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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파독광부가 독일땅에 온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1진이 독일에 도착하면서 재독동포사회가 시작되었고, 전세계 동포사회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파독광부분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하셨지만 정작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고생도 많으셨을 겁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어찌 몇마디 필설로 다하겠습니까만 파독광부분들중에 몇분이 독일땅에 와서 겪은 체험을 여기에 풀어놓고자 합니다. 파독광부의 삶은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글을 써가실 때, 서투른 점이 있더라도 많은 성원 바랍니다. 

이정의칼럼 검정밥(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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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독50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2,884회 작성일 13-09-18 09:16

본문

이방인의 치열한 생존 경쟁
 
채탄막장을 시설하고 운영하는 데는 어느 광산에서 어떠한 지질조건 아래에서 어떠한 경험을 쌓았는가에 따라 제각기 다른 기술상의 견해와 운영철학을 가지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 광산은 지층의 계곡에 탄층을 가진 회사로 지압과 메탄가스 출현이 심했다. 라인강의 서쪽 편에는 막장을 따르는 갱도를 20m2 정도 크게 할 수가 있었으나, 우리 회사에는 지압으로 인하여 16m2 정도 이상은 설치하지 못했다. 또 서부에 있는 광산에서는 막장의 진전속도가 병행하는 갱도의 굴진 속도에 예속되지 않도록 갱도를 미리 완성시켜서 갱도와 막장의 진전속도가 서로간의 종속관계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갱도를 미리 파고 완성시킬 수가 없었다. 막장의 전진에 따른 동적(動的)지압이 미리 건설한 갱도를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또 갱도를 막장의 뒤에 따르게 하면 탄층이 메탄가스를 많이 함유하고 있었음으로 통기(通氣)에 지장이 있었다. 메탄가스가 많은 막장에 통풍이 잘되지 않으면 이것은 너무도 위험했음으로 갱도를 뒤에 따르게 할 수가 없어서 갱도를 막장과 나란히 같은 속도로 나가게 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경영실적 조사를 담당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거기에다 통기 담당 이사가 없을 경우에는 내가 통기 담당도 겸했다. 경영실적 조사를 통해서 여러 가지 경영조건과 실태를 비교할 수 있었고, 통기부를 담당했기 때문에 지하의 구석구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나 생산산업을 경영하는 곳에는 짧은 시일 내에 최대의 생산량을 최저의 원가로 생산하려고 한다. 광산의 생산품은 석탄임으로 석탄생산량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때는 이치를 벗어난 채탄계획을 할 때가 있다. 이러한 욕심은 위에서 아래로 탄층의 순서에 따라 석탄을 캐내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우선 두꺼운 탄층을 먼저 파내게 했다. 특히 우리 회사에는 탄층들이 메탄가스를 많이 함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의 탄층을 파낸 후에 아래층에 손을 대는 것이 정식인데도, 아래에 두꺼운 탄층이 있을 때는 그곳부터 먼저 손을 댔다. 이러한 이유로 막장의 갱도를 먼저 건설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게 되었고 막장과 갱도가 일선으로 함께 나가게 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경영철학이 되었다.
 
이와 반대로 본사의 회장단에서는 우리 회사에서도 막장 전진속도를 올리는 방법, 즉 갱도를 먼저 건설하는 방식을 택하라고 틈틈이 압력을 가했으나, 우리 회사는 독일 전국에서 3위에 속하는 능률이 좋은 광산이었음으로 회장단이 다른 채탄방식을 주장해도, 변함없이 지금까지의 방식을 택하자는 사장의 고집과 상위성적의 경영결과를 근거로 본사와 대결하면서 우리의 채탄방법을 고수했다.
 
한 번은 내가 통기부를 맡고 있을 때 아래에 있는 두꺼운 탄층을 이미 캐낸 곳의 위에 있는 낮은 탄층에도 막장의 채탄이 끝났다. 채탄이 끝나면 막장과 갱도를 버리기 전에 다시 쓸 수 있는 장비를 모두 철거했다. 장비철거가 다 끝나면 막장과 그 막장에 속한 갱도를 버리는데, 가스가 발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갱도의 입구에 갱도 높이의 2,5배에 해당하는 갱도 길이를 시멘트를 뿜어넣어 막았다.
 
