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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김재승칼럼 어머님 죄송합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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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독50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3,609회 작성일 13-06-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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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온 난 우선 고모님 댁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고모님은 시골에서 중매결혼 후 결혼 초에 가평에서 살다가 고모부 출근하고 혼자 있는 사이 물난리를 만나 갑자기 불어나는 물살을 피해 헤엄쳐 나오다 시피 해서 목숨은 구했으나  살림살이는 다 떠내려 보내고 달랑 입고 있던 옷 한 벌 건지고 맨몸이 되었다. 후에 고모부께서 서울에 회사를 옮겨 처음에는 도저히 집이라곤 할 수 없는 방 한 칸 자리 루핑으로 진집에 세 들어 살면서 형제가 많은 고모부 덕분에 시골에서 올라온 시동생들 까지 한방에서 생활을 했다 한다. 허지만 신혼 초에 시동생들과 같은 방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였을 것이다. 도저히 같은 방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부엌으로 나와 혼자 쭈그리고 잠을 자다가 연탄중독으로 생명까지 잃을 번한 경험이 있는 가난한 고모님 이였다. 착실하게 생활한 덕분에 그래도 그때는 방 두간 집에 세 들어 사는데 방 한 칸을 고모 내외분, 다른 방에는 고모부 동생과 내가 한방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회사 보일러 관리자로 근무를 하시면 받아온 월급으로 4식구를 먹여 살리는 고모부다. 가평에서 겪은 물난리 충격에 생리가 중단되어 임신을 못한 관계로 두 부부와 시동생이 한집에 살다가 나까지 4식구가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제대할 때 받은 퇴직금은 아버지께 전부다 바치고 서울로 올라 왔으니 수입이 없는 내가 우선 빌붙는 방법뿐이 없다. 하루 이틀 눈칫밥 먹는 기분이다. 물론 고모부나 고모가 그렇게 생각하고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자격지심이다. 빨리 무슨 방법을 찾아야 될 텐데, 왜 제대를 했느냐는 원망들은 하지 않게 해야 될 텐데, 하는 생각뿐이다. 수입이 없으니 어깨에 힘은 없어지고 맥 빠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빈둥대다가 우선 고모부께서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할 일이 없어지자 가정집에 보일러를 시설해주는 청부업을 조그마하게 시작했는데 공사를 맡으면 공사장에 가서 그 일을 도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일도 떳떳한 생업인데 그땐 왜 그리도 창피하였던지, 일을 하면서 주인집에서 세참이 나와 다들 앉아 라면 등을 맛있게 먹을 때 난 한쪽으로 피해서 다른 인부들이 세참을 먹고 난 다음에야 돌아오곤 했었다. 몇 개월을 보내고 누구 소개로 “보건신보사” 라는 주간신문사에 기자로도 생활해 보았다. 허지만 말이 기자지 월급은 한 푼도 없이 광고나 얻어오면 몇 푼 얻어 쓰고 주로 하는 일은 무허가 의료업체를 찾아다니면 등쳐먹는 생활이다. 무자격자가 치아를 해주는 집이나 무허가 침구사, 무허가로 접골을 해주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취재 나왔다고 협박을 하면서 몇 푼 얻어 살아가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방에서 살고 있는 고모부 동생은 군대를 가지 않고 방위근무를 하는데 근무지가 서교동 파출소 이었다. 하루는 근무를 다녀오더니 자기 잘 아는 학생이 길에서 여자 친구와 키스를 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경범죄로 잡혀왔었단다, 경범죄는 가족한테 알리고 몇 천원 벌금을 물리는데, 학생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부모님들이 알면 실망을 안겨드린다고 부모들에게 알리지 않은 조건으로 몇 만원을 주고 나왔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때 장발, 길에 담배꽁초 버리는 일, 고성방가, 무상방뇨 모두 경법 죄에 해당되어 발각되면 4-5천원 벌금을 물곤 했던 때였다. 그 학생은 학비에 쓸려고 알바를 해서 모아둔 돈을 고스란히 바친 것이다. 그 학생이 불쌍하다면 어떻게 방법이 없냐는 것이다. 이튿날 파출소로 전화를 걸었다. 그 경찰을 바꾸어 보건신보사 기자라고 하니 벌써 목소리가 떨렸다. 내일 파출소 앞 다방에서 만나잔다. 다음날 다방에 나가 그 경찰을 만나자. 내가 이야기도 꺼내기 전에 “죄송합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저도 가족이 있어서 만일 경찰을 그만 두면 먹고 살길이 없습니다. 그 학생돈은 벌써 만나서 되돌려 주었으며 어제는 내가 정신없는 짓을 했습니다. 정말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하면서 나에게 봉투를 하나 내민다. 사실 그 학생 알바 한 돈을 다시 받아 주었으니 내가 하고자 한일은 다 한 셈이다. 허지만 내가 이런 짓을 하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그 경찰이 내 신분증이라도 자세하게 보고 시비를 걸었더라면 나도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허지만 자기의 잘못이 있었으니 무조건 잘못만 빌었던 것이다. 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되었다고 하면서 없는 일로 하자며 다방을 나오면서 얼마나 마음이 불안했던지.
