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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최정규칼럼 아빠의 이야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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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독50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3,598회 작성일 13-05-05 15:08

본문

지하에서 지상으로
한국방문을 마치고 온 나는 학습조에 한국에서 활동을 보고하였다.
특히 도시산업선교회의 소그룹 활동, 출자신용협동조합, 공동투쟁현황 등등을 하면서 구속자를 위한 기도회 참석해서 감명 받았던 이야기와 동일방직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감춰 들고 온 책과 소식지들을 내놓으며 토큰이 뭐야고 물었다가 간첩으로 의심받아서 4색 볼펜 주고 나왔다고 했드니 한참 웃더라.
그리고 이제 우리도 연극과 현장으로 찾아가는 선교, 에발트 광산 투쟁을 통해서 모인 사람들로 공개적인 조직 활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모두 박수를 치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복흠교회 집사님이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 다니겠냐고 전화가 와서 다니겠다고 해 지하광산에서 나와 지상에 첫 직장이 복흠에 있는 그랫츠(Graetz)라는 미국의 아이티티(ITT) 전자회사 독일공장이었는데 나는 테레비전 브라운관을 들어 올리는 작업이었다. 전자회사라 그런지 다수가 여성들이었다.
마침 통근 버스도 있어서 달하우젠에서 다니는데 편했다. 물론 일도 지하 광산 일에 비하면 무척 쉬었다.
헌데 내가 들어 올리는 브라운관이 동독에서 만든 거라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같은 분단국가 인데 어떻게 동독에서 생산한 브라운관을 수입할 수 있는가? 말이다. 남한에서 온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휴식시간에 집사님께 물어봤다.
 
 –서독사람들은 동독을 우리처럼 적대시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경제적 교류는 엄청 많고, 제한적 이지만 왕래도 가능합니다.
 
- 참 못 보았어요.? 74년 월드컵 때 동독선수들을 서독사람들이 응원 하는 거 말입니다.
군대 3년간 국민교육헌장 달달 외우고, 반공교육 철저히 받았던 난 참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자동차 공장 오펠(Adam Opel) 입사
몇 칠 후 집사님이 휴식시간에 와서는 지금 복흠 오펠 자동차 공장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니 최 형은 거기가 났겠다면서 하루 휴가를 내 한번 가보라고 했다. 
그때 오펠 공장에서는 특별한 자격이 없어도 건강만 하면 다 뽑아서 광산 다니던 교인들이 아마 다 아빠처럼 바로 입사하게 되었다. 헌데 아빠는 전자회사는 막 들어갔다가 나오는 꼴이 되어서 소개해준 집사님이 난처했으나. 신임을 받고 있어서 잘 넘겼다고 했다.
 
1979년 7월 23일 오펠공장에 취직하여 출근하였다.
정말로 신났다. 아빠는 집체만은 커다란 1번 프레스의 철판 밀어넣고 스윗치 누르는 일이었다.
물론 봉급도 예전직장보다는 거의 15%가 많았다. 또한 힘쓰는 일이라 남성노동자들이 다수였다.
나도 이제 노동자로 노동조합에 가입도 하고, 독일현장에서 열심히 실천하고 배우겠다고 다짐다짐을 했다. 이렇게 아빠는 노동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고, 실천하는 일이 시작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총맞아 죽다.
이 박사가 학습 조를 모이라고 해서 모였다.
밤 이었는데, 도착하자 우선 앉으라 하더니 포도주를 한잔씩 따랐다.
방금 연락이 왔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총에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원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제 민주화는 가까이 왔으니 그 민주주의를 위하여 한잔 합시다.
우리는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 영원할 것 같은 독재자가 자기의 부하의 총으로 죽었다니 말이다.
- 그러면 이제 우리도 빨갱이 누명은 벗겨지는 건가요? 누가 물었다. 물론이지.
사람들을 기숙사에 실어다 주고 집으로 와서 맥주 한 병들고 마시면서 다시 한번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는 의미를 생각할 때 그렇게 쉽게 민주화가 올 것 같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제 한국의 민주화는 되었다고 생각 하는 거 같았다.
 
