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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이정의칼럼 검정밥(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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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독50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260회 작성일 13-10-05 08:39

본문

그리스 친구
 
하루는 내가 조금 일찍 퇴근해서 집에 오니 아내가 오늘 저녁에 장모님의 손님이 온다고 했다. 물론 장모님이 우리 집으로 이사 오시고 난 후에 교회에서 사귄 친구들이 자주 장모님께 놀러 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리챠드라고 부르는 남자노인으로 장모님과 같은 나이의 옛날 초등학교 한 반 학생이었다. 그도 두 해 전에 부인을 잃고 홀로 살다가 우연히 홀로 계시는 장모님을 만나게 되어 근래에 자주 만나며 지내다가 오늘 우리에게 선을 보이러 온다는 것이었다.
 
옛말에 ‘효자는 아버지 새장가 보내준다’ 라는 말이 있다. 나는 장모님이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을 기뻐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효도를 한다고 해도 일흔이 넘은 장모님의 그 외로운 마음을 위로해드릴 수 없었고 또 언제나 장모님의 말동무가 되어줄 수 없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가 아무리 가깝다 하더라도, 친구간의 사이는 또 달랐고, 또 자식에게 할 수 없는 말도 친구에게는 할 수 있다는 말을 상기하면서 우리는 반가워했다.
 
이렇게 해서 사귄 두 노인은 새로운 봄을 다시 맞은 듯 했다. 둘은 영감님 집에서 며칠 보내다가 또 우리집에 와서 며칠 있다가 하며 마음 내키는 대로 지내면서 이제는 완전히 우리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가졌다. 장모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장모님으로부터 해방되어 장모님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까지 홀로 계시던 장모님 때문에 우리는 멀리 여행가는 것을 중지했으나 이제는 걱정 없이 장모님을 여기에 남겨두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래서 결혼 25주년 은혼식에는 그리스에 가서 한달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는 옛날 베를린에서 공부할 때 사귀던 친구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이 금년에는 꼭 자기 나라에 와서 여름을 함께 지나자고 초청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로 갔다. 우리가 그리스에 갔을 때는 한창 더운 칠월이어서 친구부부의 제안에 따라 그리스와 소아시아 사이의 에게해(海) 섬들을 관광하기로 했다. 그래서 아테네에서 시작해서 그리스 근해의 여러 섬들을 둘러 마지막으로 레스보스 섬에 도착했다. 방문한 섬 중에 특히 레스보스, 키오스, 사모스, 코스 섬 등은 사도 바울이 거쳐 간 곳이고, 밧모스 섬은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이 유배당해 있었던 곳으로 성지순례와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나는 이 섬에 발을 디뎠다.
 
우리는 레스보스에서 에렛소스라고 불리는 바닷가의 조용한 마을에 집을 하나 빌려서 며칠을 보냈다. 에렛소스는 세계 최초의 여시인 샆포(Sappho. BC 600년 경)가 태어나고 살던 곳으로, 샆포가 레스보스의 수도 미틸리니에서 여신 아프로디트의 신전에서 젊은 여인들을 모아 시를 가르쳤는데, 이러한 여인들의 에로스의 감정을 내포한 종교적인 성향을 띤 모임을 후세에 와서 동성연애로 왜곡시킨 것으로 레스비언(lesbian, lesbisch), 즉 레스보스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 그러한 까닭으로 이 섬의 어느 곳에 가더라도 세계 각 국에서 모여든 동성 연애하는 여인들이 여기저기에서 껴안고 애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이 수정같이 맑은 이곳에서 며칠을 보내고 우리는 아테네로 돌아 왔다.
 
그리스에는 일반 가정집은 참 깨끗하고 정결한데 공동으로 쓰는 건물과 거리는 더러웠다. 특히 공동화장실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와 함께 아테네의 본토인만 안다는 유명한 식당에서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용무를 보지 못한 체 뒷걸음질로 다시 나온 일이 있었다. 또 친구는 그리스 국가는 가난하나 개인은 부자라고 했다. 나는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박물관이나 관광구역에 가면 이 친구는 죽어도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떤 때는 입장료와 거의 같은 금액을 뇌물로 슬쩍 집어주고 들어갔다. 돈이 많은 부자인 동시에 그 나라의 장관급의 위치에 있었던 그가 돈이 아까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의 원칙이었다. 그리스사람의 대부분이 이 친구와 같은 성격을 가졌다고 했다. 그래서 박물관과 같은 공공기관은 국가의 재정보조 없이는 도저히 문을 열 수 없는 지경이라고 했다.
또 그리스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세금 내는 일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돈이 있어도 국가는 가난하다고 첨부했다. 그는 아테네 변두리에 집을 몇 채 소유하고 있는데, 그리스나 터키에는 벽이 올려진 집은 허물지 못하게 하고 건축허가를 내어주기 때문에 건축허가가 없어도 대지를 매입해서 벽돌과 모든 준비를 해두었다가 밤에 트럭으로 싣고 가서 밤이 새기 전에 벽돌을 쌓아올려 벽을 둘러치고는 새벽에 다시 도망을 간다고 했다. 그 후에는 지역 담당 행정과 경찰에 뇌물이 왔다갔다 하면서 허가가 나오고 정식으로 공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친구는 나더러 그리스까지 와서 아토스의 <승려공화국>을 보지 않으면 그리스의 반을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스의 북쪽에 데살로니키가 수도인 칼키디키 반도가 있다. 이 반도의 동남쪽에 삼지창 모양으로 손가락처럼 길쭉한 세 개의 반도가 뻗어 있는데 이 세 개의 반도 중에 제일 북쪽에 있는 반도가 맨 끝에 2033m 높은 산이 있는 <하기온 오로스> 반도다. 지금은 이 산을 아토스라고 부르지만 반도의 이름인 하기온 오로스 자체가 거룩한 산이라는 뜻이다. 성산(聖山)이라고 불린 것은 1046년에 콘스탄틴 9세가 이 산의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기인했다.
 
