채탄갱도로서 최근 새로 열었다. 너희 동료들이 간 안나갱도나 구스타프갱도에 비해서 탄질이 좀 단단해 채탄에 애를 먹겠지만 그 대신 무너지는 일은 없어 낙반사고는 좀처럼 없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점은 너희들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5편 갱도에서 6편 갱도로 내려가며 막장 구경만 하고, 내일부터는 6편 갱도로 들어가 배정된 막장으로 올라가 작업 요령을 익힌다. 교육기간동안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지만 교육이 끝나면 한 막장에 하나 씩 붙어 도급작업을 하게 된다."
에릭크는 갱도를 걸어가며 다정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작업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성주와 영학의 뒤에는 이기선과 이명수 조가 또 한 명의 조교를 따라 불안한 표정으로 설명을 들으며 걷고 있었고, 그 뒤에 정인남과 이건우가 역시 불안한 모습으로 사방을 기웃거리며 따라 오고 있었다.
이윽고 5편 갱도에 빠끔하게 열려 있는 막장 입구로 들어선 30도 경사의 막장에서 기숙사에 보던 3진과 4진의 선진 동료들이 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압바우 함머라고 하는 압축공기를 이용한 채탄기 소리가 요란한 데다가, 떨어져 나온 석탄덩어리가 30도 경사의 암반 위로 굴러 내려가는 소리와 석탄 먼지에 겁을 먹은 이기선은 첫 막장에서 동발을 부여 안고 발을 떼지를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 이형, 왜 그래? 좀 소란스러워서 그렇지 하나도 위험하지 않으니까 겁먹지 말고 내려와"
재촉하는 소리에 이기선은 간신히 발을 떼어 밑에 서 있는 동발을 와락 끌어안으며 울먹이는 소리를 내뱉었다.
"이런데서 이렇게 일해야 된단 말이지, 난 못해 죽어도 난 못해. 한형 ! 광부가 이런 건지 난 정말 몰랐어. 이런 줄 알았으면 나 독일에 안 왔어 정말…"
"태권도 사범의 담력은 다 어디다 팔아 먹었나, 겁내기는, 이 정도면 한국 광산에 비하면 신선노름이야. 지레 겁먹지 말구 차근차근 눈 여겨 보라구, 별 거 아닐 테니까."
이기선은 성주의 말에 조금은 안도가 되는지 조심조심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생 하십니다."
"고생은 뭘, 앞으로 같이 고생할텐데"
첫 번째 채탄막장에서 석탄을 캐어낸 공간에 동발 틀을 짜 맞추느라 분주하게 일하다가 일일 견학생 들을 위해 잠시 일손을 멈춘 3진의 유대영은 방진마스크와 방진안경을 벗고 이마와 목덜미의 땀을 닦으며 성주가 내민 손을 반갑게 잡았다.
"할만 합니까 ?"
"누가 등 떠밀어서 온 거 아니구, 어차피 돈 벌어 보자구 왔는데, 할만 하구 안 하구가 어디 있나. 다 팔자려니 여기고 하루 하루 넘기는 거지"
성주는 유대영이 일하다 멈춘 막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유대영은 지금 다섯 치 굵기, 길이 일곱 자 반 들보의 머리를 먼저 완성해 놓은 윗툴의 들보 끝에 꺽쇠를 박아 고정시키고 들보 끝 부분은 뒷틀의 들보에 지른 살장으로 받쳐 천반에 고정시켜 놓고 가운데에 다섯 치 굵기 여섯 자 높이의 동발을 세워 놓고 있었다. 들보와 천반 사이에는 큰 목침을 들보 하나에 적당한 간격으로 세 개 씩 받쳐 넣어 천반의 하중을 들보가 직접 받지 않고 밑에 세운 세 개의 동발이 나누어 받도록 했다. 이제 들보의 양쪽 끝에 두 개의 동발을 10파운드 함머로 때려 박아 넣으면 한 틀 작업이 끝나는 것이다.
23갱은 새로 연 채탄갱이어서 아직 도급작업 기준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대충 두 틀 반이 될 것이라고 오랜 경험이 있는 에릭크가 일러주었다. 지상 교육을 받으면서 확인한 도급작업 임금 기준표에 의하면 채탄갱도 작업부의 임금 등급인 10등급이 86마르크니까, 8시간 동안 폭 2미터 높이 1,8미터 길이 7,5미터(채탄량으로는 27톤)의 탄벽을 허물어 내고, 그 빈 자리에 세 틀의 지주(持柱)를 세우면 도급 기준량을 20%정도 상회하게 되니까 하루 노임이 1백마르크가 조금 넘는 셈이었다.