이런 상황이 오자 공개 조직 하는거에 대해서도 이제 그런 활동이 필요하지 않는데 굳이 만들 필요가 있냐는 의견들도 나왔다.
우리는
-민주화의 요구가 파도처럼 전국을 휩쓸게 분명하지만 18년간의 군부독재에 기본 권력이 그대로 있습니다. 지금상황도 국민적 요구로 물러 난것도 아니고, 내부의 사건으로 발생되어 일어났기에 권력은 여전히 그들이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그동안 추진한 공개 활동조직을 결성하였으면 합니다. -
 
우리는 그동안 함께 해온 겔센킬켄 광산, 에린 광산, 에발트 광산 노동자들과 교우들을 중심으로 ‘한마음조합’이란 조직을 1979년 11월에 하팅겐의 태호아제 집(인선네)에서 15여명이 이삼열, 손덕수 선생의 축하연대를 받으면서 결성되었다.
이 한마음조합이 80년대 전 독일을 신나게 뛰는 활동가들은 만들어 낼줄 그때는 상상도 못했다.
 
여기서 잠깐 지금 독일에 박정희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하고 가자.
----
박정희 죽음과 동상 이야기
2012년 박정희 추종자들에 의해서 독일땅에 부활하는 상황이 왔다.
오늘은 박정희 죽음과 지금 독일에 박정희 동상 세우겠다고 설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내가 한국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박정희를 독재자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간첩으로 신고하게 만든 토큰 사건과 또 나의 동서까지 아빠를 신고할 생각을 했다는 사실은 나를 무척 긴장 시켰으며, 독재가 하는 일이 뭔지를 확실하게 알게 했다.
또한 각종 집회와 모임에 참석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던 나는 군사독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망가지게 하는지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었다.
 
헌데 지금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그 박정희가 부활시키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우리를 분노케 만들고 있다.
독일에서 파독광부의 친목단체인 그룩아우프회(Glueckauf) 회장과 일부사람들이 1천m 지하에서 피땀 흘리며 일했던 파독광부의 역사와 죽어간 동료들을 기억하기 위해 건립된 파독광부 기념관에 박정희 동상과 기념관을 세우고 만들겠다고 야단이다. 아빠도 잘 아는 고 창원 회장이 ‘박정희 전대통령 비문 및 동상 건립 추진위원회' 해외총괄 위원장으로 나섰단다.
그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들을 파독광부로 보내줘서 잘 살게 해주었고, 1964년 12월 독일을 방문했을 당시 눈물을 흘리며 파독광부, 간호사들을 위로하고, 오늘의 한국이 있게 경제발전의 초석을 놓으신 분이기에 기념하고자 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박정희가 광부를 독일로 보낸 게 아니며, 박정희 쿠데타로 오히려 파독광부 협상을 열약하게 만들어서 우리들을 더 힘들게 했다. 민주정부인 장면정권이 파독광부 협약을 진행하고 있었으니 파독이 더 많이 이루어 졌을거고, 쿠테타로 떨어진 신임을 얻기 위한 박정희보다 광부들의 권익을 훨씬 더 많이 챙기는 협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동상은 정신적, 교육적 상징이어야 하는데 박정희 행적은 정신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자랑할 것도 추모할 것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 쪽에 더 가깝다.
어떻게 한일합병으로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시대에 일본천왕에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총을 든 독립군 소탕에 앞장섰던 인물을 우리의 정신적, 교육적 추모 대상으로 삼을 수 있나?
또 청년학생들의 피로 이승만 독재를 물리치고 들어선 민주정부를 향해 총칼을 겨누며 쿠데타를 자행한 반민주주의 주역인 박정희를 어떻게 우리가 추모할 수 있는가?
박정희는 변절자이자 거짓말쟁이다. 그는 또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총에 맞아 죽어 가는데도 그는 행사를 그치지 않고 계속 진행한 무서운 사람이지 않는가?
매년 하는 그 8.15 행사가 사람의 생명보다도 더 중요하단 말인가?
참 불행하게도 부인도 그도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헌데 재미있지 않냐?
박정희 딸인 박근혜가 지금도 여전히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가 돼 있으니 말이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되었네요..)
 
