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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최정규칼럼 아빠의 이야기(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파독50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788회 작성일 13-04-19 08:30

본문

"이러시면 귀국해서 신세 망칩니다"
1978년, 한인광부들 일하던 독일광산 발칵 뒤집히다
 
지난 번에 말했던 '대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야겠다.
파독한인광부들은 광산일을 시작하면 제일먼저 독일광산업주의 보증으로 독일까지 오는데 든 경비를 은행에서 대출받아 송금하는데 대출에는 당연히 이자가 붙는다. 헌데 레크링하우젠의 에발트 광산에서 일하는 77년 마지막 도착한 광부들의 대출이자가 이상하게 다른 지역보다 이자가 높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복흠교회 집사한분이 그 문제에 대해서 조사를 해봤다. 확인 결과 에발트 광산의 한인 통역사와 몇 명이 자기들의 저축한 돈과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후 그 돈을 가지고 광부들에게 이자를 더 붙여먹는 이른바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참 기막힌 일이다. 독일광산 업주도 아니고 독일은행도 아닌 한인광부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협조할 줄 알았던 통역이 광부들 작업장을 바꿔주는 명복으로 돈을 받는 소문이 나돌더니 이제 직접 대놓고 '돈 놀이'까지 한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그것도 돈놀이를 하는 당사자가 이 아빠의 고향 형 이었으니 말이다.
에발트 광산 광부 한인자치회원들은 불이 붙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된 각각의 동기회(예-도착한 시기을 붙혀서 77- 1월동기)들은 조용했다. 다만 70년대 마지막에 도착한 동기회만 날밤을 세워가며 분노했다. 그들은 치열하고 뜨거웠다. 도착한 지가 얼마가 안 된 상황이라서 그랬는지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마침내 갱도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입항 거부 선언을 하면서 ‘불법파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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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놀이 한 통역 해고하라!
통역을 우리가 추천하게하라!
작업장 이동을 자유케하라!
 
1978년 한인광부들이 있는 독일 광산이 뜨거워졌다.
일이 이렇게 되자 주독 한국대사관이 발칵 뒤집혔다. 대사관의 노무관과 각 광산 통역들이 레크링하우젠 에발트 광산으로 찾아오고 모여들어, 사태 해결을 위해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그들은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 채 갖은 협박과 겁주기 그리고 회유책만 남발했다.
 
"이러면 귀국해서 남산 갑니다"
"여러분, 불순한 세력들의 이야기에 현혹돼 이러지 마세요. 신세 망칩니다."
"독일 정부에서 부당한 행위(대출)를 참는 거 봤습니까?
(한인이 돈놀이 했다는)거짓에 속지마세요."
"불순 세력들에 속아서 행동하면, 귀국해서 남산 갑니다."
"독일에서 노동권이 박해받은 거 봤습니까? 합법적으로 된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날 대사관에서 온 노무관이 전태일 일기장에 기록된 노동청의 그 임정삼이었다. 임정삼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할 당시 노동청 근로기준 담당관이었으며, 그 문제에 대한 책임으로 독일로 온 자였다. 그가 마침 그때 주독 한국대사관 노무관 이었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인연이지지 않냐! 게다가 그 노무관은 장성환 목사님이 설교하는 본(Bonn)교회 교인이더라.
 
전도부장인 나는 교회에 '찾아가는 선교'를 위해 연말에 광산 기숙사에서 송년 잔치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삼열 박사도 너무 좋다고 하면서 상담소에서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해서 나는 신이 났다. 그리고 그때 에발트 광산의 한인 광부들은 밴드를 만들었다.
너도 알지? 키 큰 현아 아빠 말이다. 그 현아 아빠가 멋진 밴드를 만들었단다. 밴드 이름은 ‘얼간이 악단’. 드럼과 기타가 포함된 4인조 밴드를 만들어 연습을 하고 아빠는 막걸리를 제조하는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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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사가 ‘향수병'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막걸리를 만들어서 마시면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데 너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빠가 막걸리를 마실 줄만 알았지 담글 줄은 몰랐다는 사실이다. 이걸 어쩌냐. 헌데 재미있게도 유학이 아니라 피신 온 거 같던, 너도 아는 황민영 선생이 있었는데 그 형이 "그거 내가 도와 줄게"하면서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막걸리를 담가 마시다
나는 한국에 있는 너희 큰아빠한테 편지를 써 보내서 누룩을 보내달라고 했다. 얼마 후 한국산 누룩이 도착됐다. 나는 황민영 형님과 그걸 가지고 막걸리 담았다. 헌데 막거리가 익어가는 기간에 "문제가 생겼다."는 민영 형의 연락이 왔다.
나는 너와 함께 그 집에 갔다. 민영 형은 나를 보고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막걸리 술독을 자들(딸들) 방에 놨는데, 냄새 때문에 애들이 취해버린다. 어떻게 하냐?"
난 그 술통을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네가 그 일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그 당시 우리는 한인광부들의 투쟁을 어떻게 독일사회에 알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언론에 이 문제가 보도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일은 이 박사가 담당했단다. 그후부터 레크링하우젠 광산 문제가 독일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독일신문에 나오면 한인광부들이 우리를 믿는데도 도움이 될 거 같았다. 그 반응은 굉장했다. 그 이유는 광산에서 벌어지는 일이 독일사회의 상식적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그때 사진을 신문에 난 거다. 함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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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선교'의 실천의 일환으로 시작된 송년잔치는 에발트 광산에서 시작했다. 교우들이 음식을 '왕창' 지지고, 볶고 해서 교회로 가지고 왔다. 교인들은 이날 교회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먹고, 마실 음식들을 날라다주는 일만 했다. 송년잔치는 한인광부들 스스로 만든 ‘얼간이 악단’과 함께 신나게 진행됐다. 당연히 막걸리는 그 자리에서 굉장한 인기였다.
헌데 잔치가 끝나고 아빠는 그 막걸리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선교에 왠 막걸리였냐"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내 의견을 열심히 얘기했다.
 