그러나 독일광부나 터키·모로코 광부들에 비해 체격이 매우 작은 한국광부들이 이 도급량을 채울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때요 유형, 도급량 해내기는 ?"
"여긴 아직 도급량이 측정되지 않아서 지금 모두들 두 틀씩만 하고 있지. 독일애들도 마찬가지야, 도급량 줄이기 위해서 모두 입을 맞추고 두 틀에서 두 틀 반으로 작업을 마치고 있는데, 죽어라 하고 매달리면 세 틀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애"
체격이 다부지고 성주의 한 배 반은 될 정도로 우람한 손을 가진 유대영은 자신만만하고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두 번째 채탄막장에서는 4진의 김창태가 단단한 탄벽을 압바우함머로 까부수어 내느라고 무아지경에 빠져 있어서 등뒤에 사람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살펴보니 아직 한 틀 자리도 까내지 못한 채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에릭크가 답답하다는 듯 '내가 시범을 보여 줄 터이니 너희들끼리 얘기하면서 봐라' 하고 압바우함머를 넘겨받아 탄벽에 달라붙었다. 에릭크는 간간히 요령을 일러주면서 능숙하게 단 20분만에 한 틀을 세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다음 다시 한번 압바우함머를 탄벽에 꽂는 시범을 보이면서 요령을 설명했다.
" 압바우함머는 공간이 생긴 탄층의 이동 하중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채탄기구다. 다시 말해서 채탄갱도가 열리고 공간이 생기면 탄층의 상하좌우에는 지층의 압력과 암반의 무게 때문에 공동(空洞)이 생긴 쪽으로 이동하려는 힘이 생긴다. 이 힘을 지압(地壓)과 반압(盤壓)이라고 하는 데, 이 지압과 반압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부분의 탄벽을 찔러주면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탄벽이 무너진다."
김창태가 찌를 때는 압바우함머가 아무리 오래 굉음을 내도 부스러기만 떨어지던 탄벽이 에릭크의 솜씨 앞에서는 덩어리 덩어리로 떨어져 내리는 광경에 5진 실습생들은 물론 김창태까지도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령도 요령이지만 힘이 좋은 것 같아. 왜 있잖아, 팔뚝심, 팔뚝심이 쎄니까 압바우함머를 자유자재로 휘두르잖아, 한형이나 나나 저걸 저렇게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어 ? 어림없는 일이지."
영학이 옆에서 보다가 풀 죽고 기죽은 소리를 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요령도 생기게 마련이니 너무 미리부터 걱정하지 맙시다."
여덟 개의 채탄막장을 둘러보고 6편 갱도로 내려온 5진 실습생들은 지하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성주와 영학은 직접 만든 과일 사라트를 넣은 빵과 레몬차를 가지고 들어 왔는데, 이명수는 김밥을 길게 말아 갖고 왔고, 인남은 베개 반 크기의 '캐쓸러'라는 이름의 보리빵을 통 채로 가지고 들어왔다. 인남은 그 빵을 손으로 큼직큼직하게 뜯어내 역시 통 채로 가지고 들어온 버터를 두껍게 발라 먹음직스럽게 먹었다. 백한식은 기숙사에 가서 한꺼번에 몰아 먹는다고 빈손으로 들어 왔고, 이건우와 이기선은 카스테라 빵을 들고 들어와 먹었는데, 이를 본 에릭크는 혀를 차면서 카스테라 먹고는 금방 꺼져서 일 못하니 빵가게 가서 '밀쉬브로트'나 '오버랜더' 사다가 놓고 갖고 다니면서 먹으라고 알려 주었다.
"한 ! 넌 한국광산 경력도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 둘러본 소감이 어떠냐 ? "
꼭 한국의 도시락 같이 생긴 철통에 꼼꼼한 솜씨로 야채와 고기조각을 넣은 조각 빵을 하나씩 꺼내어 먹으며 에릭크가 성주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한국광산하고는 채탄의 개념이 다르다. 내가 한국에서 배우기로는 서독은 장벽식 채탄법을 쓰고 있는 호벨막장이 있다던 데, 오늘 본 막장은 역시 경사 때문에 호벨 설치가 안 되는 모양이지 ?"
