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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최정규칼럼 아빠의 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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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독50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821회 작성일 13-03-17 08:43

본문

징그런 '국퇴' 학력, 군대 '말뚝'도 거부돼

1971년 초 나는 전주에 있는 군부대 훈련소에 입대했다. 훈련은 재미가 있었다. 식사도 자유 배식으로 괜찮았는데, 고된 훈련이 시작될 무렵 자유 배식이 배급으로 바뀌면서 배가 고팠다. 유신 후 선거 때 반짝 자유 배식으로 했다고 했다.
훈련을 마치고 나는 경기도에 있는 운전교육대에가 12주간 자동차운전을 배웠다. 나는 그때 나라가 날 무척 생각해 준다고 믿었다. '열나게'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이 고마운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총검술 훈련도 열심히 했다.
운전교육을 마치고, 경기도 마석 근처에 있는 군자동차 대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하루는 인사계가 나를 불러서 갔다. 인사계는 "너는 누구 빽으로 여기 왔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주훈련소에서 보병이 아닌 기술 병으로 운전교육을 받고, 자대도 후방인 마석에 떨어지는 사람은 부자 아니면 빽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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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 2톤 반 트럭으로 군수물자를 운송하는 부대로 파견 나가는 시간이 많았다. 한번은 문산 쪽으로 파견 근무를 나갔는데, 북한이 쳐들어 올 경우 탱크가 빨리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벽 쌓기, 즉 대전차 장애물 만들기 작업에 지원을 나간 적이 있다.

공병과 보병들이 힘든 작업을 하는 것을 보니, 트럭을 몰고 다니는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리고 미군 부대가 철수한 건물에서 구리전기선과 다른 돈 될 만한 것들 몇 가지를 뜯어내 고물상에 팔아 용돈도 만들 수 있어서 나는 군대가 너무 좋았다. 
한번은 월남에 파병됐던 군대가 철수하면서 용인에 창설된 3군으로 올 때 지원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신병들을 데리고 면이나 작은 마을로 파견 나가 모래 등을 실어 나르는 주민지원 일을 했는데 면장과 마을 유지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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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런 학력, 군대 말뚝도 안돼 
나는 제대하면 머슴살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뻔해서, 군대에서 계속 살 수 없을까 고민을 했다. 이른바 '말뚝(장기복무)을 박을'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속 부대 인사과에 가서 상의를 했다. 하지만 안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력이 국퇴라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놈의 학력은 정말 징그러웠다. 내가 뭐 학교 가기 싫어서 안 다닌 것도 아닌데, 걸핏하면 그 놈의 학력이 항상 문제였다. 남들은 병장으로 제대하는데, 열나게 연습해서 국민교육헌장도 잘 외우고, 총검술을 잘해도 난 그 학력 때문인지 상병으로 제대했다. 난 적어도 군대 생활할 때 만큼은 대한민국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해병대 입대를 위해 원서 접수하려고 했을 때도 '국퇴'라는 그 학력 때문에 퇴자를 맞았다.
평생 국가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장기 근무와 해병도 입대 같은 도전을 해봤으나 '국퇴'라는 학력 때문에 나는 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상병으로 제대하고 시골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월남파병을 지원하고자 했으나 전쟁이 끝나는 상황이라 파월될 기회도 없었다.

독일 머슴살이를 위하여!
1973년 12월 제대하고 돌아온 나는 편하게 며칠을 쉴 수도 없었다. 형님은 열심히 머슴살이를 하시면서 집안을 지키고 계셨고, 식구들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제대했다고 환영하는 친구들과 점방어머니 집에서 막거리를 한참 들이키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불렀다.
"정규야! 니 성(형)은 머슴 살고 열심히 혀서 인자 그리도 밥은 안 굶어. 그렁게 니가 성 힘들게 허면 안된다. 인자 어떻게 헐래?"
"아따! 엄니 걱정 마쇼. 잘 사는 당숙네로 머슴살이 갈랑게 알아봐 주쇼."
"징말이지?"

