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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최정규칼럼] 아빠의 이야기(18)   

아빠의 이야기(18)

-참 오랫동안 너와의 약속을 미루어 왔구나. 

 1년전 태양이 돌 때 약속했는데 말이다. 이해를 바란다. 아빠가 다시 현장으로 와 그리됐다.

 이제 소라까지 세상에 왔고, 태양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으니 할아버지가 약속을 지켜야겠다.

 그리고 최 혜린 동지와 약속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다시 쓰려고 한다.  자! 다시한다. - 


아직도 아빠의 가슴깊이 새기어 있는 시를 읽어보고 싶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

 

1980 5월은 참으로 잔인했다.

80년 초에 어느 날 밤 근무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아파트가 나왔다고 주택은행에 가보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살고 있는 하팅거쓰라세(Hattingerstr) 902에 짓고 있는 아파트를 계약했고

5월초에 이사를 했다.

 

모처럼 한마음조합원과 교우들을 불러서 집들이 걸지게 한바탕 한 다음날 

오월 햇살에 따스한 바람을 맞으며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긴급속보 뉴스라면서 연방 코레아! 코레아! 해서 텔레비전을 보니 광주시민들이 무참히 죽어가는 장면이 긴급뉴스로 나왔다.

 

이렇게 19805 18(일요일)에 이사하고 행복했던 우리에게 잔인하게 다가왔다.

 

지금이나 그때나 노동자는 출근을 해야 했다.

헌데 출근해서 일하려고 준비하는데 작업관리 마이스터가 오더니 어제 뉴스 봤냐고 물어서 봤다고 했더니 아는 사람이나, 친척이 없냐고? 물어서 있다고 했더니 집에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힘들겠지만 우리도 아돌프 히틀러를 경험한 역사가 있다고 하면서 우선 일주일 휴가 줄테니 쉬고 나오라면서 가라고 하면서 어깨를 쳐 주더라.

괜찮다고 하고 일을 했다. 막상 닥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연일 속보와 특집방송으로 전해오는 오월광주항쟁소식은 유럽사회와 재독한인동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광주의 시민들이 도청을 점거하고 정부와 협상이 진행된다는 소식에 희망을 걸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 우방인 미국이 있지 않는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매일매일 피가 말리는 거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텔레비전에 젊은 청년들이 줄줄이 굴비처럼 엮여 끌려가고, 벗겨진 채 끌려가는 청년을 향해 곤봉으로 내리치는 장면, 그리고 묶여서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청년을 전깃줄 같은 거로 목을 조르는 같이 보이는 장면을 보면서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고 미치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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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아무리 정권이 욕심이 나도 국민과 전쟁을 하듯 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상상도 못해본 나는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하고 모여서 기도회나 하는 그때의 아빠의 한계였다.

정신없이 좌충우돌하는데 아는 친한 형한테서 전화가 왔다.

 

- ! 북한의 김 주석은 뭐허고 있다냐? 광주사람들을 저렇게 죽이는데 말이다. 남쪽으로 쳐들어와야 허는거 아니냐!

 

광주가 고향이었던 이형은 독일 텔레비전 방송 뉴스 보다가 어쩔 수 없는 자기처지를 보고 나한테 전화를 걸어서 간절하게 부탁하듯 외쳤다.

 

- 형 맘 알것네. 근디 그건 형 말대로 김 주석이 결정 헐 거 아닌가?

- 미안허다. 피가 말라강게 누구한테 이야기 헐 수 없더라. 그려서 너 한테 했다.

 

5.18 광주오월항쟁상황을 독일 언론들은 신속하게 보도해 주었다.

같은 분단국가여서 였을까?

 

apa18-02.jpg 

 

아빠는 이때까지 복흠교회(Bochum)라는 활동공간 외에는 잘 몰랐기에 그저 그랫다.

교회에서 할 수 있는건 광주학살소식을 알리는 일과 추모기도회와 모금이었다.

 

털레비전 뉴스로 생생하게 전해지는 화면을 보는 우리는 정말 가슴 답답했다.

