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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이정의칼럼] 검정밥(38)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
 
코리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부목사 자리가 날 때까지 2-3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그 동안 우리 시(市)에 있는 직업양성 및 사회문화협회의 공보담당자로서 삼년을 채우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찻길로 약 20분 떨어진 곳에 집을 얻어서 제 남자친구와 살림을 차리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코리나의 남자관계에 대해서 전적인 자유를 주고 간섭하지 않았다. 아마 나는 아버님의 생각을 이어받은 것 같다. 제가 평생 살 사람은 제가 함께 살아보고, 이 사람이면 내 머리가 파뿌리가 되기까지 즐길 수 있다고 확신할 때에 결혼하라고 했다. 실제로 나는 결혼자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은 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는 공적인 인정에 불과하다. 결혼증명서는 행복에 대한 보증서가 아니다. 행복은 결혼을 해서 살든지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함께 살든지에 따르지 않고, 상대를 얼마나 아끼고 존경하며 사랑하는가에 따른다고 하면서, 네가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하고 결혼하기 싫으면 결혼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함께 지내라고 했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코리나는 결혼하지 않고 제 친구와 함께 살기는 해도 아기는 낳지 않으려고 했다.
 
또 교회의 목회자로 시무하는 것에는 기혼 혹은 미혼의 상태가 중요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올리는 결혼식에 ‘하느님이 묶은 것을 사람이 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축복하고 내어 보낸 수많은 부부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헤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렇지 않은 것 같이 눈을 감고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교회의 목회자도 결혼했거나 혹은 이혼했거나 또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사람이거나 차별 없이 대했고, 교회청이나 교회에서도 목회자 선택에 이러한 것을 전제조건 혹은 문제로 삼지 않았다.
 
코리나의 친구도 비록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우리 집에 드나들며 사위와 다름없이 우리 가족의 하나로 움직였고 사위로 대우받았고 사랑받았다.
 
나는 항상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의해서 결정된다고 믿는다. 하루는 딸이 나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되고 싶으세요?”
 그 순간 나는 딸을 꼭 안으며 아기를 가졌느냐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나는 하느님께 감사 드렸다.
 피임약을 깜박 잊고 복용하지 않은 날에 임신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사위도 무척 기뻐했다.
 
1998년 4월 1일 손녀 린다(Linda)가 태어났다.
거의 열 시간 동안 산고를 한 후에 새벽에 낳았다. 우리 부부는 흥분한 가운데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병원으로 갔다. 아기가 어미 품속에 안겨 자고 있었다. 나는 아기를 보는 순간 한없는 행복과 사랑을 느꼈다. 아기가 열 시간의 긴 씨름 끝에 태어나서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고 머리가 비뚤어져 찌그러진 고구마 같이 보였어도, 아기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할아버지” 하고 인사를 하지 않아도, 웃지도 않고 보지도 않아도, 나는 그 아기를 보는 순간 끝없는 사랑이 행복감과 함께 마음속에서 물컥물컥 솟아나는 것을 체험했다. 나는 메말랐던 것 같이 생각했던 내 가슴속에 이러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손녀에게 감사했다. 나는 아기와 딸을 얼싸안고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간구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 이 아이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 아이와 함께 계셔서 이 아이를 지키시고, 건강하게 하시고, 총명을 허락하소서. 이 아이를 도우소서. 이 아이가 어디에 있든지 하느님께서 인도하시고, 하느님께서 이 아이를 굳세게 하시고, 하느님의 의의 오른 손으로 이 아이를 잡아주소서. 아멘.”
 
예로부터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더니 코리나가 직장에 가기 전에 우리 집에 아기를 데려다 주고 가는데 자는 것도 귀여웠고 우는 것도 귀여웠다. 팔에 안고 자장가를 부르면서 아기가 팔 사이로 빠질까 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나는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어머님께서 그렇게 밤낮으로 그리던 외동자식에게 오셨으나 삼 년 밖에 더 계시지 못하고 손자들이 보고 싶다며 하나뿐인 나를 버리시고 또 나를 생전에 다시 볼 수 없다는 각오를 하시면서 한국으로 돌아가시겠다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코리나가 아기를 그처럼 사랑하는 사실도 반가웠고 감사했다. 실제로 나는 어느 정도 두려워했다. 딸이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제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대할까? 두려움과 의문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그 심정은 아마 어미사자가 새끼들이 얼마 자랐을 때 애비사자에게 데리고 가서 첫 선을 보이면서 혹시 물어 죽이지 않을까, 조바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사돈 쪽에서도 손녀에 대한 기쁨은 여간 아니었다.
바깥사돈은 가까운 도시의 종합대학에서 주물(鑄物)공학의 교수로서 정년퇴직한 후 생전 손자를 볼 팔자가 못되는 것으로 여기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손녀가 생기니 그의 마음인들 어찌 내 마음과 다를 수가 있으랴.
 
아기는 어려움 없이 잘 크고 있다.
아이 때문에 코리나는 예정된 부목사 취임기간을 취소했다.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코리나의 목회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자기가 목회를 하면 아기 키울 시간이 적다는 이유였다. 코리나는 제가 어렸을 때 내가 공부하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제 어머니가 집에 있었던 것을 행복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저도 되도록 아이와 항상 말을 할 수 있고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언제나 곁에 있는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위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없음으로 꼭 목회를 하겠다는 결정을 늦춘 것에 대하여 찬성하는 태도였다. 그래서 교회사업기구의 공보계통에서 반나절 일을 하기로 하고 일자리를 얻었다.   
 
나는 1996년 봄에 모든 고전어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신학공부를 하려고 계획을 하니 또 히브리어 사전이 생각났다. 나는 공부와 박사학위는 내 욕심을 만족하기 위해서고 히브리어사전은 물론 내 욕심도 있지만 결국은 한국의 신학계를 위하고 하느님의 일이다고 단정을 내리고 사전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소명감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신학 박사학위 따겠다던 사람이 왜 공부는 안하고 돈도 아니 나오는 사전을 번역하느냐고 물었으나, 나는 ‘이것이 내 연분이오,’ 대답하고 하루도 실증 없이 계속하면서 나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러나 이제 손녀가 우리 생활의 중점(中點)을 차지한 후에는 내 공부시간도 달라졌다. 물론 사전 번역 문제도 있었지만 이제는 학교에서 세미나 혹은 연습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세미나 혹은 연습과목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아기 보면서 또 번역하면서 지내다보니 도저히 준비하고 복습할 시간이 없어 다만 부담 없는 강의만 듣기로 했다. 또 아기로 인하여 번역속도도 느려졌다. 지금까지는 일년에 200 페이지 계획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150 쪽을 달성해도 기쁜 실정이었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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