"오, 한 ! 너희 나라에서 그걸 배웠다구, 맞다. 여긴 경사 때문에 호벨을 놓을 수가 없으니까 사람이 직접 압바우함머로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그러나 여기 6편갱도에서 새 구스타프 갱도 쪽으로 나 있는 운반갱도를 따라 14킬로미터를 가면 호르텐 수직갱도에서 들어오는 6편 갱도와 만나는데 거기 9번 갱이 호벨막장이다. 너희 나라 광산에서는 어떻게 채탄을 하는데…?"
"아까 내가 개념이 다르다고 했지 ? 그건 독일과 한국의 탄층 모양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야. 여기 23갱은 경사 탄층인데도 불구하고 탄층은 떡시루 비스듬이 세워 놓은 것 모양으로 마치 규격을 지키는 것처럼 일정한데, 한국은 이게 모두 제멋대루야, 내 판단으로는 한국과 독일의 지층 형성 과정이 달라서 그럴꺼야. 독일은 석탄층 형성기 직후 빙하기에 들어가 오랜 세월 지층의 변동이 없어서 석탄층이 꼭 시루떡층처럼 보전되었고, 한국은 석탄층 형성 이후 지진과 화산활동으로 지각 변동이 심해서 독일처럼 규칙적으로 연결된 탄층은 없고 모두 석탄창고처럼 뭉쳐 있거나 불규칙한 모습으로 곡선을 그리며 달리고 있다. 그래서 채탄방법도 너희들하고는 다르다. 내가 보니 너희들은 경사 탄층이나 수평 탄층이나 모두 장벽식 채탄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방법은 불규칙한 한국의 광상(鑛床)에는 응용할 도리가 없다. 한국광산에서는 '위경사 붕낙채탄법'이라는 방식으로 채탄을 하는데, 눈앞의 생산 경비가 적게 드는 대신에 석탄 매장량의 60% 정도 밖에 캐내지 못하고 안전사고율이 높은 비경제적인 방법이다. 한국의 탄광업자들은 대부분 영세업자들이어서 석탄산업에 대한 장기 투자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매장된 석탄의 90% 이상을 캐어내면서도 높은 안전율을 자랑하는 독일식 구획 채탄법을 쓰지 못하고 있다. 첫째가 돈이다. 한국 탄광업자들은 안전하고 경제성 있는 채탄을 위해 너희들처럼 구획 정리를 위한 사전 작업에 투입할 자금의 여유가 없다. 우선 당장 석탄이 상품화되어야 노임도 주고 자재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채탄갱도를 열면 가장 빠른 시일 안으로 채탄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다보니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는 가장 비경제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는 셈이지…."
"그런데 한, 도대체 그 채탄법은 어떤 건데, 있는 석탄의 60% 밖에 캐어내지 못하지 ?"
에릭크는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따라 성주에게 건네주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리 잘 설명해도 여기 하고는 상황이 전혀 다르니까 이해하기 힘들 꺼야. 너희 독일광산은 탄층 위 아래로 우선 상반갱도(독일어: Kopfstrecke)와 하반갱도(독일어 :Bandstrecke)를 열고 구획을 정리해서 상반갱도에서 하반갱도까지 뻗은 평균 길이 2백50미터의 긴 탄벽을 호벨로 깎아 내면서 전진하거나, 여기 23갱처럼 급경사 탄벽일 경우에는 장벽식 계단막장(독일어 Knapp)을 만들어 밀고 나가는 방식을 쓰고 있다. 그러니 묻혀 있는 석탄 거의 모두를 캐낼 수 있지. 또 전진하면서 뒤에 생기는 채탄을 하고 난 후의 공간을 폐석과 모래로 채우는 것도 한국광산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경비가 많이 드는 안전조치다. 한국에서 책을 통해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채탄 공간 충진의 현장을 오늘 처음 보았다.
