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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최정규칼럼 아빠의 이야기(2)

페이지 정보

작성자 파독50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2,911회 작성일 13-03-09 20:35

본문

"잘 살아야 헌다" 말하고, 스스로 목숨 끊은 할아버지
 
부안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김제에서는 나 혼자였는데 부안 집에는 누나 둘에 형, 그리고 동생이 있었다. 또한 사촌, 육촌 친척들이 한동네 가득해서 갓 쓰시고 긴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무서운 할아버지들과, 고모, 삼촌, 형들, 동생들, 누나들이 무지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마을 사람들의 다수가 최가 집안이었던 거 같다.

너희 할아버지는 키가 크시고 힘이 센 분이셨다. 그래서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하셨다. 머슴살이 와 통고지(논농사를 한해 맡아서 지어주고 쌀로 받은 일)하면서 우리 논농사도 하셨으니 밤낮 없이 일하셨다. 그래도 일터에서 우스갯소리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 했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새벽에 여느 때처럼 찰밥 덩이를 들고서 우리를 깨우고는 찰밥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잘 살아야 헌다. 애비 말 알아들었어?"  "잘 살아야 헌다.""잘 살아야 헌다."
우리는 찰밥을 먹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 찰밥은 할아버지가 밤에 물자 세( 물수레라고도 함-편집자)로 물을 퍼 올리는 일을 하면 밤참으로 나오는 것인데, 밤일하실 때마다 찰밥을 들고 새벽에 아들들을 찾아오셨으니 별생각 없었다.

그리고 학교에 갔다가 오는데 동네 앞에서 일하던 아저씨들이 나를 부르더니, "꺼먹둥아! 얼른 집으로 가거라. 니 애비가 죽는다."고 말했다.
나는 "웃기지 말아요. 새벽에 찰밥 들고 왔었는디, 거짓말도 하려거든 제대로 해요."라고 대꾸는 했으나, 멱(헤엄치러) 감으러 가자던 동무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는데 울음소리가 났다. 얼른 달려가 보니 너희 할아버지께서 방에 누워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우리 집에 태산과 같은 기둥이 넘어진 것이다. 그때 아빠 나이 12살이었다. 가난과 빚에 억눌렸던 할아버지는 새벽에 참으로 나온 찰밥을 들고 와 자식들에게 먹이면서 "잘 살아야 헌다."는 말씀을 남긴 채, 농약을 마시고, 당신의 지친 삶을 끝내신 거다. 나중에 알았는데 네 할아버지는 대대손손 머슴살이로 살아온 우리 집 빚과 큰누나 결혼, 큰형 중학교 학비 같은 것도 빚을 내서 치렀다. 일은 뼈 빠지게 해도 빚은 늘어간 셈이다. 한데 그즈음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서 국민을 생각한다며 ‘고리채 정리’라는 정책을 추진했다고 했다. 
빚을 진 사람은 국가에 누구누구한테 얼마 빚을 냈다고 신고하면 국가가 갚아주고, 빚진 사람들은 국가에 장기로 갚으면 된다면서 신고를 하라고 해서, 할아버지는 그렇게 했다. 그러자 네 할아버지는 돈을 빌려준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더 심각한 것은 또 빚을 얻어야 먹고살 수가 있는데 그 길이 막혀 버린 거였다. 더는 버틸 힘이 없는 네 할아버지의 선택이 죽음이었던 거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우리 집은 더 가난으로 깊이 빠졌다. 우선 중학교 다니던 형도 그만둬야 했고, 국민학교 다니던 나도 그만둬야 했다. 그때는 국민(초등)학교도 기성회비인지, 사친회비인지를 내야 하는데 낼 수 없었기도 했지만, 학교라고 가면 난 매일 기합(벌)을 받아야 했다. 복도에 무릎 꿇고 손들고 있기, 공부하는 교실 앞에서 손들고 서 있기, 가끔은 걸상을 들고 서 있기도 해야 하는데 힘도 들지만, 가난해서 회비 못 냈다고 벌을 받는 게 더 싫었다. 물론 온갖 청소와 학교 밭농사를 짓는 벌은 내가 신나하며 잘할 수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5년 6개월 다니다가 그만두고 옆집 논 새 보는 일을 맡았다. 추수하면 쌀 한 말 준다고 네 할머니가 가라 해서 뜨거운 여름 볕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쳤다. "워 ~ 이, 워 ~이"
아빠 목소리가 큰데 아마도 그때 소리를 많이 질러서 그런 거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누나는 '부엌데기'로 가고, 형은 농사를 짓고, 나와 동생은 쌍둥이 여동생과 막내둥이를 돌보며,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우리는 한 사람은 막내둥이를 업고, 또 한 사람은 쌍둥이 중 하나는 업고, 하나는 걸려서 네 할머니가 일하는 들녘으로 밥 얻어먹으려 다녔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농사일이 있을 때는 푸지게 먹었던 것 같다. 우리가 밥을 얻어먹고 오려고 하면, 주인아줌마가 밥덩이와 남은 갈치토막을 싸 주시며, "잘 살아야 헌다."고 말씀을 하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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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이삭줍기했다. 감자, 보리, 고구마, 벼 등등 먹을거리 줍기를 열심히 했다. 먹을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메뚜기, 개구리, 물고기 등을 잡기 위한 온갖 방법을 연구하여 그것들을 잡아 날랐다. 그때는 저수지가 근처에 있어서 정말 물고기가 많았다.
 지난 2001년 네 할머니 제사 때 가서 너희도 잡은 적이 있었지.
논에서 김을 매다가도 잡고, 물가에서 헤엄치다 잡고, 쥐덫(낚시)으로도 잡고, 물을 막고 퍼내서 잡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면 너희 할머니는 간장으로 살짝 간해서 익혀 말렸다. 그걸 시래기 넣어서 얼큰하게 끓여 먹으면 정말 맛이 있었다.
 