어머니는 한참 내 얼굴을 쳐다보셨다. 어머니는 며칠 후 내게 이듬해 봄부터 6촌 당숙 집에서 머슴살 이를 하러 가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머슴살이를 시작할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우선 동진강 뚝 보수 공사장에서 일하는 친구로 부터 일자리를 얻어서 돌을 저나르는 일을 했다. 물때나 날씨 때문에 일 못하는 날은 가마니 칠 준비를 위해서 새끼 꼬기를 동생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끼를 꼬고 있는데 동네 여동생이 달려오더니 내게 말했다.

"오빠! 독일 가라. 지금 우리 집에 징게(김제) 언니가 왔는데 가봐!"
"야, 오살것, 니가 뭘 안다고 독일이여! 미친년."
"아냐! 그냥 가봐 우리 징게 언니가 데리고 오라고 했어!"

여동생에게 들어보니 사연인즉 이랬다. 김제에 사는 언니 동네에 독일에 광부를 보내는 일을 하는 브로커가 있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독일로 갔다는 것이었다. 그걸 한동네서 본 언니가 자기 남동생을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자기 동생은 삼대독자인데다, 결혼은 했는데 아직 아들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온 가족이 모여서 논의하던 중 그 철없은 여동생이 내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 애가 "그럼 꺼먹둥이 오빠가 가면 되겠네."하니 그 징게 언니가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이다.

"야, 너 횡재 만났다."
나는 새끼를 꼬다가 일어나서 그 애를 따라갔다. 가보니 온 식구가 다 앉아 있었다. 내가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파독 광부 대상이었던 형은 "야! 너 횡재 만났다. 내가 가야 허는디."라고 말했다. 나는 그 징게 언니가 해오라는 증명사진, 호적등본을 만들기 위해서 동네 사진관과 면사무소를 들렀다. 당시 돈으로 4만원인가, 정도를 신청서 비용으로 드렸다. 마침 그때 나는 동생과 함께 강둑 공사를 하고 받은 돈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자 브로커라는 사람은 나에게 쌀 열 가마 값을 들고 이틀 후 김제역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거기서 서울행 밤차를 탄다고 했다.

쌀 열 가마. 그건 우리 형님 머슴 1년살이 '새경'이랑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그 브로커가 했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 사람은 독일 광부로 가서 한 달 일하면 시골머슴 일 년 치를 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디 시상이 같은데 그런 디가 있겄어." 허면서도 은근히 땡겨서 접수했다. 접수를 하고 나니 더욱 땡기는 것이다. 헌데 수가 없지 않는가! 그때 예전에 나와 소나무를 베어 숨겨놨던 사건을 '공모'한 친구가 돈을 벌었 다는 소문이 있길래 가서 만났다. 그 친구는 '학벌'이 돼서 직업 군인으로 입대했고, 월남으로 파병이 돼서 돈을벌었다는 것이다.
"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 내력이 그런데 이번 독일 광부로 내가 가면 좀 풀릴까 해서 그런다. 혹 돈 있으면 쌀 열 가마 값 좀 빌려줄 수 없겠냐?"
"그래, 한 번 해보자. 헌데 내가 갖고 있는게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관리한다. 애기를 해볼게."

