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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최정규칼럼] 아빠의 이야기(20)   

할머니 독일생활
 
내가 할머니 이야기를 하는 거는 독일에서 태어난 너희들이 할머니 시대를 이해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할머니가 독일에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난 주말이었는데, 아침을 차려드려도 드시지 않으셨다.
"엄니 왜? 아침을 드시지 않어요?"
"오살 놈아! 며느리가 있는데 아들놈이 차래 주는 밥 먹냐?"
"아참 어머니, 며느리 밤 근무하고 자요."
"그려도 그러지, 남편 밥도 안 챙겨주고 자냐?"
할머니는 큰집에서 큰며느리로 큰소리치며 살았는데, 너희 큰엄마와 비교하니 네 엄마가 영 맘에 안드셨던 거였다. 그러나 함께 살면서 맞벌이 생활을 보면서 할머니는 엄마를 이해하셨단다.
파아란 하늘의 5월 어느 날 아침에 할머니를 모시고 고사리가 많은 언덕에 올라갔다.
부안 큰집은 제사가 많은데 제사상에 항상 올라가는 게 고사리나물이어서인지 할머니는 고사리를 무척 좋아하셨다.
언덕에 가득한 고사리를 보고는 엄청 좋아 하시 길래 내가 말했다.
"엄니 이거 내가 키워 논 거여!"
"그래야, 그럼 울타리를 쳐야지 누가 도둑질해 가면 어쩔라고. 이렇게 헝 허니 놔 두냐."
독일에 고사리가 무척 많은 걸 몰랐던 할머니가 아빠의 거짓말에 속아서 하신 말이다. 나중에 알고는
"저 오살 헐놈이 애미같고 장난쳤구만"이라고 하시더라.
하루는 일 갔다가 와서 점심 먹고 막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켰는데 한국사람이 같은 사람이 나오자 할머니가 무척 반가웠는지 "아이고 한국 사람이 나왔다. 듬직허니 장군 같다. 근디 누구냐?" 했다.
"엄니, 북한의 김일성 주석입니다." 했더니 깜짝 놀라시며 "야! 빨리 텔레비전 꺼라!" 하시더라. 부안에서 살면서 상상도 못해본 그 ‘괴물’로 교육받은 김일성 주석이 듬직헌 장군 같아서 충격이었을까?
너를 대동하고 다른 집 할머니들을 자주 만나시고, 주말에 농장에서도 함께 농사도 지으시고 하면서 근처 동네에 오신 할머니들과 다 사귀고 나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셨는지 신나신 거 같았다.
"야! 다들 딸네 집에 와서 사위랑 살더라!" 할머니는 아들네 집에 사는 게 당당했던 거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할머니는 큰집이 잊혀지지 않아서 매일매일 근심을 안고 사셨다. 그때는 우리 집 뒤가 밭이였는데, 보리가 커오면 "느그 성도 보리 심었능가 모르것다."는 얘기를 하는 등등 보이는 것마다 부안을 연결시켜서 생각했다.
어느 날은 "아이고, 우리 혜련이는 핵교 잘다닐랑가 모르것다." 하시는데 큰집으로 다시 가시고 싶은 맘을 억지로 참고 계신 거 같아서 "엄니, 큰집으로 가실래요?" 했더니 금방 "아이고, 오살놈아 보내줄래? "해서 "예" 했더니 그리 좋아하실 수가 없더라.
아빠와 엄마는 할머니가 독일에서 오래 사시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들으시기에 조금은 서운한 이야기를 한 거 같다. 우리는 "어머니가 훈이를 오래 보듬어주시면 안됩니다. 업어주는 것도 안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우리가 이렇게 얘기하자 할머니는 성을 내셨단다. "내 새끼를 내가 오래 보듬는 거도 안된다. 업는 것도 안 된다.
느그들이 나를 뭘로 보는 것이여."라며 분을 참지 못하셨다.
"어머니가 독일에서 우리 랑 오래 살수 없는데 가시면 우리가 근무하면서 키워야 하니 어려워서 그럽니다."
할머니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이해는 하셨지만 "내 새끼를 즈그들이" 하는 맘은 풀지 않은시는 거 같았다.
고향에 최씨 집안에서 많은 며느리들을 거느리면서 큰소리 치고 사셨는데 큰놈도 아니고 작은놈 한테 그런 이야기를 듣다니, 참 말이 아니였던 거다.
아빠의 어릴 적 추억 속에 할머니는 너희 큰아빠만 챙기셨단다. 고기국이나 생선국을 끓이면 제일 큰 가운데 토막은 항상 큰아빠 국사발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머지 나누었는데 그것도 아들들한테만 주어 졌다.
딸들은 국물만 주었다. 밥도 아들들은 밥상에 딸들은 쟁반에 주는 거다.
 