너희는 쥐덫이 무언지 모르겠구나. 바늘을 호롱불에 달구었다가 낚시 모양으로 휜다. 그리고 냇가에 있는 물 왕골을 베어서 배를 만들고, 낚시 바늘에 개구리 새끼를 끼워서 긴 새끼줄에 달고, 그 줄을 물 숲에 길게 늘어놓은 다음, 다음 날 아침에 왕골 배를 타고서 새끼줄을 따라서 건져보면 팔뚝만 한 가물치 열댓 마리 정도가 올라왔다. 이렇게 낚시 놓는 것을 쥐덫이라 한다.
네 할머니는 그 가물치 껍질을 벗기고, 살만 도려내 초고추장에 무쳐서 보리밥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주셨다.
 
한번은 여름농사를 끝나서 초가을일 때 난 너희 작은 아빠랑 갈대밭에 있는 둠벙을 품기로 했다. 헌데 겁도 났다. 그 갈대밭에는 뱀들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그 둠벙은 우리가 농사짓는, 방죽 논이라 불린 논 아래 똘 속에 있는데 누군가가 오래 전 뚝을 쌓아서 고추밭을 만들려고 갈대밭 속을 파서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한 번도 그 둠벙을 품어본 적이 없어서, 우린 틀림없이 그곳에는 물고기가 무진장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뱀 때문에 접근을 못 하고 있다가, 가뭄이 오래 계속 되던 어느 초가을 용기를 낸 것이다. 오랜 가뭄으로 인해서 그 둠벙에만 물이 있어서 품기는 쉬웠다. 약 1시간 정도 주위를 항상 뱀이 있나 없나를 살피면서 물을 품어내는데 가물치만 가득했다. 아마도 한 가마를 넘게 잡은 것 같다. 다른 고기는 없었다. 지게로 가물치를 지고 집에 오니 네 할머니가 너무 좋아하셨다.
우리 온 식구가 달라붙어서 가물치 살을 초고추장으로 무쳐서 샘 속에 담가 놓고 며칠 동안 포식했다. 그 후 네 할머니는 "저 오살헐 놈이 가물치를 엄청 잡아와서 얼매나 먹었는지, 허리가 지금까지도 하나도 안 아프당게" 하시더라.
 