그리고 그 친구는 몇 시간 후 나타나서 말했다. "미안허다. 미안허다." 나는 점방 어머니집에서 가서 막걸리를 엄청나게 들이키고 있었다. 점방 어머니는 내가 누굴 데리고 가게를 가든, 혼자 가든 먹고 마실것을 그냥 주셨다. 점방 어머니는 내가 농약 먹고 자살을 시도했을 때 병원까지 달려와서 "이놈아! 이놈아!" 하시면서 통곡한 분이다.
"야, 니가 있어서 내가 얼매나 재미있고 행복헌지 알어? 느그 오매나 나나 다 같은 에미여. 알제! 그렁게 다시는 그러질 말어. 알겄어?" 했던 분이셨다. 아마도 그 점방 어머니가 너희 둘의 얼굴을 보셨다면 어깨춤을 추셨겠지. (지금 생각하니 89년 첫방문때 만난거 같다.)
"맞어, 우리는 대대로 머슴살이만 허는 거여. 어쩔수 없는 운명이여. 엄니,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주시오."
"너 오늘은 쬐끔 그런 거 같은 게 천천히 마셔라." 하시면서 막걸리 주전자 주신다.

내가 대접에 막걸리를 또 가득 따르고 있는데 동생이 왔다. "오빠! 큰오빠가 빨리 집으로 오래 헐 말 있다고."난 술이 팍 깼다. 집으로 가니 형님도 술상을 놓고 한 잔하고 계셨다.
"앉어라! 오늘 너허고 나허고 한 잔 진탕 마시자!"
어머니는 어리둥절하신 모습으로 쳐다보신다.
'야들이 무신 일 허랑 갭네.' 하듯 자식들을 보면서 걸레질을 허신다.
"야! 정규야 성(형)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 죽어라 머슴살이해서 인자 쬐끔 폈다. 근디 니가 지금 독일 간다고 허는디 쌀 열 가마가 있어야 헌다고야! 야, 임마! 니가 당숙네로 머슴살이 가기로 했다는 이야기 듣고 엄니허고 나허고 울었다. 우리는 왜! 대대로 머슴살이인지를 말이다.
그리서 성이 결심을 했다. 내가 머슴살이 해서 모아 논 쌀 열 가마 너 줘서 독일 머슴살이 보내기로 말이다. 자! 한 잔 같이 들자, 독일 머슴살이를 위하여!
그 대신 너는 쌀 열 가마 값은 꼭 이 성한테 갚아야 헌다."
"아이고 성 그게 무슨 말이여. 나는 성이 시킨 대로 다 헐 것이여."
그리고 내 형님인 너희 큰아버지는 그 다음 날 나를 데리고 김제역까지 함께 갔다. (그때도 나룻배를 타고 건넜다) 도착하니 7~8명이 역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큰아버지는 브로커와 몇 마디 하더니 가방을 주면서 "조심혀라. 글고 저 선상님(브로커) 말씀 잘 듣고, 잘 혀서 합격혀야 혀, 알지?"라고 말했다. 기차속에서 내모습이 참 초라했다. 제대하고 쉴 여유도 없이 공사판 일할 때 사서 신었던 반장화같은 일명 두부장수 신발을 신고, 작업복 차림에 낡아진 가방을 보듬고 있는 내모습이 말이다. 10여 명의 일행은 김제역에서 밤차를 타고 출발했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여관을 정하고, 종로에 있는 무슨 병원으로 가서 폐 엑스레이 검사를 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엑스레이 검사가 끝난 뒤 의사가 나를 보더니, "동상 광부 아니지?" 했다. 내가 어리둥절하고 머뭇거리자, "니 폐는 광부가 아니여." 하면서 이상한 미소와 눈웃음을 짓고는 나간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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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님의 댓글

초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앗앗, 일등! 일단 깃발 꽂고 글 읽으러 갑니다. 다시 들어와서 감상 말씀드릴게요. <br /><br />단숨에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br /><br />남들이 지긋지긋하다고 하는 군대 생활이 동경스러우려면 현실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의 담장을 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십니다. <br /><br />최정규 작가님의 사연을 비롯하여 파독50년에 실린 모든 내용이 제겐 전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지나간 역사가 이렇게 암울했다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작가님과 그리 멀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저로서는 '우리의 역사가 이렇게 암울했던 게 아니라 우리의 불공평한 사회가 이렇게 암울했고, 아직도 암울하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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