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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이정의칼럼 검정밥(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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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독50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2,412회 작성일 13-05-22 10:57

본문

해골(骸骨)
고추친구가 미국으로 간다고 연락이 왔다. 미국 의사시험에 합격해서 부인과 함께 미국에 이민 간다고 했다. 나는 친구가 미국으로 가는 것이 반가웠다. 한국보다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편지를 손에 쥔 나는 또 다시 고향 하늘 아래에서 지난날의 사진첩을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어린 시절, 젊은 시절.  그와 주고받던 이야기와 함께 지나갔던 사연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친구가 결혼할 때 나더러 중고품이라도 좋으니 오메가 시계를 하나 사서 보내라고 했다. 시계를 사 보내려고 시계방에 가니 싼 것이라도 다섯 달 임금에 해당했다.
 
그래도 사서 보내려고 노무관에게 물었더니 한국에 보내면 세금을 적어도 구입가격 정도로 내어야 하기 때문에 보내지 말고 귀국할 때 지참하고 들어가라고 했다. 친구에게 이 사연을 말하고 섭섭하게 생각 말라고 했다.
 
그에게 보내지 못한 시계가 오늘도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리는 것 같았다. 그가 비록 광부로 팔려왔던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사로서 그것도 혼자 가지 않고 마누라와 함께 미국에 가지만, 정다운 고향과 친지를 떠나서 물설고 낯선 타향에서 살아가는 것은 같은 신세였다. 나는 그의 앞날이 훤히 트이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그와 지나던 지난날의 회상 속으로 말려들어갔다.
 
대학시절, 해부학을 배울 때에는 누구나 다 사람 뼈를 가지고 싶어 했다. 친구는 나에게 뼈를 구하고 싶다고 도움을 구하듯 몇 번 나에게 말을 건네 왔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뼈를 한 이틀 보관할 수 있는, 사람들의 눈이 뜸한 집과 또 송장의 뼈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을 물색했다.
 
그 이유는 뼈를 파서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뼈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지리 조건과 또 뼈가 완전한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샛구석에 사는 닷찌오가 생각났다. 닷찌오는 일본 이름인데 우리는 그를 항상 이렇게 불렀으며 그의 한국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다. 샛구석이라는 말은 샛바람(동풍)이 불면 바람이 그쪽으로 밀면서 불기 때문에 샛구석이라고 불렀다.
 
여기에 초가집 서너 채가 있었는데 제주도 사람들이 살았다. 닷찌오 아버지도 제주도 사람으로 옛날에 웃서발에 와서 샛구석에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본토인과 다름이 없었다. 닷찌오는 해녀들의 뱃사공 노릇을 했다. 우리는 닷찌오에게 뼈를 구해야 되는데 도와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찾고 있는 중에 네 생각이 나서 찾아왔으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도와주면 술 한턱을 낸다고 했다. 그는 선뜩 동의했다.
 
그의 의견은 장승개 몰매장지는 바닷가를 따라서 오고간다고 하더라도 마을을 지나야 하니까 좋지 못하다고 하며 뼈를 공동묘지에서 구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공동묘지는 샛구석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면 마을을 지나지 않고도 곧장 갈 수 있고 또 산길을 따라서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면 바로 샛구석으로 들어오니까 아무도 볼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묘지를 선택하고 어느 날 공동묘지로 올라갔다.
 
옛날에는 총각 처녀가 죽거나 임자 없는 사람이 죽으면 봉분을 만들지 않고 공동묘지 변두리 혹은 동네 바깥 공동묘지 가는 산길 옆에 땅을 고르고 시체를 놓은 후에 그 위에 돌을 얹어서 돌매장을 했다. 총각처녀의 시체라도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 집안에는 돌 매장을 하더라도 여우같은 짐승들이 시체를 파지 못하도록 몇 겁으로 단단하게 묻지만, 타향에서 들어와서 혼자 살던 머슴과 같은 신분의 사람들은 그냥 시체만 보이지 않도록 돌을 얹어 덮었다.
 
이런 돌무덤에는 비석도 없었고 풀을 깎거나 돌보는 사람도 없었을 뿐 아니라 임자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임자 없는 이끼가 낀 오래된 돌무더기를 찾았다. 한 곳에 아주 오래된 돌매장한 자리가 보였다. 돌을 뒤집으니 오래된 무덤이었던지 뼈만 보였다. 수십 년 된 무덤 같았다. 우리는 거기에 나뭇가지를 꽂아 표식으로 두고 산을 내려오면서 다가오는 그믐에 공동묘지로 올라가기로 작정해 두었다.
 