세 끼 밥만 먹을 수 있었으면...
하나 더, 메뚜기 잡기. 너희들도 가봐서 알겠지만 우리 동네는 앞뒤로 무진장 넓은 들녘에 벼농사 짓는 논들로 가득하지 않더냐. 저녁이 되기 전에 하얀 이불 천을 벼 위에 살짝 덮어 놓는다. 그리고 아침에 이슬이 마르기 전에 달려가 이불 천에 앉아 있는 메뚜기를 잡는다. 잠자는 메뚜기는 이슬 때문에 꼼짝 못한다. 이불천 을 살살 털어서 가운데로 메뚜기를 모으면 된다. 그때는 지금처럼 농약으로 오염되지 않았던 때라 메뚜기가 무척 많았다. 그렇게 메뚜기를 잡아오면 할머니는 가마솥에 살짝 볶아서 말렸다가 간식으로 먹게했다. 아빠가 그때 잡았던 먹거리 이야기를 다 하려면 끝도 없겠다. 참게, 참새, 미꾸라지. 개구리, 오리, 쥐, 꿩 등을 몰고 잡았던 이야기 말이다.
 
나는 동생들이 커서 혼자 놀 수 있을 때부터는 모쟁이로 일을 다녔다. 곡창지대인 우리 동네는 모심을 때면 작업단을 꾸렸다. 몇 센티미터 넓이로 심을 건지가 표식된 긴 못줄을 양쪽에서 호루라기 불면서 옮기면 모심는 단원을 자기가 맡은 포기를 빨리 심어야 한다. 모쟁이는 그 작업단들을 돕기 위해서 모가 손에 닿게 해주는 일이다. 질퍽한 논에서 흙탕물 치면서 '열나게' 뛰어다니며 모를 정리하는 일이 모쟁이다. 일당이야 모 심는 사람들의 30%도 안 되지만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돈벌이었다.
 
좀 지나서는 나도 작업단에 들어갔는데, 내 작업 목표량은 다른 사람들의 50% 수준을 심는 거였다. 다른 사름들이 여덟 포기를 심는다면 난 네 포기를 심는 거였다. 그 후 솜씨 빠른 작업단 누나들이 옆에서 거들어서 정식단원이 될 수 있었다. 모심기는 무척 힘들었다. 우선 줄잡이가 호루라기를 불면 빨리 모를 심어야 하는데, 허리를 펼 기회를 주지않은 채 줄을 옮기고 호루라기를 불어대니, 논이 끝나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하지만 허리를 펴는 것이 힘들어서, 한참 동안 몸부림을 친 후에야 일어설 수 있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벼 베기와 등짐, 그리고 태질, 탈곡, 추수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겨울에도 가마니 치기를 위한 새끼 꼬기와 짚 다루기 등으로 쉴 날이 없었다. 그때 아빠의 꿈이 초가삼간에 발 뻗고 잘 수 있고, 세 끼 밥만 먹을 수 있는 거였다. 그렇게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고구마, 보리밥은 지금도 안 먹어
농사철은 그런대로 굶지는 않았다. 그러나 겨울과 봄은 하루 세 끼에서 두 끼로 줄고, 한 끼는 밥(고구마, 시래기, 독새풀), 한 끼는 죽(시래기, 김치, 콩나물), 봄에는 나물죽을 먹었다. 나는 그 시절에 고구마와 보리밥은 하도 많이 먹어서 지금도 고구마나 보리밥을 먹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난 가난이 창피했다. 부안으로 중학교를 다니는 동무들을 볼 때 그 애들이 입고 있는 학생복이 너무 좋아보였다. 그 동무들이 전주로 고등학교 갈 때는 만나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정말 '쪽 팔렸다.' 나도 그 동무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많이도 울었다. 어릴 적에는 그저 동생들 업고 들녘으로 가서 밥 얻어 먹어도 몰랐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 가난이  얼마나 '쪽팔리게' 하는가를 느낀 것이다. 그들이 중학교 다닐 때 나는 깔 베고, 모쟁이 하고, 나무를 해야 했다. 그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모 심고, 벼 베고, 등짐을 해야 했다. 겨울 방학이 돼서 친구들이 고향에 오면 나는 가마니 치고, 조개잡이를 나갔다. 어쩌다 그 동무들이 노는 데 가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멋있는 학생복을 입었는데, 나는 형이 입다가 내 몫으로 내려온 몇 군데 기운 헌옷을 입고 있었다. 그 동무들은 좋아 보이는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나는 두부장사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그것도 구멍난 것을 고무풀로 때운 거였다.
게다가 형이 신었던 거였다. 아빠가 둘째라 늘 큰아빠의 옷, 책, 신발, 버선 등을 물림으로 받았기에 새것을 갖고 싶었다.
 