그 박정희 망령이 지금 독일 동포사회를 흔들고 있구나.
파독광부 모임인 ‘그룩아우프회’의 회장인 고창원이란 사람이 느닷없이 3억500만원(23만유로)을 들여서 파독광부 기념관에 동상과 비문을 세우 겠다고 나서서 말이다.
헌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선일보>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생긴다. 신용석이라는 예전 조선일보 기자였던 사람이 지난 2010년 박정희 비문을 세우겠다며 독일로 달려와 두이스브르크시와 협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잘 안 됐던 거 같다.
생각해 봐라 독재자를 추모하는 사업에 사민당 소속 시장이 동의하겠냐? 세 번 정도 만나도 결과가 없자 그는 ‘파독광부 기념관’을 방문하고 "여기다." 생각했던 거 같다. 파독광부 기념관은 사적 소유이기에 기념관 안에 세우는 거는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재미있게도 동상건립 추진위는 국내와 해외 담당으로 출발한 거다. 아래 유튜브 함 보자.
 
 
국내총괄 담당자는 신현태로 한나라당의 전직 국회의원과 경기도 도의원을 지낸 자이다. 신용석과 어떤 관계인지가 궁굼하다. 신용석은 현재 인천 아시안게임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인 거 같다. 그때 명함이 아시아 올림픽평의회 부회장으로 되었있더라. 그리고 전 독일대사를 했다는 권영민이 고문으로 되어 있었다. 해외총괄은 고창원이 맡았다.
재미 있지 않냐? 통상적인 예로 보면 독일에서는 무슨 추진위 같은 게 뜨면 그 다음 지역에서 지원후원조직들이 만들어지는데, 이번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동상추진위가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만들어져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더 재미있는 거는 파독광부 기념관 건물을 구입하면서 진 빚이 18만 유로라고 한다. 현재 사정으로 보면 이 빚을 갚기도 벅찬데 23만유로 들여서 동상세우겠다고 설치니 이해가 안간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아빠는 박정희 동상이 파독광부 기념관에 세워지는 거 못 본다.
반노동자 적이었던 개발 독재자 박정희가 2012년 독일에서까지 망령으로 되살아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70년대 재독한인사회를 불순분자. 반정부, 반국가, 북한거시기, 빨갱이 목사, 교회, 교인들 왜곡하고 조직적으로 분열시키던 박정희유령이 2012년에 또 분열시키고 있구나.
 
apa14-01.jpg

이사 이야기
 
한국에 다녀온 후 오펠자동자 공장에 취직이 돼서 신나고, 한마음조합 결성으로 고민 고민을 하면서도 신날 때 건물 주인이 처음과 다른 조건을 내놓았다. 옆에 있는 건물을 함께 사라는 거였다. 우린 그 돈을 마련할 수도 없었고 그 건물을 사서 활용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거부했단다.
그러자 주인은 당분간 거처를 마련해 줄 테니 이사를 하라고 해서 우리는 집을 옮겼다.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다. 암자텔굿 쓰트라세(am sattelgut 66)에 있던 천장 높았던 집 말이다. 집세는 엄청 싼 거였는데 대신 우린 석탄 난로 피웠단다. 오래된 집이라서 천장이 엄청 높았다.
헌데 어느날 아빠가 아침 근무 후 돌아와 너와 함께 놀다가 낮잠을 자던 나를 깨웠다.
"아빠! 아빠! 필 아우게(viel auge)! 필 아우게!" 하고 소리치면서 말이다.
난 한참 웃었다. 아우게는 우리 얼굴에 있는 그 '눈'인데, 너는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초겨울 눈(Schnee)을 보고 "필 아우게"를 외친 거지. 네가 말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이다. 그 후 아빠는 우리 말과 글에 뜻이 다른 같은 표현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물건을 바라보는 눈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 그리고 노를 젓는 배와 먹는 과일인 배, 그리고 우리 몸통 중에 한 부분을 이르는 배처럼 말이다. <다음계속>
  
apa14-02.jpg
                                              ( am sattelgut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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