그믐날 밤에 가마니를 등에 지고 우리는 공동묘지로 올라갔다. 어디에 희끄무레한 것이 보이면 귀신인가 싶어서 머리끝이 쭈뼛했다. 며칠 전에 표시해 두었던 무덤을 찾아서 돌을 치우고 뼈를 조심조심 모아서 가마니에 넣었다. 떨리는 가슴과 손으로 해골을 다 거둔 후에 그 자리를 돌로 다시 덮은 후 산을 내려왔다. 걷기보다는 딩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았다. 무서움에 발이 공중에 나는 것 같이 빨랐다.
 
우선 닷찌오네 집 옆에 흐르는 샛강에 뼈를 담구어 양잿물로 깨끗하게 씻었다. 뼈가 말끔하게 씻긴 후에 소쿠리에 넣고 번쩍 들어서 바닷물에 뼈가 말갛게 되게 흔들었다. 바닷물에 깨끗하게 헹군 뼈를 소쿠리에서 물이 다 빠지게 한 후에 큰 보에 담아서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방바닥에 뼈를 하나하나 제자리에 차례대로 붙여 놓았다. 아침녘에 작업을 다 마치고 나니 정말 보기 좋은 뼈대와 해골이 우리 곁에 누워 있었다. 친구는 춤을 추듯 기뻐했다.
 
우리도 잠시 눈을 붙이기로 하고 해골 옆에 누웠다. 해가 동천에 높이 떠올랐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시동생의 기척이 없었음으로 닷찌오의 형수가 그를 깨우러 왔다. 닷찌오의 방은 작은방으로 대청마루의 끝과 한 선을 이루고 있었음으로 섬돌에 서서 문을 열 수 있었다. 그의 형수가 섬돌에 올라서서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순간 해골이 누워 있는 것을 본 아주머니는 비명과 함께 길이대로 섬돌에서 떨어져 마당에 길게 넘어졌다. 아주머니는 넘어진 체 정신을 잃고 기절해 있었다.
 
비명소리에 잠을 깬 우리는 열려 있는 문 밖으로 내다보았다. 마당에 넘어져 뻗어 누워 있는 아주머니를 본 순간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사건의 진상을 알아챘다. 우선 닷찌오의 형수를 살려야 했다. 아주머니를 잡아 일으켜 앉히면서 이리저리 뺨을 때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아주머니는 방을 가리키며 무엇이라고 중얼거렸다. 닷찌오가 형수를 부축해서 마루에 앉히는 동안 친구와 나는 급히 방으로 들어가서 보에 뼈를 뚤뚤 말아서 옷장 안에 밀어 넣었다.
 
아주머니는 조금 있더니 정신이 좀 드는지 물을 달라고 했다. 닷찌오의 조카가 물을 가지고 오니 물 한 사발을 단숨에 다 마시고는 비명 소리처럼 방에 귀신이 있다고 떠들었다. 우리 동네 여인들 중에서도 해녀들의 말소리는 조금 시끄러운 편이었다. 비명처럼 들리는 수다스럽게 높은 목소리를 듣고 뒷방에 살던 해녀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옆집에 있는 해녀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마당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바른 말을 못하고 방에는 우리 셋 밖에 없었고 형수가 아마 헛것을 보고 기절한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해녀들은 우리가 생전에 그 집에 드나들지 않다가 오늘 보이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던지 자꾸만 방안을 들여다보려 했다. 닷찌오가 겁이 났던지 고함을 꽥 지르며 모여드는 해녀들을 내쫓았다.
 
어머니가 아직 정신을 완전히 차리지 못한 것을 본 닷찌오의 조카 녀석이 겁이 났던 모양이었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해녀들이 모아둔 우뭇가사리를 저울에 달고 있던 제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닷찌오의 형이 부랴부랴 집에 들어왔다. 그는 어찌된 사연인지 물었다. 형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사실대로 말했다.
 
그는 대뜸 닷찌오와 우리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우리는 따귀 한 대씩 얻어맞고는 꿇어앉았다. 그의 형님은 경찰에 알리겠다고 우리를 위협하면서 당장 해골을 다시 묻어 주라고 엄명했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가 시체를 훔쳤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또 한 번 놓았다.
 
우리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사이에 정들었던 그 아까운 해골을 짊어지고 공동묘지로 올라가 돌을 치우고 그 자리에 다시 묻어주었다. 가지고 갔던 소주를 한잔씩 뿌리면서 억지로 목욕을 시킨 죄와 들고 다니면서 고생시킨 죄를 사과하면서 해골의 명복을 빌었다.
 
며칠 후에 닷찌오의 형수에게 귀신이 들었다고 무당들이 와서 굿을 했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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