이러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현장시찰을 갔다. 위에 있는 모든 탄층과 아래의 두꺼운 탄층을 이미 캐어 내었음으로 이 막장의 갱도는 지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서 1000 m 넘는 갱도가 아직까지 손상 없이 원래의 모양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나는 이 탄층의 다음 막장에는 새로운 갱도를 건설할 필요 없이 지금 막으려는 갱도를 주 갱도까지 약 100m 더 파고 나가서 동서 양쪽 주 갱도를 연결시킨 후 맑은 공기가 직통하는 갱도를 다시 사용하면 1000m에 해당되는 아주 많은 굴진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막장 다른 쪽에도 갱도를 미리 건설한다면 굴진의 속도에 채탄속도가 예속되지 않음으로서 대단히 큰 능률을 올릴 수 있다고 계산했다. 그 뿐만 아니라 갱도를 미리 건설했을 때는 사용한 공기를 막장 앞쪽으로 보내기 때문에 통기기술상 아주 유리했고, 탄층의 아래와 위를 다 캐내었기 때문에 채탄에 의해 생기는 지압도 그렇게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스출현의 지장 없이 막장의 진전 속도를 하루에 10m까지 올릴 가능성이 있었다. 보통 막장 진전속도는 하루에 3~4m 였고 빠른 경우에 5~6m 달성했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은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사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난 5개월 동안 우리 회사에서 본사 회장단의 성가신 조름에 못 이겨, 그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서 공대 대학원 졸업생으로 하여금 미리 건설된 갱도와 함께 채탄하는 방법에 대한 졸업논문을 연구 작성하게 했다. 물론 작성된 논문은 우리 회사에서는 그 방법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사장은 그 졸업논문을 근거로 회장단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실을 천천히 연구조사해서 빈틈이 없는 절대적인 경영제안으로 제출하기로 결정하고, 클라우스탈 공대에 있는 지압연구의 권위자인 R 교수에게 지금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뒤에 이러한 경우에 갱도를 두 번째 사용할 때에 예상되는 지압현상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은 우리 회사에서 지금까지 버릴 갱도를 다시 쓰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없었고 또 이러한 방식의 적용여부에 대해서 의논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부사장을 만났다. 부사장은 활기가 찬 젊은 신진으로 마흔을 갓 넘긴 내 후배였다. 나는 그에게 위의 사실을 설명하고 우리 둘이 제각기 이 점에 대한 모든 문제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한번 검토하고 또 그것으로 인한 모든 경영상의 장단점과 부수되는 영향과 작용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 주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나 각기 자기가 연구 검토한 것을 대조해 보았다. 결론이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계산상 우리의 채탄방법은 생산원가를 계획했던 것의 ⅓로 줄이고 시간적인 절약은 적어도 50%에 달하게 했다.
 
R 교수의 의견도 이와 동일했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손을 잡았고 부사장이 회장단에 보고하기로 했다. 나는 우리가 사장에게 알리지 않고 직접 회장단에게 알린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음으로 비록 우리가 사장의 태도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도리밖에 없었다고 단정할지라도, 이것을 사장에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사장은 회장단, 나는 사장에게 동시에 말하자고 결정했다. 나는 사장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이번에는 그가 그의 경영철학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계산상 뚜렷한 방법을 택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정의 씨, 한 장의 계산이 적힌 종이는 인내가 끝이 없소. 계곡에 자리 잡은 우리 광산의 지층은 심한 지압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을 뿐더러 가스의 발산이 많은 조건 아래에 그처럼 채탄속도를 올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요.”
 
“바로 가스가 많이 발산하는 탄층에 이러한 통기방법을 택하는 것이 제일 적합한 방법이지만,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회사의 지층이 계곡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지압으로 인하여 지금까지는 갱도를 먼저 건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계획한 막장의 위와 아래에 있는 탄층을 다 제거한 덕택으로 이 탄층에 미치는 지압과 가스의 영향은 아주 극소합니다. R 교수도 이와 같은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들으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지위를 과시하면서 “네가 무엇을 아느냐?”는 식으로 채탄에 대한 궁리를 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내 임무가 아니고, 자기와 기획이사의 할 일이라면서 나를 내 보냈다.
 
나는 늙은이가 무슨 고집이 저렇게 센가 생각하며 독재자의 말로를 상상했다. 회사를 그렇게 경영하는 방식은 회사경영상의 독재였다. 부하의 참된 이론을 검토할 생각은 않고 “우리는 항상 이렇게 해왔다”는 보수적인 사고방식으로 아랫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거기에다 너무도 광산기술에 실력이 없는 사람은 해고시키겠다는 협박을 하는 사람은 그의 때가 지난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부사장이 본사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부사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본사에서 전화가 왔다. 회장이 나를 부른다는 여비서의 말이었다.
 
나는 곧 본사로 갔다. 회장이 회장단에 속한 기획진을 모아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사장에게 모든 것을 들었다고 하면서 나의 의견을 또한번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모든 장단점을 열거했다.
 
내 설명을 들은 회장단은 곧 우리 회사의 사장에게 내가 설명한 방법을 택하기로 지시했다. 사장은 이 사건 때문에 나를 불러 발을 굴면서 해고시키겠다고 야단을 쳤다. 그러나 회장단을 뒤에 두고 있던 나는 두려움 없이 그에게 시험 삼아서라도 이번에는 내가 설명한대로 해보자고 했다.
 
그는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정말 굽힐 줄 몰랐다. 자기가 이 회사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한, 우리 광산에는 그러한 채탄방법을 쓰지 않겠다고 그는 회장단에게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회장단에게도 그러한 자기의 신조를 굽히지 않는 그의 의지와 성격이 마음에 들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너무 자기의 생각과 행위에 도취되어 이성을 잃어버린 그가 안타까웠다. 그때까지 나는 사장과 참 사이가 좋았고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으나 나는 어려움 없이 그와 술잔을 들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좋은 의견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라야 남을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비록 그는 탁월한 광산경영자였지만 결국은 그의 고집적인 경영철학이 그로 하여금 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회사로 볼 때는 하나의 혁명이었고 정권과 세대교체였다. 부사장이 사장직을 맡았고 나는 기획 이사직을 맡게 되었다.
 