한국광산의 위경사붕낙채탄법이란, 독일과 같이 상반갱도와 하반갱도를 열고 탄층 구획을 정리하고 나서 채탄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편반갱도(독일어로는 Sohlenstrecke)를 열고 탄층이 있는 지역에 이르면 탄층 하부에 좌우로 갱도를 여는 데 이를 좌연층갱도 우연층갱도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좌 우 두 개의 연층갱도가 편반갱도 바닥의 암반 위가 아니라 탄층 위에 열린 갱도라는 점이다. 당연히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극히 위험한 갱도일 수밖에…, 이 좌 우 연층갱도에서 탄층을 향해 경사막장을 만든다. 실제로 여기 23갱처럼 바닥이 경사진 암반이기 때문에 경사막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철판을 깔아 석탄이 저절로 막장 밖 광차까지 미끌어져 나오도록 일부러 경사를 만들면서 막장 전진작업을 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위경사(僞傾斜)'라 하는 것이고, 이 좌우의 경사막장이 탄층의 끝 부분에 이르면 거기서 부터는 다이나마이트 발파를 해서 탄층을 털어내면서 후퇴를 한다. 그래서 '붕낙채탄법'이라고 하는데 한국 광부들은 털어먹기 후퇴가 시작되는 막장을 보통 '케빙 막장'이라고 부른다. 아마 19세기 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근대식 금광을 개설했던 미국인들이 그런 작업을 하는 막장을 가리켜 '케빙 Cabin(오두막)'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 같다. 하여튼 이 캐빙막장은 언제 어떻게 무너져 내릴 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련한 경험자들이 순전히 육감으로 일을 한다. 여기는 광산보안감독청이 지정한 광산보안규정이나 안전수칙이 통하지 않는 최악의 작업장이어서 광상학(鑛床學)이니 채탄기법이니 하는 이론의 말발이 서지 않는 막장 중의 막장이다."
성주는 설명을 하다가 한국 광산의 '막장'을 독일어로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굴진 막장'은 독일어로 'Vor Ort'로 번역이 되지만 한국광산의 막장을 독일식 최전방 채탄작업장인 'Knapp'이라고 직역하기에는 독일의 Knapp과 한국의 막장 상황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성주는 '막장'을 발음 그대로 'Makjang'이라고 말하고 나서 한국과 독일의 채탄방식과 작업개념이 너무나 달라서 정확하게 번역할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막장'에 대해 설명하자 에릭크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세 해 동안 자신들이 일할 일터를 둘러보고 나서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6편 갱도 수갱탑 앞에 모인 5진 햇내기 광부들은 그냥 둘러보기만 했는데도 땀과 탄진으로 범벅이 된 시커먼 얼굴들을 서로 손가락질해 가며 한심스러워 했다. 그 중에서도 23갱의 이기선과 구스타프갱의 고성렬은 아예 풀이 죽어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궂은 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귀공자 타입의 이 두 사람은 난생 처음 지하 채탄막장을 구경만 하고도 질려 버린 것이다.
수갱탑 닭장을 타고 수직으로 840미터를 올라와 지상으로 나온 햇내기 광부들은 햇빛이 그렇게 눈부시다는 사실을 처음 체험으로 실감한다고 저마다 한 마디씩 지껄였다. 성주를 비롯해 민준기,진흥섭,김영봉,박선태,홍성표,백한식 등 광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빙긋이 웃으며 눈부신 햇살을 새삼스러워 하는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5진 햇내기 광부들이 동기라고는 하지만 서른 여덟 명 모두가 한 자리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발가벗고 서서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로 목욕을 하기는 처음이어서 그런지 서로 옆 사람 남성의 심벌을 유심히 보면서 장난기들이 발동했다. 짖궂은 이건우가 목욕을 하다 말고 옷장에 가서 나무막대자를 갖고 와서 누구 물건이 가장 큰지 서열을 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리 저리 피하는 동기들을 짖궂게 좇아 다니면서 길이를 측정해 즉석에서 서열을 발표했다.
발기하지 않은 보통상태에서 측정한 수치임을 강조하면서 이건우는 김춘성이 22센티로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정인남, 이준상이라고 걸걸하게 웃으며 공표를 했다. 그날부터 김춘성, 정인남, 이준상은 이름 앞에 성(姓) 대신 순위가 붙어서 '일(一)춘성, 이(二)윤남, 삼(三)준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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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신의오후님의 댓글

목신의오후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좀 다른 소리지만, 한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교포문학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패거리식인 한국문학계의 고질병이 하루속히 치유되길
바래봅니다.)
'나지라기'를 읽으니, 전혜린이 말한 '뮌헨의 잿빛 하늘'처럼.. 우울해지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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