이 산에는 중세기 이전부터 고행자와 수도자들이 굴이나 숲속에서 살면서 도를 닦고 있었는데, 10세기에 들어와서 아타나시오라는 승려가 그 산에 사는 수도자와 고행자들을 모아서 한 형제로 만들고 처음으로 수도원을 세웠다. 그때부터 이곳은 그리스 정교회 승려들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때에 지은 수도원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다. 수도원이 세워진 후에 비잔틴의 황제 요하네스 치미스케스가 아타나시오의 후원자요 친구였던 니케포로스 황제를 쳐 죽였으나, 거룩한 산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승려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수여했다. 그로 인하여 하기온 오로스 반도는 모든 세상의 교회나 국가의 권리에서 독립되었고 다만 황제에게만 속했다. 이 산에 사는 승려들은 검소, 순결, 순종, 인내를 삶의 기반으로 삼았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옛날부터 어떠한 여자도 이 산을 가까이할 수 없었음으로 친구가 나만 데리고 간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입산금지는 여인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 모든 짐승의 암컷, 모든 거세된 남자, 모든 얼굴이 번들한(수염이 없는) 자에게도 적용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가끔 암탉을 기르는 수도원도 생겼고 수염이 없거나 수염을 깎은 남자에 대한 입산금지는 해제되었다.
 
16세기에는 수도원이 40개나 있었고 승려가 사만 명이나 되었다고 했다. 현재는 약 20개의 수도원이 존속하고 승려는 약 2000명이 된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이 승려공화국을 방문하려면 머리를 길게 기르지 않고, 짧은 바지를 입지 않고, 사진기를 소유하지 않고, 해가 지기 전에 들어오면 입국을 허락했고 또 아주 친절히 대해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아토스 공화국의 입국비자를 소지한 사람에게 한했다. 수도원의 잠자리와 음식은 아주 소박하고 검소했고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해주었다. 한 수도원에서 다른 수도원으로 갈 때는 먹을 것이 있어야 했는데 이것을 알고 있는 친구가 미리 먹을 것을 배낭에 넣어 왔기 때문에 나는 고생 없이 지내고 아내가 기다리고 있던 아테네로 돌아왔다.
 
 
하루저녁에는 독일 신문을 사러 아테네 중심가로 산보 겸 나갔다. 신호등 옆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내 옆에 배낭을 지고 있는 사람이 아무리 보아도 한국인 같았다. 그래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한국이라고 했다. 나는 외국에서 고국사람을 만나니 기뻐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비행장으로 가는 중이라고 하면서 오늘밤에 카이로행 비행기를 타야 된다고 했고 유럽여행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행이 없이 혼자 여행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일행들은 아마 다 비행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하면서 나에게 늦어진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가 아크로폴리스를 관람하고는 내려와서 자기 혼자 시장거리로 들어섰다고 했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지나가는데 젊은 그리스인 두 사람이 자기더러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기에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그 사람들이 반가워하며 한국인들 참 좋은 사람들이라면서 맥주 한잔 같이 들자고 했다. 외국에 나와서 한국인에게 이러한 친절한 대접을 하는 젊은이들이 고마워 같이 술집에 따라 들어가 술잔을 나누었다고 했다. 그 후에 그가 눈을 뜨니 젊은이들은 간 곳이 없고 돈지갑도 없어졌다고 했다. 그놈들이 술에 마약을 탄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그러한 이야기를 친구에게서 많이 들었다. 친구는 그런 사람들이 십중팔구는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이라고 하면서 아테네의 범죄 80%가 그들로 인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나는 그분에게 이 나라의 젊은 사람들이 한국인과 언제 사귀었다고 한국인 좋다고 할 수 있느냐 하면서 앞으로는 아무나 쉽게 믿지 말라고 했다. 돈지갑을 몽탕 잃었으니 비행장에는 어떻게 가겠느냐고 물으니, 그는 그놈들이 다 훔쳐 가면서 허리띠 속에 넣은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며 백불짜리 몇 장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택시를 타고 비행장까지 가서 택시운전사에게 백불짜리를 내놓으면 또 당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돈은 숨겨두고 비행장 가는 택시비를 내가 드릴 테니 그것으로 쓰라고 하고 택시비를 쥐어주었다. 그는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하면서 택시를 잡아서 떠났고 나는 그가 사고 없이 여행을 잘하고 가기를 빌었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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