이 짓도 할 짓이 못돼. 몇 개월을 견디다가 마지막 여행이나 한번 하고 그만두자 싶어서 돈 한 푼 없이 여행을 출발했다. 다른 동료와 2주 동안 국내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공차타고 다니면서 등친 돈 가지고 호텔비와 식사비 감당하고 2주 만에 돌아온 것이다. 사표를 내고 아는 분의 권유로 서울신문사 영등포구 지국을 맡아서 운영해 보았지만 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생활과 꼭 브로커들이 하는 짓을 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이것도 아니다 싶었다. 물론 마음도 불안했다. 이런 생활을 하다가 언젠가는 내 자신이 범법자로 구속당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도 빨리 그만두자 싶었다. 이번에는 연필장사를 시작해 보았다. 누구의 제안으로 그 사람과 같이 연필심만 사다가 신문지를 연필 길이로 잘라서 풀을 발라서 둥그렇게 만 다음,  파라핀에 삶아내고 도색을 하면 연필 같은 모양이 되고 칼로도 잘 깎인다. 지금 기억으로는 한 다스에 5원을 받고 도매를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도 길지 못했다. 73년도인가 났던 석유파동 때문에 파라핀 값이 뛰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연필은 팔리지 않지, 자본은 딸리지, 고척동 오막살이 창고하나 빌려 연필을 만들다 저녁에는 방도 없이 공장에서 그냥 잠을 잤다. 겨울이 아니었으니 조금 추운거야 이부자리 덮으면 된다지만 모기떼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 새까맣게 달라붙은 모기떼와 싸울 때는 군대생활 하면서 모기기압 받던 생각이 났다. 허지만 그때는 잠깐이지만 지금은 저녁 내내 그리고 여름 내내 싸워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전염병 걸리지 않고 이렇게 생존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공장을 면목동 판자촌으로 옮겨 견디려 했지만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문을 닫았다.  무엇을 할까? 마침 그때 우리 주위 고향사람들이 독일 광부로 파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다. 우리 집안에서도 시골 우체국에서 근무를 했던 막내 작은아버지께서도 누구의 소개로 독일 광부로 간단다. 광부로 일해 본적이 없고 노동을 해본 분도 아니지만, 갈수만 있다면 월급이 한국보다 10배가 많은 독일로 가서 3년만 잘 모으면 한국에 돌아와 살아갈 기반을 닦을 수 있단다. 고향 선배들이 매일 종로에서 조그만 식품점 가게를 하는 사람 집에 모여 독일 갈 연구들만 하고 있다. 동교동에 있는 회외개발공사에서 모집을 하는데 신문광고만 났다하면 가야될 사람들의  몇 배가 되는 사람들이 지원을 한다니 여기서도 배경이 필요한 모양이다. 개발공사에 아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찾아다닌다고 난리다. 종로에서 조금마한 상점을 하는 김xx라고 하는 사람이 회외개발공사에 아는 사람이 있다하여 그리로 매일 출근들은 하는 것이다. 어떻게 되었든 작은아버지와 마을선배 몇 분이 독일로 출발했다. 나도 한번 가볼까? 아버지께 여쭈어 보니 싫지 않으신 모양이시다. 한참 파독되는 시절인 만큼 모집이 자주 있었다. 신문에 다음 모집광고가 나자마자 지원서를 제출하고 나도 종로 그 집을 찾아갔다. 독일에 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다. 24살의 건강한 청년이었으니 신체에는 문제가 없지 않는가?  아는 사람 만나면 술값이나 하라고 조금 돈을 손에 쥐어주고 개발공사에서 실시하는 신체검사를 마치고 힘자랑하는 시험도 통과했다. 역기를 팔 구부리지 않고 들어올리기, 60kg 모래가마니 바닥에서 들어 올려 어깨에 메기, 모든 테스트를 마치고 합격자 발표한날에 가서보니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마지막 남은 문제는 X-Ray사진과 신체검사내용을 독일로 보내 비자를 받는 문제다. 몸무게가 되지 않아서 계란 1관(3.75kg)을 먹고 7층 신체검사장 까지 올라가면서 몇 번 쉬면서 올라갔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몸무게가 모자라  납덩어리를 팬티 안에 메 달고 몸무게를 달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독일을 갈려고 별의별짓을 다한 사람들에 대한 결과가 궁금했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 알아볼 길이 없었다. 몇 주 후에 삼청동에서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란다. 삼청동에 운동장에 모여 반을 나누기 위해서 간단한 영어시험을 보았다. 영어점수에 따라 A. B. C반으로 나눈다. 나는 A반, 독일어 강사인 독일을 다녀온 문 선생님은 항상 하얀 양복만 입고 다니는 멋쟁이 선생님이었다. 군대를 연상케 하는 피교육자와 교관사이 같았다. 회외개발공사 직원들도 완전 훈련병 취급하듯이 하면서 반말 하는 것은 물론이고 “너희들 찍히면 독일에 못가“ 직접적인 표현은 안하지만 우리를 그런 분위기로 만들었다.”