우리 식구들은 딸들은 학교 몇년이나 다녔을까? 형은 중퇴, 난 국퇴, 동생은 국졸이었는데, 동생인 너희 인천 작은아버지는 부안중학교 시험을 쳤다.
그래서 합격했는데. 동네 이장 아들은 떨어졌다. 그 동생한테 "중학교 다닐 수도 없는데 뭐하려 시험 치냐?"고 물어봤더니, 우리가 돈이 없어서 중학교 못 다니지 공부를 못해서 못다니는거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 했단다.     
 
이렇게 가난한 삶에 찌들었던 난 어느 날 집안 큰집 논에서 벼를 훔쳤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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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3

댓글목록

초롱님의 댓글

초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언제 새 글이 올라오나 기다리다가 목이 늘어났어요. 마치 눈에 보이듯 써주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소중한 추억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글도 열심히 기다릴게요. <br />

민이맘님의 댓글

민이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iv>글 너무너무 잘 읽고 갑니다. 저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를 만나고 가는것 같습니다. 마음이 짠~~하네요. 다음 글도 기대해봅니다.</div>

Noelie님의 댓글

Noel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iv>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div>
<div>&nbsp;</div>
<div>세, 퉁고지, 쥐덫, 둠벙 등 낯설지만 생생한 어휘들이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일일이 설명을 곁들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쥐덫'에 그런 의미가 있었다는 이야기가&nbsp;참 재미있었습니다.&nbsp;물고기를 쥐덫으로 잡았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답니다.</div>
<div>&nbsp;</div>
<div>그리고 어쩜 이리 잘 묘사를 해주시는지, 눈앞에 장면들이 그대로 스치고 가는 듯합니다. 다음 편 고대합니다.</div>

triumph님의 댓글

triumph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iv>안녕하세요, 재미로 읽는게아니라 이런글은 마음으로 들 읽어 주셔야합니다.</div>
<div>지긋지긋한 가난..어려선 모르지만 다 자란다음에 돌이켜보면 ...|</div>
<div>"정말 어렸던게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지요</div>
<div>글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div>

캇젠클로님의 댓글

캇젠클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iv>고마운&nbsp;마음으로&nbsp;읽었습니다.&nbsp;정말&nbsp;고맙습니다.&nbsp;내&nbsp;생일날에&nbsp;올라온&nbsp;글을&nbsp;선물처럼&nbsp;읽었네요.&nbsp;우리&nbsp;엄마는&nbsp;늘&nbsp;학교를&nbsp;못가서&nbsp;친구들&nbsp;학교가는&nbsp;모습을&nbsp;보고&nbsp;울었다고 ...&nbsp;그&nbsp;뒷이야기는&nbsp;말씀해주시지&nbsp;못하셨어요.&nbsp;하지만&nbsp;대충&nbsp;그&nbsp;마음과&nbsp;그때&nbsp;어린&nbsp;엄마를&nbsp;이글을&nbsp;읽으면서&nbsp;보았네요.&nbsp;정말&nbsp;감사합니다.</div>
<div><br /></div>

최정규님의 댓글

최정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font size="3"><span style="line-height: 22.399999618530273px">파독광부 50주년 이야기사에 관심 가져줘 감사합니다. 저는 아빠의 이야기를 쓰는 최정규입니다. 말그대로 글을 잘쓰는게 아니라 그냥 자식들에게 하듯 제 살아온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가능한 그때 그시절 쓰던말과 표현을 그대로 하고자 합니다. 이해를 바랍니다.&nbsp;</span></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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