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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김재승칼럼] 어머님 죄송합니다. 17   

우선 약방을 운영하면서 의술도 넓히고 Heilpraktiker학교에 입학해서 보건부에서 치루는 자격시험을 볼 심산이다. 약방은 그런대로 운영이 된다. 단지 내가 시간이 없는 게 문제다.
아내와는 일 년 안에 학교를 마치고  Heilpraktiker 시험에 합격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학교를 시작했다. 한 달 학비가 500, -DM이니 만만치 않다.
저녁에는 Opel 가서 근무를 하고 아침에 집에 와서 한잠을 잔 다음, 오후엔 약방으로 가서 환자를 보다가 오후 여섯시가 되면 Witten에 있는 학교에 가서 강의를 듣는다.
Opel에는 밤 10시부터 근무가 시작되니 9시에는 학교에서 나와 직장으로 가야 된다. 저녁은 주로 오고가는 차안에서 빵으로 해결을 한다. 직장에 가서 다시 근무를 하고 아침에는 다시 집으로 가는 생활을 1년을 했다. 내 몸을 너무 혹사시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1년 안에 학교를 마치겠다고 선언했는데 가망이 없을 것 같다.
중의학을 공부할 때는 한문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문을 같이 배우면서 강의는 우리말로 하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따라 갈 수 있었는데 이것은 상황이 달랐다.
우선 전문용어 때문에 강의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처음엔 강의내용이 무슨 말인가도 이해가 안가 녹음기를 구입해서 녹음을 시킨 다음 집에 가져와 아내더러 이해가 가느냐고 물어봐도 30년을 병원근무를 한 아내도 무슨 말인지 조차도 모르겠단다.
중국에서는 의학용어 자체도 전부 중국어로 번역을 해서 사용을 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공부했던 내용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학용어들이 너무 생소한 것이다. 이러다가는 몇 년이 지나도  Heilpraktiker자격증은 힘들 것 같다.
독일인들도 시험에 몇 번을 낙방을 하고 갈수록 힘들어지는 시험이며 독일에서 통계학 적으로 자격시험 중에서 낙방 율이 제일 많은 것이 Heilpraktiker란다. 합격률이 30%뿐이 되지 않으니까. 다행인 것은 낙방을 해도 1000, -DM의 수수료만 내면 다시 응시를 할 수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은 들지만 내가 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여기 독일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다 Heiipraktiker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 준비를 했던 지인의 여식도 다섯 번 채 시험에서도 낙방을 하고 지금도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하루에 회사, 약방, 학교를 쫒아 다니며 하는 생활도 계획과는 달리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험을 치를 자신이 없다. 고집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과 함께 근무를 다니면서는 도저히 시험 준비를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까지는 Opel에서 회사는 운영이 잘 되지 않을 때 원하는 사람들은 퇴직금(Abfindungsgeld)을 주면서 퇴직을 시키는  제도가 있어서 나는 그것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내 복에 그런 복도 없나 보다.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사직서를 내자! 결정을 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인사과를 찾아가 도저히 몸이 힘들어 사표를 내고자 하는데 몇 푼이라도 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21년 근무를 했으니 1년에 1000 DM씩 2만 천 DM 주겠단다. 어차피 그만 두려고 생각했는데 그거라도 다행이 아닌가 싶다.
 
사표를 내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고 꼭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허지만 그것을 위해서 중의학까지 합친다면 8년 동안 노력을 했는데 포기를 한다는 것은 내 자신이 도저히 허락을 않는다. 노력하면 도와주시겠지 하는 믿음과 내 의지를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1년을 계획했었던 시험 준비도 Heilpratiker학교를 다니면서 시작한지도 벌써 30개월이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6개월이 지난 것이다. 이제는 시험에 응시를 해보자라는 생각에 지원서를 제출했더니 3개월 후에 시험을 치르러 오란다.  시험날짜의 통보가 온 것이다.
3개월 전의 시험날짜 통보는 시험을 보는 날까지 나를 말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스트레스 덕분인지 원형 탈모증으로 머리가 군데군데 뭉텅뭉텅 빠지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 총 정리를 하며 준비를 했다. 학교에서 그동안 시험을 치른 학생들의 경험담과 거의가 1차 시험보다 면접에서 낙방되기 때문에 시험관들이 질문했던 내용들을 정리하고 학교 선생님께 부탁을 해서 따로 과외공부도 하면서.
자신은 없으면서도 시험날짜 3주를 남겨놓고 모든 서류와 시험수수료를 송금하고 항상 게을리 했던 내가 “주님 이번에 합격만 시켜주면 나보다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겠습니다.„ 라는 조건부 기도도 하면서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를 했다.
 