 

박정희가 ‘그때 그사람’ 불렀던 가수까지 불러놓고 양주마시다가 자기부하 였던 김재규에 총 맞아 죽자. 민주화운동 함께 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귀국을 서둘렀다.

그중에 학습조와 함께 했던 이 박사도 귀국하겠다고 했다.

참 그랬다 그들에 의해서 의식이 변화를 가져온 우리는 어느 때부턴가 그들에게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이 귀국 한다고 하니 더 느껴졌다.

 

한국의 상황은 박정희 때보다 더 험악해져가는 분위기 인대도 그들은 갔다. 자기들이 가야할 곳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들은 환송했다. 다시 멋지게 만나자고 하면서 말이다.

 

나중에 들었는데 광주민중항쟁이 소식을 접하고 재독민주단체와 유학생,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집회와 농성투쟁이 프랑크푸르트와 서베를린 등에서 있었다고 했다.

그때 독일에서 활동하는 민주단체들이 74년 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 75년 재독한인노동자연맹(노연), 78년 재독한국여성모임(여성모임) 등이 활동하고 있었단다.

 

오펠(Opel) 자동차공장 직장노동자평의회(Belegschaftsversammlung )

 

자동차공장일은 광부일과 비교하면 아빠는 느닷없이 화이트칼라가 된 기분이었다.

광산일은 매일매일 긴장할 수밖에 없는 작업환경인데 자동차공장을 긴장도 필요 없고, 매일 샤워를 해야 하는 일도 없어서 기분이 신났다. 생각해 봐라!  지하 천 미터 광산에 들어갈 때 5리터 마실 차물과 석탄가루 휘날리는 탄광작업과 지상인 커다란 자동차공장에서 작업은 엄청난 차이었다.

 

어느 날 출근하여서 작업준비를 마치고 있는데 모두 다 일어서서 일하는 게 아니라 어디론 가로 가는 거 였다. 나는 물었다. 그랬더니 오늘이 직장노동자평의회(Belegschaftsversammlung)이라 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서 가니 커다란 창고 같은 곳에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있었다.

80년대 복흠 오펠공장(Adam Opel Bochum)에 약 2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일했단다.

조금 있으니 직장노동자평의회가 시작되었다. 1차로 직장노동자평의회 의장이 나와서 그간 평의회 활동에 대한 보고가 있고, (직장총회는3개월에 1회 연 4회 열리는 거였다.) 그 후에 경영자 대표가 나와서 경영상황을 보고하였다. 그리고는 각 정파대표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발표를 하는데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아빠는 소리만 들었지 이해는 못하였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의 독일어는 빵점이지 않냐.

또 대중석에는 마이크가 3개정도 설치되어서 질문을 하거나 자기 의견을 발표할 수 있어 치열한 논쟁을 하는 거 같았다. 당당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니 난 눈물이 났다. 너도 알지? 아빠 울보인거. 말이다.

 

솔직히 아빠는 노동자들이 조합을 만들어서 투쟁하면 세상은 자연히 노동자들이 꿈꾸는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하였기에 노동조합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었다. 그때는 말이다.

그런 상황은 80년 한국 상황과 비교되니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빠는 주먹이 다시 불끈 쥐어졌다.

 

언젠가 우리도 독일노동자와 같은 세상을 만들 것이다.

헌데 지금 보니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이 만들어졌어도 여전히 아빠가 꿈꾸었던 그런 거와는 넘 먼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자.

 

그때 오펠 자동차공장노조는 유니온샵이 아니라 오픈샵 이었단다.

 

어느 날 평의회의원(Betriebsrat)이 내가 일하는 작업장에 왔길래 나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겠다고 했더니 이 의원은 내 얼굴을 몇 번 보더니 노조에 가입하면 가입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가입하지 않아도 당신이 우리에게 연락하면 항상 여러분 편에서 일합니다 라고 했다.

 

참 우습지? 노동운동하는 사람이자. 직장노동자평의회 의원이 이렇게 말하니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독일금속연맹이 어용이라고 생각하는 활동가 였다.

