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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최정규칼럼 아빠의 이야기(1)

페이지 정보

작성자 파독50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3,796회 작성일 13-03-02 21:55

본문

아빠는 꺼먹둥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왔다
 
이제 아빠가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하련다.
그리고 보니 너희가 벌써 결혼하여 가정을 갖고 사는구나. 작년에 중단했던 후 혜린이는 귀여운 손주를 안겨 주었구나. 고맙다. 이제 아빠의 이야기를 열심히 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으니 올해는 꼭 다 쓰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다시 시작한다.
 
나는 1950년 음력 4월 7일(약력 5월 23일) 전북 부안군 동진강가 장등리라는 마을에 사는 가난한 농부의 넷째로 태어났단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내 이름보다 "꺼먹둥이" 라는 애칭으로 불러서 난 어릴 적 내 이름이 그냥 꺼먹둥이인 줄 알았다.

너희 할머니가 아빠를 갖게되면서 꿈을 꾸었는데, 어느 날 잠을 자는데, 너의 막내 할아버지인 김제 작은 아버지가 달구지(수레)에 나락(벼) 가마를 가득 실은 검은 황소를 끌고 우리 집으로 와서 황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꿈을 꾸셨단다. 너희 할머니께서 그게 태몽이라고 가끔 말씀하시면서 내게 "넌 밥을 굶지는 않을 거다." 하셨다. 그리고 나를 낳았는데 피부색이 검은 검둥이였다.

몇 달 후 작은집에 동생이 태어났는데, 그 동생은 나와 달리 하얀 피부색이라 아빠의 할머니가 "흰둥이"라고 불렀다. 아빠는 지금도 고향에 가면 "꺼먹둥이 양반"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어릴 적에는 그냥 꺼먹둥이 였는데, 결혼하고 자식들인 너희랑 가니 '양반'이 붙는 거다.
 
작은댁에 양자로 가다
 
choi-4jahre-alt.jpg

아 그러고 보니 너희는 할아버지가 모두 세 분이란다. 너희 친할아버지, 같은 동네에 사는 작은 할아버지, 김제에 사는 막내 할아버지 이렇게 삼형제이셨다. 아쉽게도 너희들은 할아버지를 한 분도 뵌 적이 없구나. 근데 내가 4살 때 나락 가마 가득 실은 황소를 몰고 우리 집에 왔던 태몽속의 막내 할아버지는 자식을 갖지 못하자, 둘째 작은 할아버지의 셋째 아들을 입양하기로 하고 데리러 오셨다.  그러나 작은 할머니가 양자를 줄 수 없다고 하자 우리 집으로 와서 대성통곡을 하시면서 할머니께 신세 한탄을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너희 할머니가 "그놈만 자식인가? 꺼먹둥이 데리고 가시오." 하고 나를 양자로 보냈다. 그때 작은집은 아들이 넷이고, 우리 집은 셋인데 할머니께서 둘째아들인 나를 양자로 보낸 것이다.
 
나는 다음 날 마른 명태를 등에 소총 메듯 메고서, 막내 할아버지 자전차를 타고, 나룻배로 동진강을 건너 김제군 죽산면 종남리 작은집으로 갔다. 작은집으로 양자로 가서 무척 호강하면서 살았던 거 같았다. 작은집은 자그마한 동네 이장일과 농사로 아주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넉넉했던 거 같다. 나의 양아버지, 양어머니, 외갓집, 외숙들, 이모들이 나를 무척 귀엽게 대해준 기억들이 아련하나마 떠오른다. 양아버지, 그러니까 너희 막내 할아버지는 일을 마치시고 집에 오시면 막걸리를 드셨는데 어린 나에게도 한 대접씩 마시게 했다. "정규야!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다."라고 말씀하시며 말이다. 아마도 그때 양아버지 한테 배운 술이 지금도 술술술 잘 넘어간다.
 
아빠는 오줌싸개였다
1958년쯤 죽산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양아버지는 나를 자전차로 꼭 학교까지 실어다 주셨다. 너희 막내 할머니인 나의 양어머니께서는 내가 걸핏하면 솜이불에 오줌을 싸도 꾸짖기보다는 달래주셨다.
"좀 더 크면 안 쌀 꺼여." 하시면서. 헌데 학교에 가도 오줌을 싸니 꾸짖기도 하시고 나중에는 온갖 처방을 다 하셨다.
 