할머니는 자식들한테 늘 "오살헐 놈, 육시럴 놈, 사지를 찣어 간을 내 오독오독 씹어 먹을 놈" 같은 욕을 하셨는데, 그 내용을 알고 하신 게 아니더라.
독일에 오셨을 때 하루는 "엄니 지금 생각허면 꺼떡하면 '오살헐 놈, 육시럴 놈, 사지를 찢어 간을 내 오독오독 씹어 먹을 놈!' 했는데 그게 무슨뜻인지 알어?"하고 물었더니 "몰라. 그냥 느그들이 말 안 듣고 속상허게 허면 허는 소리지. 근디 그게 뭐다냐?" 허시더라.
"엄니 잘 들으시오. 자식들은 다섯 번 죽여서, 여섯 갈래로 찢어서, 간을 내서 오독오독 씹겠다는 건데 엄니가 우리를 그럴 수 있어?" "아니 내가 어찌 그러것냐. 말도 안된다. 내 새끼들을 에미가 그런다냐. 조심혀야것다." 하셨지만 가끔 "야! 정규야"가 아니라 좋아도 "오살 놈", 나빠도 "오살 놈" 하시더라.
할머니는 가실 때도 여전히 큰집만 생각하셨단다. 너희들이 클 때는 모두 어릴 때부터 항상 옷들을 돌려가면서 입었단다. 지금도 애기들의 옷은 비싸지만 그때는 정말 비쌌단다. 그래서 서로 유모차부터 옷가지까지 돌려가며 사용하였단다. 그런데 어느 날 겨울옷 중에서 털 잠바가 왔는데 할머니는 "큰집에 혜련이가 입으면 참 이쁘겠다."하시며 욕심을 내서 드렸다.
그것만 아니었다. 네 엄마 동창이 이사 간다고 이사짐 나르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엄마랑 가서 열심히 짐을 옮겼다. 그때 네 엄마 동창이 "미스타 최! 이거 가져가세요. 우리 양반은 이게 보약이 아니라 독약이 되거든요."하면서 ‘생삼을 꿀에 재 놓은’ 를 내밀면서 " 엄니가 만들어서 주었는데 한 5년 되었어요." 서 받아왔다.
네 할머니는 그걸 보시고 "야,느그 큰 성 주면 좋겠다" 하시면서 그것도 가지고 가셨단다. 참 재미있지 않냐? 다른 분들은 담아와서 챙겨주던데 너희 할머니는 챙기는 게 아니라 그렇게 가져가시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셨단다. 왜, 큰 놈(집안의 기둥인 큰아들)만 있으면 되니까!
아빠는 할머니가 왜 그리도 큰 아들, 그리고 큰 손주들만 챙기셨는지 무척 궁굼했단다. 91년도 귀국했을 때 할머니한테 물었단다.
"엄니, 어찌서 큰아들 허고, 큰집만 그리 챙겼대요?"
"기둥이 튼튼혀야 혀, 큰집이 기둥이여, 느그 큰성이 기둥이랑게 오메가 없어지면 큰성이 기둥이다. 그런게 큰성한테 잘혀! 큰성이 잘되어야 느그들도 힘이 생겨, 알것냐!" 허시드라. 한국적 상황에서 네 할머니는 정확하게 생각하신 거였다.
그 할머니 생각대로 이루어져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고향에 갈 명분도 있고, 아빠의 집안의 구심은 할머니의 뜻대로 부안의 큰아빠로 되어서 너무 좋단다.
 
경로잔치
 
한마음조합은 송년모임에서 경로잔치 봄에 하기로 해서 준비를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연락처를 모아 초청장을 만들어 발송하고, 음식도 준비했다. 82년 4월 24일. 경로잔치 마당을 복흠(Bochum)교회 별관에서 치렀는데 대성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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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우리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신나게 추면서 가슴에 쌓인 회포도 푸셨다.
한마음조합은 경로잔치와 가래떡 장사, 김장 장사 등을 통하여 이 지역의 동포사회와 가까워졌다.
지역 동포들도 한마음조합에 관심이 많아졌다.
회원들은 80년 광주민중항쟁 후 아주 비정치적 실천 활동을 하면서 공동노동과 학습, 세미나를 통해서 내부도 튼튼히 하고, 대중들과 호흡을 함께하는 여러가지 행사를 통해 신규 조합원들이 늘어나서 보람도 많이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빠는 솔직히 힘들었다. 학습 조는 멀리 흩어져서 만나기가 힘들었고, 큰 힘이 되었던 이삼열 박사도 귀국하고, 광주민중학살까지 자행되니 앞이 캄캄했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막 만들어진 한마음 조합이 정말 단결하여 모두가 열심히 열심히 했던 거 같다. 광주민중학살을 보고 살아있는 우리가 뭔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동포사회의 대중성도 얻어가자 장성환 목사님도 적극 지도와 후원을 해주셨다.
헌데 한마음조합은 대중운동으로서 적극 활동하게 되니 정치적인 활동에는 제약이 따랐다. 아빠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연대하는 국제연대투쟁을 적극적으로 할 조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서 한마음조합에 몇 번 제안하고 논의를 했지만 현재의 조합으로 가자는 의견이 다수여서 고민에 빠졌다.
83년 한국에서 온 자료를 보던 중에 81년 12월 전태일기념관 건립위원회가 한국에서 발족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빠 맘속에 전태일 동지가 뜨겁게 뜨겁게 부활하는 감동을 받았다.
이 독일 땅에 전태일동지를 어떻게 부활하게 할것인가?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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