드디어 시험을 치르는 날!!
시험을 치른 당일에는 큰일 날 번한 이야기가 있다. 누구한테 하소연 한다고 해도 시험에 떨어지고 변명이라고 믿지 않을 이야기다.
그날 집에서 8시에 시험장으로 출발을 했다. 시험통보를 받은 날부터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전 필기시험이 9시30분이라고  머리에 기억을 시킨 나는 8시 반에 집에서 출발하려고 했는데 전날 만난 선생님께서 Stau에 걸릴지 모르니 여유 있게 8시에는 출발하라고 권면한다. 8시에 집에서 집사람과 같이 출발하여 시험장에 도착해 보니 8시 40분, 아직도 50분 시간이 남았다고 선생님께 불만을 토하면서 집사람과 공원을 걷다가 집사람이 9시에는는 들어가 그 안에서 기다리자는 말에 “뭐 하러 그렇게 일찍 들어가느냐?„ 며  시험 통지서나 다시 한 번 확인해볼까라는 생각에 가지고 간 시험통지서를 확인해보니 시작이 9시 30분이 아니고 9시부터 이었다. Hammer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다. 그 시간이 9시 10분전, 성급한 마음에 아내를 뒤로 한 체 시험장까지 달려가자 위층에 ”Herr Kim“ 하며 시험관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억울한 뻔 했는가? 만일 시간이 늦어 시험을 보지 못했다면 이 사실을 누가 믿어 줄 것인가?
몇 년 동안 준비한 것들이 황당하게 끝나 버릴 번한 일이었다.
그날 아침 아내가 시험장에 같이 가겠다고 말하기에 “불안해도 혼자 불안하고 시험에 떨어져도 혼자 떨어지지 무엇 때문에 같이 가서 마음 졸이냐?„ 며 만류했으나 기어코 같이 가겠다고 나선 아내에게 감사했다. 정신없이 시험장으로 들어가 나누어 주는 시험지를 받아보니 도저히 문제가 읽혀지지가 안는다. 눈을 감고 몇 분 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집중을 하고 나니 조금 안정되고 답안지를 작성할 수가 있었다.”주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를 하면서.
2시간 동안 80문제를 푸는 시험지였다. 답안지는 그런 데로 작성할 수가 있었다. 80문제 중에 70%인 56문제 이상만 맞으면 1차 시험은 합격이다. 작성한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와서 밖에 복도에서 기다리니 20분 후에 시험장으로 다시 들어오란다. 1차 시험은 합격을 했으니 오후 2시 반에 면접을 보라며 밖에 나가서 식사나 하란다. 1차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허지만 정신 차려야 할 면접이 남아있다. 거의가 면접에서 미끄러지는데 열심히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엉뚱한 분야에서 질문을 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이 아내가 더한 것 같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와  먼저 집에가 커피를 한잔 씩 마시고 나서 마땅한 중국식당을 찾았으나 그곳에는  중국식당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앞에 보이는 이태리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로 들어간다. 음식장사가 잘 안 된다는 요즈음 이 집은 손님이 꽤 많다고 이야기 하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2시 반까지는 시간이 많아 우리는 차분하게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앉아있는 옆자리에 남자들 몇 명이 앉아서 식사를 한다. 들리는 이야기 소리가 의학적은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옆자리 남자들이 의사들인 모양이라며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맛있는 시간이 되라며 인사를 하고 나와 다시 시험장으로 갔다.
면접시험은 시험관 3명이 한사람의 수험생을 앉혀놓고 1시간동안 질문을 하는데 거기서 대답이 막히면 무조건 낙방이다. 워낙 범위가 넓어 어떤 분야에서 문제를 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3명의 시험관중 2명이 OK해야 합격이 된다.
면접시험 예약시간 2시 반에 문 앞에서 기다린다. 2시 45분이 되어도 나 이전에 들어간 수험생이 나오질 않는다. 50분이 다 되어서야 나온 그 여인은 온몸에 땀을 흘리며 본인은 도저히 자신이 없단다. 우리는 바짝 긴장을 더하고 오늘 시험관을 재수 없게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을 하면서 시험장 안으로 들어간다. 고양이 앞에 끌려가는 쥐 같은 신세라 할까? 이제는 모든 것을 그냥 맡겨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면서 시험관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시험관중 주장 격인 Amtarzt가 „Kennen wir uns ja schon!!„ 하지 않는가. 응, 무슨 말? 시험관을 자세히 보니 조금 전 이태리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 우리 옆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 중 한사람이다. 이것도 인연이라면서 “당신 부인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밖의 복도 의자에 앉아 마음 조아리고 있다고 하자 미소를 지으며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불안했던 마음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다. 이것이 도우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분하게 면접시험에 임할 수가 있었다. 면접시험이 시작되고 30분 정도를 시험관 셋이 돌아가며 질문한 내용들은 막힌 것 없이 대답했다. 이런 것 정도는 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준비한 내용들을 대체적인 질문들이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아는 내용도 떨리면 대답을 못하는데 인사를 해준 시험관 덕분에 차분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할 수 있었으니.
30분정도 지났는데 그만하고 밖에 나가 기다리란다.
응, 웬 말? 남들은 1시간씩을 하면서 나는 왜 30분? 대답을 잘 못한 것 같지는 않는데 일찍 나가라 하니 또 마음이 불안하다. 밖으로 나오니 아내는 아내대로  일찍 나와 버린 나를 영 못 미더워 하는 눈치다. 대답을 너무 못해서 일찍 내보냈구나 하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밖에서 불안하게 10분 정도가 지나니 다시 호출이다.
시험관 왈, 시험 준비를 착실하게 잘한 것 같아서 자기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안 했으며 지금까지 30분 동안만 면접을 치룬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니 축하한다며 손을 내민 것이 아닌가? “오, 주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법합니까? 나더러 시험 준비를 잘했다고 오히려 칭찬을 하다니요? 더군다나 외국 사람한테. 정말 감사합니다!!”
시험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면서 손을 쳐들고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며 집사람이 달려와 꼭 껴안는다. 그 동안 긴장 탓인지 몸이 착 가라앉은 느낌을 받으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합격소식을 전했다.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서로 즐거움을 솔직하게 표현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학업을 시작한지 9년 만에 모든 것을 마친 것이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들에게 합격연락을 드리고 저녁에는 음식장만을 좀 하게 하고 술도 좀 준비한 다음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학교에 찾아가 소식을 전하고 다른 학생들과 간단한 축하 파티를 했다. “기도하면서 주님과 약속한데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조금은 봉사를 하자.”라고 다짐을 하면서.<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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