아니꼬운 것 참고 빨리 독일로만 가자. 다 지나간 일이 아닌가? 독일어 교육을 받던 중에도  비자가 빨리 나온 사람들은 교육을 그만 두고 독일로 출발한단다. 교육을 마쳤지만 웬일인지 나한테는 출국 연락이 없다.  출국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시간은 정말 지루한 시간이었다. 남들에게 변명하기도 지겹다. 나하고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비자를 받고 다 출발했는데 왜 나한테만은 연락이 오지 않을까? 74년 4월쯤이다. 출국하기 전 소양교육을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이제는 가나보다 생각하고 개발공사로 갔더니 나한테 출국 연락을 했는데 내가 나타나지 않아서 아직 출국을 하지 못했다는 거다. 아니 연락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여? 하여간 소양교육을 마치고 며칠에 출발이니 하루전날 개발공사로 모이란다. 출국할 때 참고할 사항과 또 취업 비라는 명목으로  출국 시 개발공사에 내는 소개비 같은 돈을 내기 위해서다.  며칠 전 부모님들도 서울로 오셨다. 외아들이 독일로 간다니 보약이라 생각하셨던지 시골에 돼지 잡은 사람한테  특별주문해서  돼지발 4개를 가지고 오셨다. 허지만 따뜻한 날씨에 시골에서 며칠 묶이다가 가져온 돼지발은 벌써 냄새가 날 정도로 상해 있었다. 못 먹을까봐  서운해 하시는 부모님들 때문에 억지로 발목도 다 먹어 치웠다. 출국 전날 취업 비를 준비해서 개발공사로 갔다. 한사람씩 이름을 호명하며 취업 비를 받고 내일 몇 시까지 김포공항으로 나오란다. 여권과 항공 표는 공항에서 나눠준단다. 한데 무슨 날 벼락, 내 이름을 호명하더니 이번에 같이 출국이 안 되고 다음 출국이란다. 난, 원래 이번 출국을 위해서 차출된 사람이 아니고 지난번을 위해서 차출된 사람이라 이번에는 이 사람들 위주로 인원을 맞추어 보내고 나는 다음 출국 때 인원을 맞추어 본단다. 억장이 무너졌다. 다른 사람은 다 가는데 왜 나만 낙오가 된단 말인가? 어떻게 식구들에게 변명을 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힘 약한 내가 무슨 소릴 할 수 있는 짓이 없다. 집엘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개발공사를 나와 독일에서 X-Ray 판독 결과 부적격자로 비자가 취소된 다른 두 사람과 같이 앞 술집으로 갔다. 자기들은 독일에 못가면 자살할 수밖에 없다며 울먹인다. 내 코도 석자지만 그 사람들은 나보다 더 처참하게 보인다. 나야 다음 출국 시 같이 보낸다고 했으니 희망이라도 있지만 이 사람들은 완전히 출국불가 라는 판명이 난 사람들이 아닌가? 몇 개월 파독 준비하느라 허송세월 보낸 것도 보낸 것이지만 8-90만 원 정도 난 비용을 어떻게 갚은 길이 없다는 거다.”돈도 많이 들었구나! 생각하며 내지 않은  8천원 취업비가 나한테는 있으니 그 돈으로 술을 몇 잔 마실 수 있었다. 기혼자들인데 가정을 다시 일으킬 자신이 없다며 자살하겠다는 사람들 달래며 마신 술이 거나하게 취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고모님 댁으로 가니 가족들은 뭔가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불안한 기색을 띠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내일 출국한다는 녀석이 술에 취에 들어봤으니 식구들은 눈치가 없겠는가. 아무소리 못하고 방으로 가서 누워 버렸다. 이튿날 부모님들은 시골로 내려 가셨다. 이웃이나 식구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못하는 눈치,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연락을 무료하게 기다리는 방법뿐이 없다. 우선 고모집도 미안하고 해서 큰 고모님과 나의 바로 밑에 여동생과 나 셋이서 방을 한 칸 얻어 이사를 했다.  원래 여동생은 서울로 올라와 다른 친구들과 같이 한방에서 살고 있었으며 큰 고모님은 시골에서 혼자 사시다가 혹시 서울에 일거리가 없을까 싶어서 올라오신 분이다. 좁은 방에서 셋이 지낸다는 게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편한 것 같았다. 나에게 해당되는 방값은 우선 여동생이 부담을 하고…….
그해 10월에 독일로 출국하기 전까지 6개월이라는 세월은 참 지겨운 시간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독일에 간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무엇을 다시 시작할 수도 없어 그냥 식구들 눈치만 보면서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이었다. 동생과 고모님한테 신세만 지는 것 같은 미안함에 이 시간에서 빨리 벗어나고 푼 생각뿐이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받기? 귀찮아서 피해 다니며 허송세월을  6개월이나 보내고 나서야 독일로 출국할 수가 있었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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