내가 오줌을 싼 어느 날 아침에 키(치)를 쓰고 앞집 아줌마네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고 해서 갔더니, 그 아줌마는 키에 물 뿌리면서 "너 이놈 또 오줌 쌌구나!" 하면서 부지깽이로 키를 막 두드려서, 나는 깜짝 놀라 엉엉 울면서 줄행랑을 쳐 집으로 온 적도 있다. 

 
choi-bucheon.jpg
                                        
또 한 번은 오줌을 이불에 흥건히 싸놓은 채 코를 골면서 자는 내가 너무 얄미워서 서리가 내린 마당 뒤엄자리에다 던져 놓았단다. 근데도 아무 소리가 없어서 다시 뒤엄 자리로 가 보니, 글쎄 내가 코를 골고 자고 있더란다.
(양어머니가 내가 청년이 되었을 때 해주신 얘기다)
 
명절 때나 제사 때 양아버지는 큰집(내가 태어난 집)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시고, 방학 때는 아예 부안에서 형제들이랑 놀라고 하면서 보냈다. 큰집에 오면 나는 또 왕자 대접을 받았다. 너희 할머니는 친자식인 내가 엄마인 줄도 모르고 "큰엄마" 하고 부르는 게 안쓰럽게 느껴서 잘해 주셨을 거다. 누나나 형들이 시샘할 정도로 나에게 잘하자 동네 누나와 형들이 자꾸 이야기허는 거였다. "야, 느그 집이 여기야! 큰어머니가 아니고 엄마야! 이 바보."
 
또한 양어머니도 이상하게 내가 느낄 만큼 대우가 확 달라졌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를 마치면 동진강 나루터로 와서 큰집으로 가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때마다 데리려 오셨던 양아버지가 하루는 "형수님! 아무래도 저놈을 여기서 키워야겠네요. 강물이 무섭기도 하고, 실은 저놈이 터를 팔았어요."라면서 눈물 바람으로 가셨다.
 
터를 팔아 동생을 낳으셨다
양자로 가서 살면서 마을 사람들이나 외가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정규야! 터 팔았어? 언제 팔래?"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내가 터를 팔아야 양어머니가 아이를 가져서 동생을 낳는다는 거였다.
                                                                             
학교를 다닐 때였다. 초가을 무렵에 학교 갔다가 와서 낮잠을 자는데 마당 뒤엄 자리에서 내가 터 판다고 코피를 흘리는 꿈을 꾸었다. 그 후 나는 사람들이 물으면 "터 팔았어요, 마당 뒤엄 자리에"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줌마들은 "어~메 아들이다. 아이고 이쁜 거" 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터를 밭에 팔면 딸, 논에 팔면 아들인데, 마당의 뒤엄은 논이라는 거다.
그후 나는 부안군 동진면 동진국민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아빠를 가질 때 꾼 태몽대로 나는 작은집으로 갔다가 다시 온 것이다. 재미있지 않냐?  <다음계속>
 
 
추천2

댓글목록

목로주점님의 댓글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iv>터를 팔아야 어머니가 아기를 가지시는 거군요. </div>
<div>터를 판다는 표현을&nbsp;저는 처음 듣는데 '양자를 들여야 아기가 들어선다는 말'은 많이 들었고 실제로 보기도&nbsp;했습니다. </div>
<div>저는 의사도 생물학자도 아니지만 임신을 해 본 여자가 더욱 임신이 잘되고 임신을 안해 본 여자들은&nbsp;첫임신이 잘 안되는 것쯤은 알고&nbsp;있죠. </div>
<div>(그래서&nbsp;피임을 오래한 부부들이 막상&nbsp;아이를 가지려고 하면 의외로 임신이 잘 안되어 다시 고민하는 경우도 많구요. )</div>
<div>그런데 입양으로 얻은&nbsp;자식이라도&nbsp;그 엄마에게&nbsp;동생을 쉽게 가지게 해주는 것을 보면 신체적 조건 뿐 아니라 심리적인 조건도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nbsp;것인지 생각하게 해주며 이런 모든 일이 신비로울 따름입니다. </div>
<div>&nbsp;</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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