이제는 니가 아빠보다 더 전문적 공부를 해서 박사까지 되었고 막강한 미국의 정보통신연맹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더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한국동지들에 이해를 위해 다시 되새겨 처음처럼 다시 보자.

 

아빠눈에 비친 1980년도 독일금속공장 노동운동현황을 이런 거 같았다.

임금협상을 산별로 했다. 말 그대로 최저임금이었던거 같다.(법적이 아니라 협상에서 - 지금도 독일은 최저임금제가 없다. 그거는 노사가 협상할 문제를 법으로 정하는거가 노사협상에 개입한다고 생각했던거 같다. 그러나 이제는 비정규직등 저임금지대가 확산돼서 노조와 좌파들이 외친다. ‘최저임금제’ 채택하라고 말이다.)

산별협상합의를 기본으로 각 공장단위가 협상을 하는데 그때는 노조가 아니라 ‘직장노동자평의회(Betriebsraet)’라는 협상 하는거 였다.

헌데 이 노동자평의회는 오펠공장에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선거를 할 수 있는데 정파투표제 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속연맹도 한 정파였다. 재미있지 않냐?

그때 독일노동조합운동을 이끌어가던 금속노조도 오펠 자동자공장이라는 단위사업장 ‘직장노동자평의회’ 선거에서는 한 정파로 되어지더라. 후에 너도 잘 알고, 아빠의 인생을 치열하게 만들어준 오펠자동차의 자랑스런 노동운동활동가조직 68년 학생운동 후 현장으로 침투한 노동조직인 게오게(GOG)도 정파로 등록되어서 독일금속연맹의 최고의 표적이 되어서 치열했다고 하더라.

이제 아빠가 게오게(GOG) 이야기는 나중에 할 것이다.

재미있게도 평의회의원으로 첨 만났던 그 활동가가 균터(Guenter)였다.

그는 녹색당 당원으로 오펠에서 노동운동하는 활동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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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가부장적  모습

79년 할머니 만나고 돌아온 후 얼마 뒤에 엄마는 임신했다고 했다.

알지 ? 아빠가 할머니가 ‘종자는 있어야 헌다’고 한말 엄마한테 했다고, 어쨌던 그 후 말 그대로 엄마는 종자인지? 아닌지? 임신을 했는데 아빠가 엄청 사고를 쳤다.


그러니까 그날이 아마도 니 세 살 생일잔치 였을거다.

1980년 3월이다. 그날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물론 그날 후 교회나 다른 행사에서 만나도 많은 사람들이 인사처럼 나에게 물었다.

- 아들이야? 딸이야?

난 그때마다 내가 종자를 심었는데 모르겠어 아들이지! 아들! 그랫 단다.  참 웃기는 아빠지?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얼마나 고민스러웠을까? 생각한다. 철부지처럼 지가 종자 심었으니 아들이라고 설치는 아빠가 만일 아들이 아니면 어쩔 건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1980년 7월에 니 동생 훈이가 니 엄마를 통해서 세상으로 나왔다.

그날도 아빠는 사람들한테 큰소리친 종자여! 틀림없는 종자여! 하였기에 병원에 못 있고 집에 있었다.

아빠가 엄마한테 얼마나 못되게 한건지 너도 상상이 돼지?  전화가 왔다.


- 여보! 아들이야. (엄마는 이런말 못하지만, -최정규! 나 오늘 종자 낳았다! 헌거일거다. )


난 그래도 너 때보다는 숙달되어 미역국을 끓인 거 들고 달려 하팅겐 에팡겔리쉬 병원으로 갔단다.

엄마는 여전히 너를 낳았을 때와 똑같이 먼저 훈이를 보자고 했다.

그리고 아들, 딸 표시 가리키면서 여보 봐! 저기 우리아들이야! 했단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척 부끄럽구나.

내가 한 행동과 말이 엄마를 얼마나 부담되게 했을까 말이다.

그래도 엄마는 할머니의 희망대로 멋쟁이 DJ가 된 니 동생 훈이를 낳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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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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