내가 계획한대로 막장을 시설하기로 했다. 새로운 채탄방법은 생산능률을 예상보다 더 좋게 만들었고 그때까지 의심쩍게 생각하던 보수파들도 실제적인 능률에 의해서 설득시킬 수 있었다.
 
회사에서 역경을 치르고 난 후에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일들이 그침 없이 내 주위에서 일어났다. 경영실적이 좋은 결과로 모든 동료들의 인정은 받았으나 이와 더불어 시기와 질투도 보이지 않게 자라나고 있었다. 거기에다 사장의 동문들이 아직까지 여러 광산회사의 지도권을 잡고 있었고, 그들의 옛 학생연맹을 중심으로 한 단결은 나로 하여금 간혹 철판에 부딪히는 것 같은 어려움을 맛보게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덤벼들었다.
 
“네가 외국인으로서 잠자코 있으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인데, 왜 모나게 행동을 하느냐? 만약 우리가 네 나라에서 살 경우 너와 마찬가지로 행동한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너를 친절히 대해주었지 않았나? 그런데 너는 왜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피해를 입힌단 말인가?”
 
나는 이들에게 대꾸하기를 싫어했다. 실제로 나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들은 처음부터 외국인이 그들의 서열에 끼인다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이었고 또 그들은 특별히 전통과 계급의식이 강한 광산 내에서도 보수파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사실상 나의 실수만 기다리고 있던 인간들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친절을 베풀 경우에는 이 친절은 함께 일하면서 나나 저들이나 서로 간에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했던 근무위주의 의무적인 친절과 협조 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또 바로 여기에 그들을 포섭하고 수용할 수 있는 그들의 단점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미움을 주요시하지 않았고 나의 임무에만 정력을 다해서 일을 처리해 나가는 동시에 그들을 한 사람씩 일대일로 각개 격파와 개별적 포섭의 작전을 벌였다.
 
비록 그들이 같은 연맹회원이고 같은 독일인으로서 서로 간 친하게 지난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맡은 일에는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했었고 또 개개인의 임무에는 너 나 없이 서로 간에 경쟁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개개인의 위치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도움을 원하고 있었고 또 이 도움이 자기에게 온다고 볼 경우에는 단체적인 대결의 입장을 벗어나 개인적으로 고분고분하게 처신하는 사람이 많았다.
 
채탄계획상 한 막장을 설치할 경우에 모든 부서가 자기의 계획안건을 나에게 제출해야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계획상의 장단점을 일관할 수 있었고 또 이것을 가지고 연의 방줄 당기듯 그들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들이 계획상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 수 있었음으로 그들과 일대일로 한 자리에 앉아서 계획의 약점을 지적하고 친절하게 조언하면서 교정해주면 그들의 고마움은 친절로 표현되었고, 어떤 때는 나에게 대한 불친절을 솔직히 사과하면서 내가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자청하기도 했다.
 
약 반년이 지나니 모든 반발심은 무마되었고 또 쫓겨나간 사장도 나와 그들의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 편안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반년 동안에 나는 무척 늙어진 것 같았다. 동양인으로서 이 사람들의 사회에서 이들과 경쟁하며 내 자리를 확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각오했지만, 지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끝이 좁아지는 피라미드와 같이 경쟁과 알력은 심하고 싸움은 격렬했다. 외국인이 하는 일은 쟁반 위에 올려진 전시품처럼 보는 눈이 많을 뿐 아니라 또 그 보는 눈들은 날카로웠다. 이 눈들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독일인의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고 그들보다 항상 일보 앞서야 했다. 그들과 어깨를 가지런히 걸어갈 때는 그들이 나를 밀어내지 않도록 그들을 내 몸에서 떨어지게 그들의 옆구리를 쥐어박을 수 있는 힘센 팔꿈치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러한 예는 특별히 진급이 있을 때 더욱 심했다. 자리가 하나 났을 때, 그들의 주장은 ‘같은 조건이면 기왕에 내 나라 사람을 쓰지, 왜 외국인을 쓰느냐?’ 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져야 할 조건은 그들과 같은 것이 아니고, 그들보다 하나라도 나은 것이어야 했다. 이렇게 이들과 경쟁하면서 그 속에서 내가 커지고, 내 행동에 자신을 가지게 되는 것도 나는 내 운명이 나에게 요구하는 이방인의 삶의 길을 가는 공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살면서 나이 오십을 넘기고 나니 나는 제 나라에 사는 내 나이또래의 독일인이나 고향의 친구들보다 마음이 더 늙은 것 같았다.
 
사장과 본사 회장단은 나를 진급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근래에 있었던 싸움을 상기시키면서 직장의 계급명칭이 이제는 중요한 것이 못되니까, 외면상으로 계급은 그대로 두고 봉급만 진급에 해당되게 달라고 했다. 사장과 회장단도 수긍하고 내 의견대로 해주었다.  <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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