"찾아가는 선교는 우리가 아니라 한인광부들이 주체입니다. 그들이 신나고 즐겁게 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교인으로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항상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극으로 노동자 의식 갖게 되다
그동안 장성환 목사님과 이삼열 박사는 주말 세미나를 많이 하셨다. 주제는 대개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으로 실천현장 현황과 과제, 이런 거를 다루면서 민중과 함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토론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 특히 히틀러시대에 본 헤퍼목사와 고백교회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뜨겁게 토론되었다. 이때 우리는 찬송가도 아니고 뽕작조 노래도 아닌 금관예수 라는 김민기 작곡의 노래였다. 우리는 모일 때 마다 열심히 불렀다.
이런 주말 세미나에는 예쁜 간호사들도 멀리서 참석하러 왔다. 나중에는 이 간호사들이 대거 복흠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참여 활동도 더 활발하게 됐다. 당연히 현장의 활동은 더 뜨겁게 잘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 총각광부들은 콘노래 부르면 교회로 모여들었다.
우리 학습조는 한인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 의식이 부족하거나 없었다는 점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노동자로서의 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사업으로 연극 공연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지난 회에 얘기했던 "나는 어떻게 해!"라는 제목의 사례극 공연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한국 노동운동 사례'를 연극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당시 교회 환경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배우 모집도 성공적이었다.
너도 아마 그때 공연 이야기를 듣고, 사진도 보면 엄청 재미있을 거다. 우리 학습조는 청계피복노조 탄압사례를 청계피복노동자들의 재판기록을 ‘3일째 되는날’이라는 각색하여 연극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내가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을 스스로 의식할 수가 있어서, 연극 연습이 무척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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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배우로 참여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도 그 각본을 읽고 자기가 맡은 역의 대사를 외우는 과정에서 의식이 변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빠의 생각은 적중했다. 청계피복 노동자들이 구속돼 재판을 받는 이야기가 토대가 된 우리 연극 ‘제3일째 되는 날’은 우리에게 이렇게 닦아왔었다. 헌데 감정은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몸이 움 맘대로 움직여지지 안했다.
 
누가 각본을 쓰고 연출했나고?
우리 학습조에는 레크링하우젠 에발트 광산 투쟁 속에서 만난 한인 광부가 있었다. 그는 한국 광산에서 노조활동을 하다온 문학가였다. 너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H 형이 각본을 만들었단다. 그리고 연출도 해서 우리는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연극을 본 적도, 연극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모르는 우리는 사고를 쳐가면서 연습을 시작했는데, 생각이나 의지와는 달리 영 잘 되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 박사의 동생인 단열 형이 연습장에 조니워커 위스키 한 병과 땅콩봉지를 들고왔다. 그리고는 "야! 니들 다 모여!" 했다. 우린 모였다.
"야, 느그들이 연극이 뭔지 알아? 그 주인공에 감정 속으로 빠져야 하는 거야! 느그들이 이제부터 구속된 청계피복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거야! 헌데 느그들 못하지? 안되지? 우선 내가 무조건 이 술 한 잔씩 줄 테니 마셔라. 그러면 내가 도와주지."
우린 구세주라도 만난 듯 기뻐하며 그형이 하라는 대로 했다. 정말 한 잔하고 하니 용기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모두들 '열나게' 연극에 몰두하는 거였다. 우리는 점점 연극 속에 빠져들면서 연극 속의 주인공이 되어 울고, 분노했다.
이렇게 연습을 한 끝에 우리는 ‘제3일째 되는 날’이라는 제목의 연극, 청계피복 노동조합 탄압사례 재판 기록을 중심으로 내용이 채워진 연극을 무대 위에 올렸단다. 관중들의 반응은 지난 번 광부사례극만큼 은 못했지만, 연극에 출연한 배우들인 광부와 간호사들은 연습 과정을 통해 엄청난 의식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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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조는 노동운동 사례뿐이 아니라 ‘노동의 역사’를 읽기 시작했다. 헌데 레크링하우젠 에발트 광산에서 8명의 한인광부가 해고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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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새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면서 잘 읽고 있습니다. 소중한 역사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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